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록은 2023년 4월 12일의 기록이기에 현재의 시세와 다릅니다
"오늘 들어온 딸기가 세 팩에 육천 원~"
마이크 없이 생목소리로 외치는 멘트에 발길을 멈췄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더라도 나는 저 멘트를 지나치지 못한다. 다른 과일도 아니고 무려 딸기다.
'오늘부터는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지출하기 전에 꼭 세 가지를 심사해 보고 살 거야'
약 2시간 전에 했던 그 결심이 무색하게, 나는 3팩에 6천원이라는 말을 듣고 왔음에도 1.2kg에 8,500원하는 바구니에 든 딸기를 살지 아니면 세 팩에 6,000원하는 딸기를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한 팩에 500g~600g 정도 하니 세 팩을 구매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 그러나 바구니에 들어있는 딸기는 설향딸기였다. 설향딸기나 품종명이 붙지 않은 딸기팩이나 내게는 다 맛있는 딸기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걸 먹는게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양심으로 인해 세 팩을 집어 들었다.
기억하기로는 학창 시절, 보통 2월 초 즈음 어머니께서 첫 딸기를 사주셨었다. 하우스 딸기라 비싸지만 맛있다고. 그러던 게 어느샌가 1월로 앞당겨지더니 이제는 12월부터 첫 딸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겨우내 하우스 딸기가 나온다. 보통 가격은 만원대. 사람들은 그때 딸기값을 보며 왜 이렇게 딸기 값이 올랐느냐고 하는데, 원래 겨울딸기는 비쌌다. 예나 지금이나 그랬다. 그런 딸기가 2월 말부터 저렴해지기 시작한다. 한 팩에 만 원을 훌쩍 넘던 딸기가 만 원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3월부터는 동네 슈퍼에서 두 팩에 만 원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4월. 세 팩에 6,000원이다.
집에 와서 큰 세척볼에 와르르 부었다. 한 번에 다 들어가려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딱 맞았다. 이렇게 씻어가지고는 깨끗하게 씻겼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젠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다. 깨끗이 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누구는 식초 넣고 씻어라 누구는 그냥 물로만으로도 충분하다 등 의견도 다양한데 그런 의견들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니 체념하게 되었다. 어쨌든 100%는 못 씻어내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이젠 그냥 적당히 대충 꼭지만 뜯어내고 물에 씻어 먹는다.
오늘 들어온 딸기라고는 하지만 무려 세 팩이나 샀기 때문에 이 중 하나는 곰팡이가 있겠거니 싶어서 꼭지를 뜯으며 꼼꼼히 살펴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농약은 먹어도 눈에 보이는 곰팡이는 먹을 수 없지. 마지막 한 알까지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의 딸기는 대성공이다. 퇴근하면서 사온 세 팩 중에서 곰팡이 핀 딸기가 단 하나도 없다니. 역시 4월의 딸기는 신선하다.
3,4월은 역시 딸기의 계절이다. 맛있고 싱싱한 딸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먹을 수 있다.
처음 딸기뷔페가 나오고 난 다음 해에 나와 짝꿍은 딸기뷔페를 예약했다. 나는 딸기를 좋아했고 짝꿍은 딸기 디저트를 좋아했기에 행복한 데이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에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딸기보다 많은 딸기 디저트, 디저트를 좋아하지만 그 많은 디저트를 먹기엔 물렸던 우리는 그 곳에서 제일 맛있었던 것은 딸기와 연어샐러드였다고 회상한다. 여하튼 딸기뷔페 방문 이후 우리는 앞으로 딸기뷔페가 가고싶거든 그만큼의 딸기를 사먹자는 결론을 내렸었다.
비록 그렇게 결론 내리기는 하였지만 연애하는 중에는 실천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 딸기를 사서 어디서 씻을 것인지가 문제였다. 둘 중 한 명이 자취를 하고 있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둘 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함께 사는 지금, 우리는 딸기만 먹지는 않는다. 봄에는 역시 오렌지 아니겠는가. 딸기의 계절이지 않냐고 해놓고선 이게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싶을 수 있겠다. 내가 실수했다. 봄은 딸기와 오렌지의 계절이라고 정정하겠다.
오렌지는 기본적으로 수입과일이기에 산지에서 먹는 것과 같은 맛이 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맛있으니, 얼마나 맛있는 과일인가. 주변 지인들 중에서는 이 달콤하고 상큼한 오렌지에서 신 맛을 느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느끼는 것은, 정말 사람의 입맛 또한 다양하구나 하는 것이다. 나는 오렌지에서 신맛을 느낄 수 없다.
그렇게 맛있는 오렌지이지만 사실 많이 먹지 않으려고 한다. 기왕이면 우리나라에서 나는 제철 과일을 소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4월에만 두어번 정도 오렌지를 구매해준다. 오늘 벌써 두 번째 오렌지를 샀으니 아마 이것이 올해의 마지막 오렌지가 될수도 있겠다.
딸기의 끝물이 다가오고있다. 한 팩의 딸기를 사면 그 안에 두 알 정도는 곰팡이가 피어있는 시기. 주스용 딸기가 가득 들어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3박스에 5,000원에도 파는 시기.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딸기를 사먹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쉬울 것은 없다. 그 때는 산딸기가 잠깐 나와주기 때문이다.
산딸기라니.
벌써부터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