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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Dec 31. 2021

어린이들이 쓰는 아듀, 2021!


2021년이 하루 남았다.

12월의 마지막 하루가 특별한 것은 지난 일 년 동안의 우리의 수고가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했던 팬데믹의 세상은 교육 현장에도 거대한 소용돌이 몰고 왔고, 안전과 교육의 문제를 담보할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엄혹한 시대 탓만 하기엔 우리 아이들의 교육문제는 엄중한 현실이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공교육이 담아내지 못한 아이들 잃어버린 시간을 우리는 언제나 회복 가능할지 우린 가늠조차  수 없다.


2021년은 2020년과는 달라야 했다.

초등 1, 2학년은 매일 등교를 실시함으로써 교육과 돌봄이 동시에 필요한 어린 학생들에게 오랜만에 공교육의 역할을 다시 재개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평범한 모습을 우린 오랜만에 되찾았다. 그렇게 2학년 아이들과 일 년을 달려왔다.


1학년이라는 학교에서의 적응기를 놓친 반쪽짜리 2학년이었지만 아이들은 놀라운 속도로 학교와 친구들에게 적응했다.

2학기 들어 급식 후 오후 수업이 재개되자, 아이들에게 급식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친구들과의 자유로운 놀이가 때로는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연습 없이 굳건해지는 일이 있던가. 놀다가 다투고 화해하며 더 돈독해지는 친구 관계 맺기는 교육 현장에서 다루어야 할 큰 역할 중 하나이다.


그래서였을까. <2021년 한 해를 보내며>라는 주제로 함께한 글쓰기 시간에 내어놓은 아이들의 문장에선 유독 친구들과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이제 2021년도도 끝나간다. 다른 친구들이랑도 헤어지고 선생님도 바뀌어서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같은 반이 되고 싶은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같이 있던 2학년 0반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건 싫다.
(중략)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기는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니... 지금 있는 우리 반에서 같은 반이 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제발!


<아쉬운 2학년>이라는 제목의 담쟁이(가명)의 글이다. 익숙한 관계를 떠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다. 어떤 친구들과 만나게 될지, 나와 맞는 친구를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 과연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내딛는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한다. 싫다고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는 일이다. 좋은 친구와 만나게 해 주세요. 제발.


쓰레기에는 파리가 꼬이고 향기로운 꽃에는 벌이 날아드는 법이다. 품성이 올곧고 선하니 담쟁이에겐 곧 좋은 친구가 생길 테다.

담쟁아, 올해 너와 함께여서 선생님도 참 행복했어. 너의 식물과 반려 동물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선생님은 오래 기억할 것 같구나. 3학년에 가서도 좋은 친구 사귀고 지금처럼 열심히 생활할 거라 믿어.


벌써 12월 29일이라니!! 하~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나? 2학년이 되어서 두근두근 할 때가 어제 같았는데... 올해를 보내며 고마웠던 사람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먼저 000 선생님! 우리 반을 이끌어 가셨다. 공부를 더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다. 우리 친구들! 우리 반 분위기 담당! 마지막 우리 가족! 나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도와주셨다(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 정도만 쓸게용!).
모두 모두 사랑해요. 2022년에도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아이비(가명)의 <고마웠던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은 연예 대상 수상급 소감이다. TV에서 각종 연예 대상 프로그램이 방영될 시즌이라 영향을 받은 듯하기도 하고. 일 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이러한 축복을 흘려보내지 않고 꾹꾹 담아낸 아이비에게 나도 감사하다. 분위기 담당인 우리 반 친구들 중 아이비도 큰 축이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혀둔다. 네가 없었으면 선생님도 재미나게 가르쳐 주지 못했을 것이다... 어째 나도 아이비의 수상 소감을 따라가는 듯하니 이쯤에서 그만.


아이비야, 너의 순수한 엉뚱함이 난 너무 좋. 세대를 막론하고 어필하는 너의 매력은 3학년에 가서도 충분히 발산될 거야. 너의 매력에 빠져드는 새로운 친구들과 새 담임 선생님이 선생님은 벌써부터 부럽구나.


내가 2학년 생활을 하면서 급식을 먹을 때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려주면 안 되지만 우리 반이니까 이 비밀을 밝히겠다.
바로 남자가 먼저 먹을 때만 맛있는 것이 나오는 거다! 오늘도 남자가 먼저 먹었기 때문에 짜장면, 야쿠르트, 단무지, 돈까스가 나왔다. 하늘이 내린 벌일까? 3학년 때는 반대였으면 좋겠다.


<급식의 숨겨진 비밀>이라는 제목의 모란(가명)이 글에서는 추리와 서스펜스가 넘실댄다. 이 학교에서 5년, 학교 급식 밥을 20년 넘게 먹어오면서 급식에 얽힌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어린이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과 상상력은 일상을 다채롭게 하는 활력소다.


'오랜만에 꼬질꼬질 지저분한 모습으로 우리 동네 목욕탕을 찾은 날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정기휴일이 왜 꼭 걸리는' 건지, '머피의 법칙'은 도처에 가득하다. 그럴 땐 내 운 없음을 타박하지 말고 집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맘 편히 샤워할 일이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세상엔 나의 행복을 가만히 두고 보아주지 않는 빌런들이 넘친다. 빌런의 에너지원은 나의 좌절과 패배다. 그러니 세상의 머피의 법칙과 만나거든 너무 노여워하지 말자. 시험날 쉬는 시간에 잠깐 노트에서 훑어본 것이 시험 문제 똭! 하고 나오는 '샐리의 법칙'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모란아, 언제나 현상을 꿰뚫고 의문을 제기하는 너의 총명함은 앞으로 네게 큰 무기가 되어 줄 거야. 이 닦는 선생님의 모습이 궁금하다며 화장실까지 따라오던 모습. 선생님은 학교에서 이 닦을 때마다 기억날 것 같구나.


나는 2학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국악 수업이다. 이유는 노래와 춤이 정말 머리에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악 수업을 3학년 때도 한다 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2학년을 떠나기 싫다. 1학년 동생들은 2학년이 되겠지? 벌써 나는 국악 선생님 얼굴도 잊어버렸다.ㅠㅠ


제비(가명)의 <올해를 보내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세월의 무상함을 읽는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기억은 새로운 온갖 것들로 채워진다. 제비가 국악 선생님(초빙 외부 강사)을 잊어버렸듯이 언젠가는 2학년 친구들과 나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래도 몸으로 익힌 율동과 노래는 제비의 몸 구석구석에 남아 언젠가 불현듯 흥얼거림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의 기분 좋은 느낌, 제비가 그것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를 바란다.    


제비야, 너의 시간차 눈웃음은 그 누구라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는 거 아니? 학예회 때 보여준 이정현의 <와> 댄스로 일약 우리 반 스타가 된 너. 연예인이 꿈인 너를 언젠가 더 큰 무대에서 만나는 날을 고대할게.



익숙한 인연과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 새로운 인연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함께 한 모든 것들에 대한 추억들, 서로의 건강과 행복에 대한 소망,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깔려있는 사랑. 우리 반 2021년이렇게 갈무리한다.


아이들은 40분 만에 후루룩 써 내려가던 <2021년을 보내며>라는 주제 글쓰기를 난 참 오랫동안 붙들고 있다. 여전히 비우지 못하고 채우려고만 들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좀 더 마음을 비워 새로운 좋은 들로 꽉 채워보겠다고 다짐하며, 아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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