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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5.




전자레인지 안에 냉동된 새우 볶음밥을 넣어 해동 버튼을 눌러 두고, 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세하의 시선에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이 들어왔다. 칠월… 속엣말로 홀로 발음해보며 마지막으로 달력을 봤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하다가 세하는 문득 모든 게 너무도 먼 동시에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의 연속성과 중첩성에, 그 끊임없는 세월의 물살에 멀미와 같은 아득함이 밀려드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바깥공기를 쐬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세하는 가동되고 있는 전자레인지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해동이 채 끝나지 않은 밥을 꺼내어, 숙직실 밖으로 나왔다. 어둑해져 있을 줄 알았던 밖은 여전히 밝았다. 하늘엔 노을이 번지며 이제 막 해가 수평선 저편으로 넘어가는 중인 듯했다. 

세하는 멍하니 바다 위에 물들어 있는 노을빛을 바라보며, 어느덧 하루에 해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음이 새삼스레 생각될 무렵 문득 아까 봤던 달력이 스쳐 지나가며 얼마 전 하지를 지나왔다고 전해주던 해단의 말이 떠올랐다. 낮이 가장 긴 날을 지나 섰으니 또다시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었다. 잇따라 해단과 한 팀이 되어 교대 근무를 한 지 어느새 일 년 하고도 아마 반년이 더 지났음이 새삼 깨달아졌다. 그러고 보면 초반에 종종 등대 오작동을 일으켜 주변 선장들의 제보가 끊이지 않던 전화기도 어느새 잠잠해졌고 이는, 등대를 관리하는 해단의 실력이 많이 늘었음을 뜻했다. 


세하는 도시락을 들고 가 섬 끝자락에 자리해 있는 의자 위에 앉았다. 평소 세하가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밥을 먹으러 오는 곳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도시락을 열어, 밥을 한 수저 뜨려 했지만, 밥이 잘 떠지지 않았다. 겨우 한술을 떠서 입에 넣었지만, 미지근하고 뜨겁고 찼다. 해동시키고 있던 도중 전자레인지에서 꺼내어 그런지 볶음밥 군데군데 서로 뭉쳐 있었고 녹지 않은 구석들이 여전히 있었던 것이었다.

익숙하다는 듯, 세하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음 수저를 떠서는 입에 넣었다. 맛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먹는 건 다만 먹지 않으면 배고픔이 이내 통증으로 번지기 때문이었다. 맛있어서도, 살기 위해서도 아닌 그래도 죽진 않고 산 몸이라고 해서 먹지 않으면 가시지 않는 허기가 가시와 같이 배를 찔러 왔다. 그 무엇도 먹고 싶지 않았으나 무엇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 살고 싶진 않지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수평선 너머 펼쳐진 바다. 일몰과 일출의 바다는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면 끝없어 보이는 길고 긴 하루도 흘러가긴 하는구나. 세하는 입안의 볶음밥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자레인지에 좀 더 돌릴 걸 그랬나. 익다 만 밥알들이 딱딱하게 씹혔다. 


세하가 앉아 있는 의자는 세하가 섬에서 근무하게 된 지 삼 년이 되어가던 해에, 직접 만든 의자였다.  목공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섬에서의 일하는 시간 외에 섬을 나가서 쉬는 보름간의 기간 동안 홀로 배를 타기 시작했던 건 세하가 등대원이 된 지 오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어느 날 떠오른 기억 하나와 함께, 세하는 목공을 시작하게 되었다. 


“언니, 나 퇴직하면 목공을 취미 말고 본격적으로 배워 볼까 봐. 내가 배 만들 테니까, 그거 타고 나랑 같이 여행 다니자.” 세하가 해외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이서가 느닷없이 전화 통화 중에 했던 말이었다. 

“어? 퇴직? 그리고 갑자기?” 세하가 말했다. 

“오롯이 내 힘으로 만든 배를 타고 바다에 가보고 싶어. 바다에 나가 배 위에 같이 앉아서 노을도 보고 별도 보고 일출도 보고 그러자.”

평소 이서는 스스로가 군대 체질이라며 퇴직 연금 받을 때까지 복무하겠다고 말하고는 했었다. 직접 자원하여 나라를 지키고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음에 자랑스러워했다. 그랬던 이서의 갑작스러운 퇴직 이야기와 바다라면 무조건 싫다고 했던 이서였기에 세하는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그러면 나는 노 저어야 하니까 그전까지는 군대에서 훈련 열심히 하며 근력 키워 두어야겠다고 말하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했었다. 바다를 항해하며 여행하는 것이 꿈이라는 이서의 말에 사랑하는 연인인 이서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다 좋은 세하는 그 꿈을 그녀와 함께 꿨다. 이서에게 소중한 것은 세하에게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둘은 배를 타지도 함께 바다에 가지도 못했다. 비가 오던 날의 마지막 전화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는 세하에게 편지로 이별을 통보했었다. 세하가 해외 파견 복무를 마치고 서둘러 귀국해 이서를 찾았을 때, 이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이서,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이서의 죽음 이후로 이서가 있던 군부대에 찾아가 난동을 피우다 쫓겨나다시피 퇴직하여 군대를 나온 세하는 등대원으로 섬에서 일하는 기간 외에 육지에 상주해 있는 시간 동안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채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그러다 한 번은 현서가 섬에 있는 사무실에 있는 책상이 낡아서 새로 사야 할 것 같다고, 자신은 인터넷에 서투르니 대신 좀 찾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할당된 예산에 부합하는 가격대의 적당한 책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전하고 있던 차, 그러다 세하의 눈에 들어온 건 집에 놓여 있던 단 하나의 가구인, 식탁이었다. 그건 세하와 이서, 두 사람이 함께 대학교에 다닐 때, 이서가 만들어 주었던 것이었다. 원래는 이서와 함께 살던 자취방에 놓여 있던 것이었다. 군대에서 나와 다시 그곳에 들어가 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방 안의 모든 곳에 이서의 기억이 배어 있는 듯해 견딜 수 없었다. 도망치듯 그곳을 나와 다른 곳에 방을 구했다. 


“그냥, 나무를 다듬고 있다 보면 그 속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느낌이 좋아. 그리고 나뭇결에 새겨진 나이테를 보고 있으면 나도 내 생에 새겨진 의미들을 매만져보게 돼. 그리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무의 고유한 성질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무는 언제나 나무이니까, 그러면서 시간과도 함께 흘러가기도 하고, 그게 그렇게 좋더라. 나무가 지닌 유연한 견고함을 닮고 싶고 그래서.” 

또래 친구들은 놀러 다니거나 옷을 사고할 때 왜 알바를 해서까지 다른 것도 아니고 목공을 배우냐는 세하의 물음에 대한 이서의 대답이었다. 

이서가 만들어 준 식탁을 보고 불현듯 그날의 대화가 떠오르며, 세하는 그 길로 곧장 공방에 가 목공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목공 수업을 마치고 남아 배운 걸 연습할 때면 세하는 나무 앞에 앉아 자주 숨죽여 울었다. 


고급반에 올라가 정해진 주제 이외에 자율적인 창작 과제를 받았을 때 세하가 가장 처음 만든 건, 의자였다. 섬에 둘 목적이었다. 몇 주 간격으로 단단히 코팅했다.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 둘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 팀당 한 명으로 보름 간격으로 교대 근무가 이뤄졌기에 한 번에 앉을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세하는 자체적으로 조절하여 등받이를 있게 할 수도 없게 할 수도 있는 의자 두 개를 만들어 섬 끝자락 중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있는 곳에 두 의자를 나란히 고정해 두었다. 본격적인 업무 시작 전, 의자 등받이를 내려 반대편 서쪽을 향해 앉아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세하의 어김없는 일과 중 하나였다. 

세하의 걱정과 달리 해단이 왔다고 해서 아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세하의 근무 시간은 저녁 7시부터 아침 6시 30분, 해단의 경우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였다. 그렇다, 근무 교대 때를 제외하고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근무 시간이 줄었고 쉬는 시간이 늘었다. 그렇다고 하여 세하가 쉬는 시간을 의미 있게 쓰려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좀 더 편해졌다 할 뿐, 딱 거기까지였다. 혼자 일하던 섬에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게 마냥 달갑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과 접점을 가져야 하는 다른 일들을 떠올리며, 세하는 이만하면 다행인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단축된 근무 시간 덕택에 잘하면 이따금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세하는 해단의 등장으로 인한 그 모든 변화를 긍정할 수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어느새 바다의 수평선을 거의 다 넘어가 있었다. 손목의 시계를 보니 시침과 분침이 저녁 여섯 시 사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들어가자. 세하는 주머니에서 입냄새 제거 스프레이를 뿌리고는 도시락 뚜껑을 덮어 쥐고 일어났다. 밥은 여전히 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어, 선배님 언제 오셨어요..?” 탁자 위에 엎드려 있던 해단이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업무용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세하는 해단이 있는 뒤쪽으로 살짝 고개 돌려 힐끔 바라보곤 다시 앞을 바라보며 “좀 됐습니다.” 말했다. 

“지금이 몇 시…” 비몽사몽 한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보던 해단이 놀라며 “벌써 일곱 시 반이네요..?!” 말했다. 

“네.” 

“깨우시지…”

“……” 세하는 여전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지, 죄송합니다. 제가 알람을 맞추고 자야 하는 게 맞았죠.” 

해단은 서둘러 탁자 위에 널브러진 짐을 주섬주섬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때, 해단의 발치 아래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이게 뭐지. 바라보니 담요였다. 내가 이걸 덮은 기억이 없는데… 해단은 담요를 주워 손에 쥔 채, 세하와 담요를 번갈아 보았다. 이내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젓고는 세하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그동안 말 한 번 먼저 거는 법이 없는 선배셨는데, 설마 담요를 덮어주셨을 리가. 내가 잠결에 추워서 스스로 덮었겠지. 무엇보다  평소 인사할 때 선배가 날 바라보는 표정을 생각해 보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세하와 마주칠 때면 어딘가 자신을 불편해하는 티가 역력함을 해단은 모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언뜻 다른 상사분인 현서 선배에게 세하 선배의 경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다른 타인들과 같이 일하는 걸 어려워한다고 들었다. 다 알 순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수 있기에, 일일이 개인적인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세하 선배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표정과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주 살피는 사람 같았다. 


후. 해단이 나가자 세하는 그제야 작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게 아니라, 안도의 한숨이었다. 등대 관리실로 들어서며 탁자에 엎어져 자고 있는 해단을 발견하고 나서, 해단이 직접 일어나기까지 약 사십 분가량, 깨워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다. 해단을 깨워서 보내는 게 좋은지, 깨우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두는 게 좋은 건지. 보통이라면 뭐가 좋을지 좀처럼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자도록 두는 게 좋은지, 깨워주는 게 좋은지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동안 사람들하고 어떻게 소통해 온 건지, 나 원. 다시는 사람과 소통하지 않을 작정으로, 섬에 들어오면서 사회성이란 사회성은 모조리 육지에 내던지고 온 것만 같다고 세하는 생각했다. 

깨워주지 않아 실망한 듯한 해단의 목소리를 듣고 세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입술을 말아 무는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고들 하지만, 말 한마디로 동료들의 삶이 무참히 박살 나는 걸 수없이 봐왔다. 그렇게 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결국 복무를 끝마치지 못하고 제대한 동료를 비롯한 부하가 수십이었다. 입 열기를 주저할 때마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고, 번뜩이는 눈동자로 동료를 발길질하는 상사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던 군대에서의 자신이 생각나 무참히 부끄러웠다. 적어도 내 사람들은 그 꼴을 안 당하게 하겠다고 이 악물고 위로 올라갔는데, 정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살갗 아래에 피가 맺혔지만 끝내 터져 나오지 못하는 피멍 자국이 가득한 곳이었다. 군대는. 피 맛이 났다. 입술을 너무 물어뜯어서인지, 입술이 터진 것이었다. 비리네. 입술을 말아 무는 건, 세하가 긴장하거나 자책을 할 때 비롯되는 고질적인 버릇이었다. 그 때문에 세하의 입술이 좀처럼 아물어 있는 일은 드물었다.


관리 계기판들을 살피고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자동 조작으로 돌려두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던 세하는 인사하며 나가던 해단의 모습을 떠올렸다.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것이려나… 부쩍 피곤한 기색이 드러나 보였다. 세하는 오늘 아침때를 떠올렸다. 근무 교대 시간 전, 평소 적어도 삼십 분은 일찍 나와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해단인데, 오늘 아침은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나왔었다. 해단이 섬에 온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번 만날 때마다 해맑게 웃기만 하고 좀체 속을 알 수 없는 해단이 왜인지 불편했지만, 그와 별개로  세하의 성정 상 해단이 걱정되는 건 별수 없는 일이었다. 아픈가 싶어 담요를 덮어주긴 했지만, 그거론 부족한 것 같단 생각이 잘 떨쳐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없다 뭐다 했지만, 이제는 그래도 동료였고 구태여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친구 동생인 결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듯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저 나이대 애들은 보통 섬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이곳저곳 누비며 좋아할 때가 아닌가 싶어, 의아하기도 했으나, 혹시라도 실례인 걸까 해서 묻진 못했다. 세하는 계속 평소와 달리 해단의 상태가 좋지 않은 듯하여, 있다가 교대 때 만나면 홍삼을 좀 줄까 생각도 해봤지만 괜한 오지랖인가 싶고 이내 그만두기로 한다. 그저 속으로만 괜찮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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