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망설이다 간신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들이 한 번에 내게 꽂힌다. 대부분 아는 얼굴이다. 아빠의 집은 아빠의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생전에 그와 교류는 없었어도 피를 나눈 혈육의 때 이른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부고를 알리는 전화 속에서도 제 말하기 바빴던 고모는 거기서도 쉴 새 없이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녀 나름의 슬픔을 잊는 방식일까, 애도하는 방식일까, 아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고모는 견고한 자신의 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해시킬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다.
누가 가만히 내 어깨를 짚었다. 말없이 다정한 손길, 누군지 알 수 있다. 막내 고모다. 늦둥이였던 막내 고모는 나와 나이 차이가 열 살도 나지 않았다. 막내로 자랐지만 늘 어른 틈에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늘 어른스러웠다. 몸집이 작고 가냘팠지만 아빠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내 보호자였다. 나를 보호할 때 그녀는 누구보다 강했다.
엄마가 떠난 후 그녀는 엄마가 챙길 법한 것들을 오래도록 챙겨주었다. 친구이자 엄마 같았던 사람. 내가 성인이 막 되었을 때 막내 고모는 첫눈에 반한 프랑스인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로 떠났고 한동안 연락이 소원해졌다. 그리고 10년쯤 더 지났을까, 핼쑥해진 얼굴로 한국에 들어온 막내 고모는 혼자였다. 남편도 아기도 모두 도둑맞았다고 했다. 나는 그때 내 삶이 버거워 고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일가족이 모두 모이는 이 불편한 자리를, 아마도 그녀는 오직 나를 위해 참석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내 엄마 자리를 채워주고 싶었던 거다. 덜컥 눈물이 났다. 기댈 곳이 생기니 사람은 이렇게 틈이 벌어진다. 토닥토닥, 막내 고모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나를 이끈다. 그제야 나는 맘 편히 펑펑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