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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3.

- 읽으며 들으면 좋은 플레이리스트 : (Playlist) 잠시만 꼭 안아줘

https://www.youtube.com/watch?v=m4goCvkPru0&list=PL_v5_6nvwjT3ZXv42KwDEzhZjjFZL-cmu&index=2&t=442s 




세하가 군인이었던 것도, 이서가 살아있던 것도 벌써 9년 전의 일이었다. 세하는 무인도서에서 등대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등대원은 우리가 흔히 등대지기라고 알고 있는 직업의 정식 명칭이다.)


“다녀왔습니다.” 세하가 말했다.

“수고했어.” 갑판에서 내리는 세하의 손을 붙잡아 주며 강현서가 말했다. 현서 또한 섬에서 세하와 보름마다 교대로 근무하는 등대원 선배였다. 세하 보다 키가 작고 구릿빛 피부에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어, 머리…”

“아, 맞아. 잘랐었어. 그새 까먹고 있었네, 나.” 세하의 놀란 기색에 자신이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새삼 기억이 난 듯 현서는 자신의 뒷머리를 가볍게 털어내듯 매만지며 말했다. “맞아, 군대에 있었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지.”

현서는 세하가 군대에 있을 때, 세하와 같은 사단의 소령이었다. 세하는 중위였다. (군대 계급 소령의 경우, 영관 장교에 속하며 다음 계급으로 장군 계급에-원수/대장- 속하고, 그다음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위의 경우, 영관 장교 아래 위관 장교에 속하는 계급이다. )

“군대 하니까 네가 나한테, ‘어이 거기’라고 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현서는 호기롭게 웃으며 세하의 등을 두드렸다. “사실 나야 부하들이랑 친구처럼 지냈으니까 크게 신경 안 썼지만, 하필 그때가 분대장님이 오셨던 때라서, 다들 식겁했었지 아마…”

세하의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현서는 정확한 정황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했다. 현서와 친해지게 된 건, 두 사람 모두 군대를 나온 뒤의 일이었기에.


그날은 사단 내에서 정식 행사가 있던 때였고, 여러 고위급 참모들이 참석했던 자리였기에, 복장과 규율 준수에 각별한 주의가 권고된 상황이었다. 상장 수여 및 계급 진급이 이뤄지고 나서 단체 사진을 찍던 중에, 세하의 중대 차례에 군복 바지에 실내복 반팔 차림의 누군가가 앞을 가리고 있었고, 중대원 중 한 명이겠거니 생각하며 빨리 사진을 찍기 위해 좀 나와 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알고 보니 새로 부임한 대대장인 현서였던 것이다. 세하는 소대장이었고.

당시, 함께 자리에 참석해 있던 연대장은 계급 간 위계를 엄격히 따지기로 유명했는데, 그 앞에서 세하가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현서에게 반말을 했던 것이다. 부산스러웠던 중대가 일동 정지 상태가 되었고, 고요하다 못해 삭막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른 대대장이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으나 나아지지 않았고 조용한 운동장에는 흙먼지만이 계속해서 일고 있었다. 연대장이 세하를 주시하고 있던 차에 먼지가 세하의 눈에 들어가며 저도 모르게 세하는 눈을 찌푸렸다.  

“어디서 표정을 구겨!” 연대장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퍽 소리가 나며 세하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연대장이 세하의 정강이를 발로 찬 것이었다. 그리고 연대장은 정강이를 손으로 감싼 채 넘어져 있는 세하를 다시 한번 발로 찼다. 또 한 번,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고 다시 한번 발로 차려는 순간 누군가 그 앞을 막아섰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 것입니다.” 이서였다. 세하는 손을 뻗어 이서의 바짓단을 당겼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 뭐하는 놈이야.” 연대장이 뒷짐 진 자세로 버티고 서 있는 이서의 어깨 한 죽지를 거세게 밀쳤다.

이서는 잠시 휘청였으나 이내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서 “표정을 구긴 게 아니라,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 것입니다.” 서 있었다.

연대장이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현서가 황급히 달려오며 연대장에게 무전을 내밀었다. “사단장님 오신다고 합니다.”

잠시 무전을 바꿔 받은 연대장은 연락을 듣더니, 잠시 몸을 돌려 무어라 답하고는 바닥에 누워 있는 세하를 한 번 쳐다 보고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는 이서를 바라보며 “강이서. 내, 자네를 잊지 않겠네.”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듣기로는 이서와 현서 선배가 나를 부축해서 옮겼다고 들었다. 현서 선배와 말을 트기 시작한  그때부터였다. 그러고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정강이 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이 찢어졌다고 했었지 아마.  상념이 거기까지 이르자,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안녕하세요.” 현서 옆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세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진주원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생각을 미처 정리할 새 없이, 정신이 든 세하는 얼결에 악수를 하며 인사하고는 현서를 바라보며 누구냐는 식으로 눈짓을 보냈다.

“이 친구는 서른한 살 신입, 이제부터 나랑 함께 2팀에서 일하는 친구야.” 현서가 옆에 서 있던 주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이제부터 2인 1팀 체제로 들어가잖아.”

“네?” 세하는 그녀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으며 말했다. “2인 1팀이요?”

세하가 너무 놀라며 반문하자 멋쩍어진 현서는 고개를 긁적이며 “응, 그렇게 되었더라고…” 말했다.

둘 사이에 서 있던 주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보고 있자, 현서는 주원의 등을 토닥이며 “자네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이 친구는 아무도 없는 섬에서 혼자 일하는 게 좋아서 등대원을 시작했던 거거든. 평생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뭐냐길래, 내가 강력히 추천해주기도 한 직업이기도 했고… 근데 이번 달부터 무인도서에 관한 정책들 대부분이 개편되면서, 안전상의 문제도 있고 여차저차 해서, 2인 1팀이나 3인 혹은 4인 1팀 체계로 바뀌었거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세하를 바라보며 “안 그래도, 섬이랑 집으로 공문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책상 위에 봉투가 그대로 있길래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군.. 모르고 있었구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세하는 말없이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무 갑판 틈 사이 아래로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근데, 그래도 우리 섬은 작은 편이고 관리하는 데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편이 아니라서, 3인 1팀 체제로 한다는 걸 2인 1팀 체제로 충분하다고 내가 말씀드렸어. 그러니까, 막 엄청 큰 변화가 있진 않을 거야. 오히려 교대로 하게 되면 좀 더 편할 거고, 그리고 또.. 뭐가 있지…” 현서는 멋쩍은 눈치로 주원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근무한 지 15일밖에 안 된 주원이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그 설명에 설득력이 생기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여전히 고개 숙인 채로 무언가를 골몰하고 있는 듯한 세하를 걱정스레 쳐다보던 현서는 결심했다는 듯 “자, 일단 들어가자.” 고요를 깨우고자 두어 번 박수를 치고는 “아직 춥다, 추워. 아직 한참 꽃샘추위 기간인가 보다.” 양손을 마찰시키며 말했다. “아마 너랑 한 팀이 된 친구는 모레쯤이 되어야 올 거야. 우리는 지금 너랑 저녁 먹고 돌아갈 예정이야. 그래도 날인데, 오래간만에 바비큐 파티 하자. 이 친구, 주원이 어머니께서 육지 고기랑 바다 고기 이것저것 싸서 여기까지 배달해주셨어. 자네랑 함께 먹으려고 일부러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지. 어여 짐 줘.”

“아, 아뇨. 제가 들겠습니다.” 세하는 거부하며 자신의 양손에 모든 짐을 쥐었다.

“너 혼자 다 들기엔 무거워.”

“괜찮습니다.”

“아니래도.” 그러나 한사코 거부하는 세하만큼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현서였다.

“괜찮…”

“……”

세하의 손에 들려있던 박스가 뒤엎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물건들이 쏟아져있었다.

“이렇게 될 수도 있어서, 그럴 줄 알고 제가 든다는 건데…”

서로 잠시 말없이 엎질러진 물품들을 바라보다가, 세하가 먼저 몸을 굽혀 쏟아진 물건들을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현서도 이내 정신을 차려 세하 옆에 쭈그려 앉아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 주원도 함께 도왔다.

세하가 챙겨 온 식료품 상자 안 곳곳을 살피며 현서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이거 봐. 또 라면하고 냉동식품만 잔뜩 사 왔지. 유통기한이 짧더라도 제대로 된 밥이랑 야채 같은 거 잘 챙겨 먹으라니까, 건강 생각해야지. 속상하게…” 말했다.    

“……” 세하는 말이 없었다.

“아냐, 실은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괜한 소리들을 했네.. 미안하다… 설마 했지만 엎지르게 될 줄은…”

“……”

“이제는 우리가 같은 직장 동료이고, 더 이상 군대 상사도 아니고, 잔소리처럼 들릴 거 알아. 그래도 자네 걱정하는 내 생각도 좀 해주라. 혼자 다 껴안고 있지 말고, 너무 힘이 드는 건 좀 나눠 들어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니다.. 아무튼 정말 미안해.”

“괜찮아요. 다행히 깨진 것도 없고, 다친 사람도 없으니까. 그리고 저도 또 저도 모르게 고집을 부린걸요.” 자신의 손바닥에 사선으로 굵게 그어진 흉터를 보며 세하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게요, 이런 버릇도 고쳐야 하는데 좀처럼 잘 안 되네요…” 그러다 옆에 있던 현서를 바라봤는데, 세하는 그만 ‘와하’하고 웃고 말았다. 무슨 일인가 하여 묵묵히 물건을 줍고 있던 주원이 주위를 둘러보는데 현서 선배가 눈물 그렁그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세하는 그런 선배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난처하면서도 그러나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주원이 세하를 마주치고 나서 처음 본 밝은 표정이었다.

“아무튼 선배도 정말… 군대 동기들이 선배 모습 보면 깜짝 놀라겠어요. 선배만 온다고 하면 다들 호랑이 온다고 하면서 일동 기립하곤 했는데…”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던 세하는 주워 담은 상자를 번쩍 들고 일어서며 “그럼, 그 상자는 선배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부탁했다.

“그래, 고맙다 짜샤.” 현서는 그제야 웃으며 상자를 들고 앞으로 먼저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뒤에 남겨져 있던 세하와 주원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현서를 따라나섰다.

세하는 알고 있었다. 군대에 있었을 당시, 현서가 그토록 엄하게 행동했던 까닭을. 현서는 세하의 정강이를 좀처럼 쳐다보지 못했다. 세하의 정강이에는 당시의 수술 자국으로 긴 흉터가 나 있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일 거다. 군대 내에서는 찰나의 실수가, 단순히 실수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목숨을, 삶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현서가 택한 엄격함은 상위 책임자로서 모두를 지키기 위함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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