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훈 할아버지의 나이는 74세이지만, 건강 관리를 잘해서 신체나이는 65세 정도라고 의사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 말이 좋았는지, 누군가를 만나면 이야기 말미에 꼭 그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할아버지는 고집도 있고 다소 가부장적인 면도 있었지만, 본인에게 손해가 가도 늘 정직하게 말하는 성격인 데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아서 주변 이웃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매년 크리스마스엔 꾸준히 기부를 하는 등 알게 모르게 하는 선행도 여럿 된다. 할머니에겐 세상 다정한 남편이었다. 보는 이들은 남사스럽다했지만, 할아버지는 남 이목 신경 쓰지 않고 늘 살뜰히 아내를 챙겼다. 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 중 풀어진 할머니의 신끈을 무릎 꿇고 꼼꼼히 묶어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안 본 이가 없다. 주위 눈살 찌푸릴 일은 하지 않고 사는 노부부였다.
그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 할아버지가 창문을 열면서 밖을 내다보니 집 마당에 열린 과일들이 참 잘 익었다. 올해는 확실히 과일 양이 많다. 살구나무, 앵두나무, 포도나무... 열심히 먹는다 해도 둘이 먹기엔 퍽 많을 듯하다. 할아버지는 맛있을 때 모두와 나누어 먹고 싶어서 바구니 가득 과일을 담고 경로당으로 향했다. 형님, 동생들의 좋아하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밝은 얼굴이 누군가는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뭐가 그리 좋아? 늙은이가 왜 돌아다녀!
시비 거는 말과 함께 뭔가가 할아버지 뱃속에 깊숙이 들어와 박힌다. 뜨겁다. 이내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솟구친다. 할아버지는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날카로운 칼은 계속해서 할아버지를 향했다.
이제 그만...
할아버지가 칼을 든 손을 잡자, 그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 칼을 던지고 달아났다. 한낮, 대로변, 목격자는 많았다. 너무 짧은 순간이기도 했고, 날카로운 흉기까지 들었기에 말릴 틈도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고를 해주었다. 그러나 경찰과 119가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몇 분 전, 가까이에서 지켜본 목격자 중 한 사람은 할아버지가 낮게 읊조리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하냐, 우리 할멈... 혼자 두고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