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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2.



- 같이 들으면 좋은 음악 : [ 한시인 - Kiek ]




그곳에서 너는 답을 찾았을까. 듣게 되었을까. 내리는 비에 담긴 마음이 무엇일지 묻는 이서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은 언제나 무참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세하는 그날을 수도 없이 반복해 생각했다. 군데군데가 비어 기억 나지 않았다.

뭐라도 말했어야 했다. 잘게 부서져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포말 하나에도 빗방울의 그치지 않은 울음이 있을지 모른다고도. 이게 무슨 말인지 스스로조차 모르겠어도 아무런 말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수없이, 숱하게, 숱하게 되새겼다. 그러니 푸른 바다 한 자락에도 다 여물지 못한 슬픔이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

“언니, 여기로 와 봐 봐.” 이서는 세하으로부터 약 15m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손으로 물의 표면을 가볍게 토닥였다.

세하는 이서의 손짓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멀리 있는 이서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게끔 평소보다 조금 목소리를 키워서 “아직 거기까진 무리야.” 외치듯 말했다.

“그럼 일주일 동안 키스는 없는 거야.” 그리곤 이서는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뭐? 야..!”

세하는 이서가 사라진 자리를 우두커니 잠시 바라보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무작정 물에 뛰어들어 발을 굴려 물장구를 쳤다. 세하의 손에 쥐인 킥판(swimming float helper)이 물살을 가르며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얼마나 헤엄쳤을까, 세하는 갑자기 몸이 물 바깥으로 들려지는 느낌에 균형을 잡으려 허우적거리며 수영장 바닥에 발을 디뎠다.

“이것 봐, 물안경을 쓰고 있는 데도 눈을 감으면 어떡해.”

세하가 눈을 떠보니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서가 보였다. 이서는 세하의 물안경을 조심스레 벗겨 주며 세하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에 세하는 화들짝 놀라며 “미쳤어, 누가 보면 어떡하려고.” 이서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이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누가 보면 어때. 잘못된 것도 아닌데, 볼 테면 보라 해.” 말하곤 당황해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쩔 줄 몰라하는 세하를 보며 짓궂게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런 이서를 샐쭉한 표정으로 지어 흘겨보려 했지만 이내 세하는 피식 웃으며 “정말이지, 못 말리겠다.” 하며 고개를 떨궜다. 세하의 두 뺨엔 미처 가시지 않은 홍조가 옅게 서려 있었다.

“누가 할 소리, 아무튼 귀여워.” 이서는 세하를 꼭 껴안았다.

이서를 부드럽게 밀치며 “오늘 얘가 정말 왜 이래. 우리 아직 군인이야.” 세하는 짐짓 엄숙한 척 말했다.

“뭐 어때, 군대도 아닌데. 여긴 우리 동네 수영장이잖아. 그리고 군인이면 뭐, 동성끼리 사랑도 하면 안 되나?” 그리곤 이서는 세하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다.

“아, 잠깐잠깐..!” 갑작스러운 물세례 공격에 속절없이 물을 맞으며 세하는 쏟아지는 물들을 피해 이서를 찾아 손을 허우적거렸다. 이서를 불러보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거듭 움켜 보지만 손에 붙잡히는 건 허공뿐이었다.


세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맑은 하늘엔 소낙비가 내리고 있었다. 꿈이었구나. 물을 먹었는지 코가 매웠다. 언제 잠에 들었던 걸까. 멍하니 누워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고 있다가 문득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5시였다. 이제는 교대를 해주러 섬으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바다 한가운데 시동이 꺼진 배 위에서 맞는 비는 한없이 적막하게만 느껴졌다.

하릴없이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면 잠시 슬픔을 잊을  수 있다. 꿈속에 이서가 나와도 울었고, 나오지 않아도 울었다. 이젠 잠들 수 있길, 오래. 세하의 낡지 않는 바람이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 그러나 하루 중 잠에 들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세 시간, 그마저도 이제는 단골손님이 된 불면이 찾아든 날에 비하면 후한 편이었다.


이서가 했던 말 끝에 와 있던 기호는 무엇이었을까. 세하는 생각했다. 물음표, 아님 온점이었을까. 답을 듣길 바라고 물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혼잣말이었을까. 의문문의 형식을 띤 문장의 생김에 비해 이서는 높낮이 변화가 거의 없는 목소리로 감정 없이 읊었다. 마치, 빗방울이 소리 없이 타오르는 불 위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이서는 그 문장들을 그렇게 발음했다. 그것만은 지독하게 생생했다. 그 물음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던 걸까, 혹은 비에 무언가 담겨있길 바라는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단념이었을까.


세하는 두 눈 위로 내린 빗물에 흐릿해진 시야를 닦으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을 감아 하늘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이 문제의 답은 추려낸 오지선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간추린 선지들과 찾지 못한 답안 사이의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며 세하는 생각했다. 괴리는 언제나 괴로움으로 수렴했다.


현생으로도 지난하여 장수도, 다음 생도 바라지 않았기에, 전생에 대해선 생각지도 않는 세하였지만, 이서가 죽고 난 이래로 생의 다수성에 대해 오래 생각하곤 했다. 만일 자신에게 전생이 있다면, 분명 큰 죄를 지었을 것이리라고, 장수로서 전쟁터에 나가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을 해쳤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렇지 않고선 생이 이토록 자신에게 모질 게 굴 순 없을 것이렸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에 너무 깊게 빠져 있을 때면, 으레 다음 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곤 했다. 이 생에는 이서가 없는데, 만일 이서가 다음 생에 있는 거라면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섬에 거센 파도가 날카롭게 몰아치는 날이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세하는 어쩌면 영영 잠들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파도에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세하는 두 번 정도 그 생각을 실행한 적이 있었다. 처음 한 번은 세하의 군대 동기이자 직장 상사인 현서가 있었을 때, 또 한 번은 세하가 혼자 바다에 나갔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삶은 죽음보다 질긴 것이었다. 세하는 자신의 목숨이 죽음보다도 억세다는 걸 알았고 하여, 신을 원망했다.


처음 시도를 하던 날 세하는 섬에서 등대원 근무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밤새 비가 내린 다음날이었다. 아침임에도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내려다본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게 짙었다. 밤새 비를 머금은 바다는 성이 난 듯 섬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고 가차 없이 새하얗게 부서져 내리길 반복했다. 섬의 끝자락, 절벽 위에 서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던 세하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래로 잠겨 들어가려 하지만 번번이 바다는 세하를 뱉어냈다. 영영 가라앉으려 바닷속으로 뛰어든 것이었지만 헤엄칠 줄 아는 몸은 좀처럼 가라앉아주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굳센 각오를 머금고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려 해도 생에 대한 끈기는 그 못지않게 끈질겼다. 기어이 헤엄쳐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마는 자신을 보며 세하는 이서에게 수영을 배워둔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는 바다 위에 드리운 구름처럼 걷잡히지도 않은 채 잠시 머물렀다 이내 이서를 향한 그리움이 되어 공기 중으로 번져 흩어질 뿐이었다. 살고 싶진 않은데 죽는 건 두렵다니. 스스로가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몇 번을 시도했을까, 의식이 점차 흐려져 갈 즈음 마침 근무 교대를 하러 섬에 온 직장 선배인 진서에 의해 발견되어 곧바로 육지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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