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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

by 온다

문득 돌아보게 한 이들이 있었다



1.

깁스를 한 여자가 얕잡아 보듯 흘기며

팔꿈치로 툭 —— 나를 밀쳤다

차가 있냐고 물었다

그 음흉한 눈초리에 상냥함을 빼앗겨

사치로운 미소마저 잃었다


언젠가 항구 근처에서

양쪽 팔짱을 끼우고 나를 끌고 가려던

슬리퍼 차림의 여인네들이 떠올랐다


한숨이 목젖 위에 얹힐 때 즈음

그런 아녀자들을 만난다


미약함은 미력한 이들이 간취한다

영혼을 간파당하고 나면

나는 곧 성별을 버리고 숨어버린다






2.

피츠 수퍼클리어라는

명확하지 않은 외래어 한글 표기를 가리키며

영어로 된 피츠 수퍼클리어를 어떻게 읽느냐고 물었다


한참 높은 곳에 서 있던 그가

다급히 행인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저 아래 떨군 채 좌돈한 심정이 전해졌다


행인은 아무 정서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친절을 과하게 표현하면서

담백하게 대하려 움직임을 덜어내고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했다


노력 자체가 거북한 순간 같기도 했다


사실은 모르면서 아는 척 어물쩍대다

진정 알아야 할 모르는 것들을 마주하면서


그것도 자주,

예상 밖의 일격을 당하며 사는 것은

얼마나 서슬을 돋구는지


그날의 낮은 그늘받이가 되어

퍼렇게 새무룩하다






3.

새하얀 팔과 다리가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풀썩 쳐졌다

튕겨 올랐다 한다


사람의 뇌란

어찌나 익숙한 것에만 익숙한 지

그녀가 발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문장이 되어 정렬되기까지

만겁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전화기를 들고

겨우 세 자리 숫자를 누르는 데도

나는 녹아내려 다시 형체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얼어붙어 굳어진 여인의 얼굴에

오로지 열기가 오를 뿐인 분비물을 닦아내었고

정신을 동여맸다


희미하게 올려 뜬 그녀는

스미듯 낯선 얼굴을 인지하고는

눈동자를 제자리로 돌렸다

번쩍 뜨인 눈에 순간 서린 공포가 옮겨졌다

잃어버린 기억만큼 두려운 것은 없을테니


나는 물러섰고 시선을 돌려줄 수 없었다

노력이 무색하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알아봄과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한

양가감정에 나는 축 늘어졌다






어떤 하루는

영영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나그네가 되어 잊히도록 보내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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