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의 아빠는 어려서부터 천재였다. 지선의 막내 고모 은혜에겐 한없이 위대한 오빠였다. 그는 늘 모르는 게 없었으니까.
아들 셋 딸 하나의 자녀를 둔 50대 부부의 늦둥이로 태어난 지선의 막내 고모 은혜는 늘 외로움을 느꼈다. 모두 어른인 가족 구성원 중에 자신만 아이였고, 어른인 가족들처럼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어른스럽다는 어른들의 말을 은혜는 좋아하지 않았다. 은혜가 선택해서 어른스러워진 것은 아니니까. 그저, 가족들이 눈살 찌푸리는 걸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아이는 아이다운 게 행복하다는 걸 은혜는 아이였을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은혜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뿐.
그런 은혜에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바로, 천재 박사로 불린 둘째 오빠 경석의 아내, 오혜주였다. 은혜에게 올케언니 혜주는 봄바람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어두움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아이처럼 밝은 사람. 어른만 존재하는 이 가족 구성원에서 혜주는 기꺼이 은혜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은혜의 따뜻한 위로를 받은 지선은 장례식 후 곧장 다시 서울로 향했다. 서울행 기차 안에서 지선은 문득 그 날을 떠올렸다. 엄마가 떠났던 날, 어린 지선을 두고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한 혜주의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맺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