2025.06
우리는 언제나
뜨끈한 박수를 받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원탁의 기사들처럼 둘러앉아 밤을 지켰죠
철 지난 연극 포스터와 공연 중인 전단이
모자이크처럼 뒤엉켜
시공간을 알 수 없는 두 번째 무대 위에
뜨거운 이야기로 안주를 차렸던 게 기억이 나요
달아오르는 테이블 위로
새벽 내내 지껄여도 모자란 한탄과
간혹 의자도 날아다녔고
어떤 늙은 선배의 패망을 읊조렸고
조소가 오고 가기도 했죠
술잔이 꼭 청춘의 절망처럼 부딪혔고요
가장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선배는
목소리가 참 단단하고 정중했어요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똑바로 오르내리던 성대가 기억나네요
선배님
알았다 하는 순간 함정에 빠지는 것은
연기뿐만이 아닌 온 삶을 통틀어 직면하는
모든 것인가 보아요
당신의 마지막을 보자면
오늘의 마음병은 발갛게 웃던 선배를 기만하고
기어이 찾아왔으니까요
어떤 위로를
바랐을까요
선배는
아무것도 안다고 착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겸손이 패사로 이어지는 밥맛 떨어지는 세상에
술인 양 맛이 좋았을까 싶어요
저희는 장막을 거슬러
꺼진 조명 아래로 퇴장하는 동료들과
창살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야겠네요
우리들 중에 몇이나 지하 극장을 떠날 수 있을까요
건물 꼭대기에서 아른아른 홀리는
그 천박한 웃음으로 거리에 나온다면
가당치도 않은 성공이란 함정에 빠져 살게 될까요
가끔은 알았다고 치고
모른 채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선배님
저희는 패몰하더라도
그때, 그 원탁 위 손잡이까지 닳아 오르던 무쇠냄비처럼
퍼런 불을 맞대려 다시 펜을 잡겠어요
무대 위로 선을 이어가
한 번 비틀비틀 걸어라도 볼까요
매일 같은 연기를 해도
우리는 매일 성장할 거예요
당신의 말처럼요
단 한 번도 같은 공연은 없어야 해요
발바닥을 눕히지만 않는다면
어느 관객은 함성을 지를지도
객석을 박차고 일어나 움직일지도 모르잖아요
다만 조명이 켜진 무대로 걸어가 라도 볼까 봐요
단 한 번도 같은 장면은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