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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un 24. 2022

어린이의 든든한 '뒷배'

포스트 코로나, 3년 만에 대면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게 좋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만나게 될 엄마였지만, 학교에서 보는 엄마는 더 특별했다. 맨얼굴도 예쁜 엄마였지만, 약간 화장기가 도는 엄마는 더 고왔다. "저분이 내 엄마야!"라고 친구들에게 목청 돋워 자랑하고 싶었다. 어린이의 마음이란 무릇 그런 것이다. 자신의 든든한 '편'이자 '뒷배'인 엄마, 아빠가 뒤에서 지지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잔뜩 어깨뽕이 올라가고 오장육부에 힘이 빡 들어가는 것. 그것이 '가족의 힘'일 것이다.


그런 엄마, 아빠를 모시고 초등 2학년 아이들과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다. 2년이 넘는 코로나 시대를 거쳐 온 2학년 아이들은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1학년 때도 부모님이 참여하는 수업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초등학교에 들어와 처음 경험한 학부모 공개수업이 얼마나 특별했을까. 수업 후, '학부모 공개수업'을 주제로 쓴 아이들의 글에는 아이들의 다양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문장들로 넘쳐났다.


오늘 긴장되는 학부모 공개수업 날이다. 내 부모님이 안 오실까 봐 걱정했다.
엄마, 아빠들이 (교실에) 들어오니까 떨리고 가슴이 벌컹했다.
수업을 듣는데 난 자꾸 엄마 쪽을 힐끗힐끗 보았다. 아무리 수업에 집중하려 해도 평소처럼 되지 않았다.
오늘 학부모 공개수업 날이다. 처음엔 약간 어색했는데 조금 지나니 괜찮았다. 계속 엄마만 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에 집중해야 해서 좀 아쉽고 답답했다. (중략) 뒤에 계신 엄마를 보니 눈썹이 약간 길어진 것 같았다.
학교에서 엄마를 보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 봤더니 엄마가 화장을 해서 그런지 예뻐 보였다.
나는 아빠가 우리 반에 와서 좋았다. 처음엔 조금 긴장이 됐다. 긴장한 이유는 공개수업을 처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멋진 아빠가 나를 많이 보고 있나 궁금했다.


내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녔을 때, 유치원 학부모 공개수업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내 수업을 조정하고 빈 시간에 다녀오느라 아이 수업 시간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맨 앞 줄에 앉아서 오매불망 엄마의 얼굴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을 아들 녀석이 수업 시간 내내 수업하시는 선생님 안 보고 뒤돌아 앉아 나만 바라보고 있어서 얼마나 난처했던지...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었으니 설마 그럴 아이는 없겠지만,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경험이니 아니라 단언할 수도 없었다. "엄마, 아빠들이 오셔도 상관하지 말고 평소 때처럼 수업에 집중하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부모님들이 한 분, 두 분 교실로 들어오실 때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요동쳤을까. 평소 때처럼 행동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 와중에도 조금 더 길게 그린 엄마의 눈썹과 집에서 보던 모습보다 조금 더 멋을 낸 엄마, 아빠의 모습은 아이의 눈무엇보다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나는 원래 발표하는 게 부끄러웠는데 엄마가 있어서 용기를 냈다.
엄마가 있어서 발표를 2~3번 정도 했다. 원래는 1~2번 정도 하는데.


내가 질문을 던지자 평소에 손을 거의 들지 않던 아이가 수줍게 손을 들었다. 몸도 작고 목소리도 작고, 급식량은 더 작은 아이. 교실 뒤, 다른 엄마, 아빠들 사이에서 오로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작은 심장에도 큰 용기를 내게 한다. 엄마의 힘이다. 존재만으로도 용기를 북돋우는 엄마의 힘.


오늘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살짝 긴장됐다. 엄마가 지켜보니까 좋았다. 엄마가 발표해서 내가 엄지척을 해 드렸다.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점을 말씀하셨는데 너무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바라는 대로 작은 도전을 계속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부끄러워하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전혀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내가 부끄러웠다. 2학기 때 또 한다면 그땐 엄마가 오셨으면 좋겠다.


'가족'을 주제로 한 수업이라 학부모님들께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을 생각해 오시"라고 사전에 부탁드려 놓았었다. 수업 중간에 부모님들이 발표하는 시간 덕분에 아이들은 긴장의 끈을 살짝 풀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시간 관계상 부모님들의 말씀을 다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한 어머님은 "작은 도전을 계속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마지막 문장을 쓴 아이의 아버님은 "밥을 잘 먹었으면 좋겠다"며 그게 아이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점이라고 화통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 덕분에 조금 팽팽했던 수업 초반긴장이 풀어졌는데 부끄럼 많은 아이는 생각이 달랐나 보다. 아이의 엄마가 오셨다면 어떤 것을 바란다고 말씀하셨을까. 어린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으려면 우린 한참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엄마가 와 있으니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수업을 더 열심히 했다. 수업이 끝나고 엄마가 가니 좀 슬펐다.
가족은 무엇인지(에 대해) 쓰는데 뒤가 부담스러워서 더 오래 시간이 걸렸다.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다. 내가 공부 잘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어쩌면 엄마가 학교에 온 건 오늘 하루지만, 매일매일 나를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신지도 모른다. 응원해주는 엄마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칠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매일매일 더 수업에 집중해야겠다.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던 2학년 어린 꽃들. 몇 시간만 지나면 또 만나게 될 엄마, 아빠지만 응석받이, 개구쟁이, 징징이, 혹은 깍정이가 아닌, 의젓한 자신의 모습을 엄마, 아빠가 좀 더 많이 보아주시기를 바랐을 게다. 수업 시간에 보여준 더 의젓한 자세와 더 커진 목소리 항상 뒤에서 든든하게 마음으로 응원하고 계신 엄마, 아빠라는 '뒷배' 덕분이었다는 것을, 언젠가 비로소 알 때가 오겠지.


수업 내내 따뜻한 눈빛으로 격려해 주시던 부모님들과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을 다한 아이들의 마음이 함께 만들어낸 온기. 3년 만에 맞은 대면 학부모 공개수업이 그리 낯설지 않았던 이유다.


학부모 공개수업 때는 아이들이 더 의젓해집니다. (사진 출처: 한우리 독서논술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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