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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an 08. 2022

어린이는 모든 실수로부터 배운다


아, 망했다.

꽃잎 속에 자리한 동 꽃술을 앙증맞게 그려 넣어야 했는데. 오동통하게 불쑥 튀어나온 꽃술은 색감의 조화마저 이루지 못 붉은 꽃잎과 따로 놀았다. 이러다간 지난 레슨까지 혼을 갈아 넣어(?) 그 동백 꽃잎마저 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위기 상황이었다.


유화 수업 5회 차. 지난 시간 동백 꽃잎 채색을 대강 마무리하고 비워두었던 꽃술을 그려 넣는 순서였다. 마음이야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연습한 대로 그리고 싶었지만 유화 생초보의 붓질은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선생님, 어떡해요."

간절한 눈빛으로 미술 선생님께 SOS를 보냈다.

"아, 괜찮아요. 크기가 커진 것일 뿐이니 주변 꽃잎과의 경계선을 덧칠해가면서 수정하시면 돼요."

말이 쉽지, 어디 그게 생초보에게 가능할 말인가.

미술 선생님은 말씀하신 대로 꽃잎과 꽃술의 경계를 덧칠하는 방법을 시범 보여 주셨다. 과연 신기하게도 꽃술 테두리와 맞닿은 꽃잎 부분을 덧칠하며 마른 붓으로 부드럽게 펴주니 꽃술의 크기는 작아지고 동백꽃잎의 경계는 더 선명해졌다. 선생님께서 하신 대로 다른 꽃술을 따라 해 보니 한겨울에 귀한 꽃을 활짝 피워낸 동백꽃의 귀한 꽃술 모양이 제법 완성되었다(한 시간 반 동안 꽃술 두 개 그렸으니 이쯤 '완성'이라 해 주오ㅜ).


동백꽃 3개, 꽃술 2개 그리는데 걸린 시간은 묻지 말아 주세요. 언젠간 저도 잘 하는 날이 오겠...지요ㅎ by 그루잠


덧칠을 통해 실수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 유화의 최대 장점인 것 같다. 이전에 망친 부분까지 복구해 내는 덧칠의 기적(?). 우리 삶에도 이렇게 덧칠할 수 있어 이미 엎질러진 말과 행동의 실수를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럴 수 있다면 남의 눈의 티끌에 분개하며 내 눈의 대들보에 관대했던 날들 마구 덧칠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나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나는 오늘 엄마한테 혼났다. 엄청 무서웠다. 왜냐하면 내가 콩나물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엄마한테 주먹밥을 달라고 안 주면 점심 안 먹는다고 짜증 냈다. 그러자 아빠는 굶으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다. 왜냐하면 아까 주먹밥을 먹고 싶다고 말을 하지 않고 무조건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가 왜 굶으라고 했는지 알았다. 다시는 엄마, 아빠에게 무조건 짜증 내면서 투정 부리지 않아야겠다.


<엄마한테 엄청 혼난 날>이라는 제목의 싱아의 글이다. 밥투정을 하다 부모님께 혼난 모양이다. 싱아는 글에서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반성하는 모습이다. 어린이의 반듯한 모습에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아빠에게 혼이 난 후 싱아가 알아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말이 진짜였을까, 싶다.

표정이 풍부한 싱아는 급식 시간에 자신이 먹고 싶지 않은 메뉴가 나올 때마다 유독 표정이 다채로워지는 아이다. 싫어하는 음식 앞에서는 눈썹을 치켜뜨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입꼬리가 한없이 내려앉았다.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여 여러 번 흔들어대며 자신이 얼마나 음식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온몸으로 보이곤 했다. 그런 싱아가 아빠에게 음식 투정으로 혼이 난 후 곧바로 자신을 반성했다니. 부모에게 혼이 난 어린이의 울적한 마음에 '왜냐하면... 때문이다.'와 같은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리가 없다.


그렇다고 싱아가 글을 거짓으로 써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아빠에게 혼난 직후 싱아는 정말 어떤 생각을 했을지가 궁금하다. 싱아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고르라고 한다면, '생각해 보니'일 것 같다. 싱아가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 문제 해결에 도달했는지 글에서는 다 알 수 없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엄마, 아빠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게 되었지 않았을까.


오빠는 나를 '0채소'라고 부른다. 한 번, 두 번 0채소라고 부르면 화가 난다. 그래서 자꾸 하지 말라고 얘기해도 오빠는 계속한다. 그래서 나도 오빠를 '0주스'라고 불러야겠다. 그래야 오빠도 내가 화난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화(가명)는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주제로 쓴 글에 오빠와의 일화를 남겼다. 어느 집이건 남매 지간에 사이가 좋은 집을 찾기란 쉽지 않나 보다(우리 집에도 이런 남매가 산다).

무조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기엔 남매 지간의 말과 행동 방식은 너무 다르다. 부부 지간에 서로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국화가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오빠에게 가르침을 전달하겠다는 용기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자신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자주 눈물을 보이던 국화에게 내가 일 년 내내 끌어내고 싶었던 강단이 아니던가.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는 참지 말고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국화가 오빠와의 관계에서는 좀 더 현명한 해결 방법을 찾길 바라지만, 세상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돌려주고 싶은, 참 나쁜 사람들도 있더라.


어린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통해서도 배운다. 그 배움의 과정을 어린이가 제대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어린이의 잘못된 행동에 야단만 있고 교육이 없다면 어린이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린이가 모든 잘못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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