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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7.

- 읽으며 들으면 좋은 플레이리스트 : https://www.youtube.com/watch?v=0AtzslmY8Io&t=439s 




문을 닫은 채, 세하는 문에 기대어 서서 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차가운 철문에 맞닿아 있는 등으로 철문의 서늘함이 스며드는 듯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가 하더니 문 밖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후. 세하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온 혈관에 가시처럼 날카롭게 돋아났던 긴장들이 한층 누그러진 듯했다. 몸 곳곳이 가시에 찔린 것만 같이 욱신거렸다. 내가 뭘 잘했다고 화를 냈을까. 고맙다고 한참을 말해도 모자랄 판에. 세하는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방 안의 계기판에서는 새끼손톱 크기만큼의 초록, 빨강, 노랑, 파랑 불빛들이 뒤섞여, 계기판 주위 버튼 위치들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빛들이 어슴푸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동안 그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기억해냈다. 전원 버튼을 눌러보지만, 언제 켜졌었냐는 듯 다시 불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등대의 관리 모드를 자동으로 바꿔두었다 하더라도, 직접 앉아서 살펴봐야 직성이 풀렸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 보려 했지만, 한쪽 눈만으로는 어두운 상황 가운데에서는 방향 감각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비틀거리다가 겨우 균형을 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지 생각하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바닥에 제대로 앉기 바로 직전, 바지 뒷주머니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에서야, 세하는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다는 게 생각났다. 나도, 참…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어선들이 활발히 일하는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여유가 남아 있었다. 

터치 스크린 위 비밀 번호를 눌러 잠금화면을 풀었다. 불빛에 방 안이 이전보다 한결 밝아지며, 핸드폰 화면의 불빛을 받아 세하의 얼굴이 보였다. 다른 조작은 하지 않고 세하는 그저 핸드폰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화면이 어두워 지려 하면 다시 터치해서 화면을 켰다.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바탕화면에는 이서의 사진이 있었다. 언니, 다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야지. 언젠가 들었던 이서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게, 그래야 하는데…” 세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게 너무 어렵다.. 이서야..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문득, 고개 들어보니 방 안의 불빛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세하는 황급히 일어나 계기판의 상황들을 확인했다. 모두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었다. 그제야 책상 위로 두 손을 짚으며 세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신발에 케이크 자국이 묻어 있었다. 

바로 휴지를 들고 뛰쳐나가 보니 바닥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해단 씨가 했나. 하긴, 여기에 그 사람과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물걸레질도 했는지 바닥 위에는 거의 다 말라가는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세하는 자신의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짓눌렀다. 좀 더 살갑게 굴 순 없었을까. 하도 깨물었는지 입술이 쓰라려 왔다. 이제 와서 무슨. 이미 다 끝나버린 일이겠지. 내가 망쳤고. 세하는 생각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나는. 나이만 먹었지. 나잇값이란 걸 하고 있긴 한 걸까. 애초에 내가 내 목숨 값은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럴 때면 내가 살아있는 것조차 민폐처럼 느껴진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세하의 시선은 자꾸만 시계로 향했다. 6시 30분. 40분. 45분이 되어도 해단은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25분쯤에 도착해서 커피를 내리며 세하를 배웅할 해단이었다. 사과가 쉬울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사과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건, 세하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현서의 배려로 인해 업무 교대 시간 사이에 30분간의 여백이 생기게 되어서, 굳이 세하와 해단이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평소 해단은  꼭 자신의 업무 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세하에게 인사하고, 기다리다가 퇴근하는 세하를 배웅하곤 했다. 


6시 48분. 세하는 이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그게 더 부담이 될 거라 판단하고는 관리실을 나섰다. 그때까지 해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날 저녁, 세하가 출근했을 때에도 해단은 없었다. 자리가 말끔히 치워져 있고 별다른 짐이 없는 걸로 보아서 해단은 이미 퇴근한 뒤인 듯했다. 케이크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이 마주친 적 없이 시간은 흘렀고, 여름의 습기에 한껏 내려앉아있던 하늘은 가을바람을 타고 다시금 점차 높아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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