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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6.

- 읽으며 들으면 좋은 음악 : [ painyolo - character of the Family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하가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보려는 순간, 관리실 전등이 꺼지며 사방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밖에 태풍이 왔나. 하지만 그런 예보는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날씨의 기복이 심한 계절이라 마냥 가볍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세하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호흡과 심장 박동이 좀처럼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과호흡이었다. 오늘 그런 얘긴 없었는데. 아직 태풍 시즌이 되려면 한 달이나 남았는데. 암흑 속 세하의 몸짓이 분주해졌다. 큰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던 자정으로부터 체감상 시간이 자못 지났을 것으로 보아, 곧 있으면 새벽 어선들이 다닐 시각이었다. 빨리 정전을 회복시키지 않아, 만에 하나 등대가 꺼진 채로 있다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 선박이 파선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여기서 정신을 잃어선 안 된다. 세하는 눈을 감고 속으로 숫자를 세며, 숨을 의식적으로 깊이 들이 마시고 내뱉었다. 


호흡이 조금 진정되자마자, 세하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주변에 익숙해지면서 흐릿하게나마 주변이 인식되어 갔다. 당장 관리실을 빠져나가, 밖의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이게 관리실만의 정전인지, 등대 전체의 정전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세하는 서둘러 책상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손전등을 찾았다. 

아, 하필 이런 때. 

손전등의 불이 켜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됐기에 별수 없다는 심정으로 방의 한구석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비상등 불빛을 의지해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 

윽. 우당탕 소리와 함께 세하는 소리 없는 외마디 신음을 삼키며, 자신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순간 바로 앞에 놓인 간이의자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세하의 발에 차인 의자가 바닥을 굴러 벽에 부딪히며 쾅 소리를 내고 나서야 멈췄다. 떨어진 손전등에서는 그제야 불빛이 나오고 있었다. 아파할 틈이 없었다. 이제야 켜진 손전등이 야속했지만, 단시도 지체할 새가 없기에 얼른 손전등을 들고 세하가 다시 일어나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그때, 갑작스레 문이 벌컥하며 저절로 열렸다. 


“언니, 아니 선배. 괜찮아요??” 

갑작스레 비춰오는 불빛에 세하는 순간 두 손을 자신의 얼굴 위로 들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 바람에 세하 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 불빛이 앞의 사람에게 겨눠졌다. 

“아, 미안해요.” 

해단의 목소리인 것 같은데, 

주섬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딸깍 소리와 함께 불빛이 가셨다. 

눈을 떠보니 해단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채로 세하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해단은 깜박했다는 듯이

“아, 잠시만요.”  뒤를 돌았다가 다시 앞을 본 해단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짠! 오늘 선배 생일이라면서요. 현서 선배한테 들었어요! 이거 제가 만든 똘뜨(북한말-케이크) 아니, 케이크예요! 저 이래 봬도 제빵 배웠거든요. 제빵 자격증도 있어요! 원래 제가 자정에 딱 맞춰서 축하해 드리려고 했는데, 글쎄 아까 잠깐 졸다가 오븐에 빵을 태워버린 거 있죠. 그래서 다시 굽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육지에 있을 때, 케이크 시트 사 오는 건데.. 하지만 꼭 직접 구워서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생크림 좋아하세요? 현서 선배께 여쭈니까 단 거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일부러 제 전문인 초코 케이크는 피했어요. 근데 또 휘핑기를 두고 와가지고, 이게 또 손으로 생크림 만들기가 아주…”

“아니, 정말 고마워요. 근데 미안한데, 지금 등대가 정전 상태인 것 같아서 빨리 나가서 발전기를..”

“아, 정전 아니에요! 제가 선배 깜짝 파티해드리려고 이 방의 전력만 잠깐 내렸어요! 아 물론, 아까 제가 일할 때 미리 기계는 발전기 가동 처리를 해뒀어요!” 

“네?” 그제야 세하는 주위를 둘러봤다. 새카만 방 안과 달리 복도를 비롯한 바깥은 온통 환했다. 기계들은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암전에 당황한 나머지 세하는 당연히 기계도 꺼졌으리라 생각하고 최대한 빨리 되돌려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그것보다 얼른 초 끄세요. 케이크에 촛농 떨어져요!” 해단이 해맑게 웃으며 세하의 얼굴 앞으로 케이크를 내밀었다. 

“하.” 세하는 왼쪽 무릎이 시큰거려 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넘어질 때 무릎부터 부딪힌 듯했다.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세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눈을 감고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화내지 말..

“어, 선배 지금 소원 비시는 건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불을 좀 더 늦게 붙이는 건데, 촛농이 너무 많이 떨어지네요… 뭐, 있다가 같이 먹을 때 걷어내고 먹” 

심호흡으로 소용없겠다 싶은 세하는 몸을 돌려 다시 관리실로 들어가려 했다. 

“선배, 잠깐만요. 이거 초 불고 가야죠..!” 

해단은 다급히 세하의 상의 옷깃을 붙잡았다. 지금 입을 열면 도무지 좋은 말은 안 나오겠다 싶은 세하는 무시한 채 들어가려 했다. 

“아, 선배.” 해단이 세하의 어깨를 잡으며 불러 세우려 했다.  

“아, 진짜. 전 생일 같은 거 안 챙긴다고요.” 세하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휙 돌리며 해단의 손을 쳐냈다. 갑작스러운 반동에 해단은 순간 중심을 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니까, 사람이 좋게 말할 때…” 세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술을 말아 물었다. 

바닥 위에 떨어진 케이크는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해단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이내 웃으며 “괜찮아요. 안 그래도, 혹시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두 개 만들었거든요. 우리 그걸로 축하하면 돼요!” 

입술에 핏기가 가시며 새하얘지도록 말아 물고 있던 세하의 얼굴이 바닥에 부닥쳐 찌그러진 케이크처럼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아니,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세하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화를 낼 감정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넘친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이 정도면 참을 대로 참은 것 같고 화를 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자신이 진정으로 화가 나는 게 무엇인지, 이 상황 때문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고 그러나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매번 실실 웃고 있고, 뭐가 그렇게 쉬워요.”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있던 해단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어 세하가 말했다. “그리고 현서 선배가 가르쳐 준 생일, 그거 제 생일 아니에요. 난,” 그리곤 세하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질끈 눈을 감고 신경질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전, 생일, 그딴 거 안 챙기니까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요. 그리고 빨리 전등 원래대로 돌려두세요. ” 


해단은 말없이 고개 숙인 채 널브러진 케이크를 보고 있었다. 세하는 눈을 들어 해단을 살폈지만 해단의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좀 지나친 것 같았지만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 들었을 거라 생각하며 세하는 도망치듯 관리실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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