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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9.

- 읽으며 들으면 좋은 플레이리스트 : 잠시 멈춰 서서 야경 바라보는 남산타원 직원 : https://www.youtube.com/watch?v=WCQuugw4y3E 




태풍이 지나가고 하늘은 잠잠해졌지만, 바다엔 아직 바람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은 듯 계속해서 매서운 파도가 불규칙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밤새 불어닥친 비바람에 뒤척이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이, 짙푸른 청록색의 바다는 깊은 밤에 묻혀 있는 듯한 빛깔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바다 표면 위를 넘실거리며 헤엄쳐오던 물결은 육지에 가까울수록 제 몸집을 불리더니 사력을 다해 육지에 제 몸을 부딪히고는 포말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작은 거품으로 부서지며 바닷속으로 잠겨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세하는 의자 옆에 자라난 나무를 매만지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 이 나무 좀 봐주세요.” 세하가 말했다.

세하는 자주 가는 대형 마트 옆 골목에 작게 자리 잡고 있는 꽃집에 들렀다. 

“이게 뭐당가.” 이연화가 말했다. 

연화는 사람 키만 한 화분을 들고 느닷없이 나타난 세하를 힐끗 훑어보았다. 세하의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아, 이건 화분…”

“그걸 누가 모른당가. 자네는 초면에 인사도 없당가.” 

“아, 죄송합니다. 세하라고 합니다.”

“… 이연화라고 하네.”

“네, 안녕하세요.” 

“그려, 아무리 바빠도 서로 인사하고 그러고 지내면 얼마나 좋은가!” 하곤 연화는 짓궂게 씨익 웃었다.

한창 화분 갈이 중이었는지, 연화는 신문지 위에 흙 묻은 손을 비벼 털어 내다가 안 되겠다 싶은지 매고 있던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으며 세하가 내민 화분 앞으로 가 섰다. 

“네에…”

세하는 지저분해지는 앞치마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손을 닦는 연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야, 너 아직 손에 아직 톱밥 잔뜩 묻어 있어!” 세하는 이서를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이서가 나무를 자르다 말고 도시락을 해왔다는 세하의 말에 손에 톱밥이 묻은 채로 음식을 집어 먹으려 들었던 것이었다. 

“아이구, 괜찮아 언니.” 이서는 태평스레 “여기에 닦으면 되거든.”말하며, 자신의 작업복 앞치마에 손을 쓱쓱 닦아 냈다. 그리곤 “이래야 열심히 한 보람이 나지.” 하며 장난스레 웃었다.



“세하 씨!” 연화의 목소리였다.

세하는 번뜩 정신이 든 듯,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

“아, 아뇨. 누가 좀 생각나서요.” 세하는 당황하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아니 그것보다, 여기 이 나무 좀…”

“것보다, 잠깐 일로 좀 와보게. 내가 보기엔 자보다(세하가 들고 온 화분을 가리키며) 자네가 더 급하네.” 연화는 책상 옆에 놓인 세면대에서 손을 씻더니 선반 위에 놓여 있던 흰색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그 속엔 각종 상비약들이 들어 있었다. 

“네..?” 세하가 무슨 소리인가 하여 묻자, 연화는 눈짓으로 세하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오른손에 피가 흥건했다. 돌아보니 새하얀 화분에도 군데군데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제야 세하는 자신의 오른손에 잡혀 있던 물집이 터진 걸 발견했다. 

“그걸 혼자서 여까지 들고 온 건가? 중요한 건가 보구만. 이 뙤약볕에 글케 땀범벅이 돼서 갖고 올 정도면 ” 

“……”


세하가 들고 온 식물은 이서가 남기고 간 거였다. 생전 생물이라곤 키워본 적이 없는 세하는 어쩔 줄 몰라 난감해하다가 인터넷에 이것저것 뒤적이며 주어 담은 지식으로 이 식물을 이제껏 길러 왔다. 섬에서의 등대원 근무를 제의받았을 때도, 세하로 하여금 가장 고심하게 만든 게 바로 이 나무였다. 때마다 들러 살펴봐준다는 현서의 말을 듣고 세하는 제안을 겨우 수락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무라 그런지, 물을 주는 주기가 길어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키워 올 수 있었다. 

여느 날처럼, 섬에서 근무를 마치자마자 바로 나무를 살피러 갔는데, 푸르던 나무가 누렇게 시들해져 있었다. 세하가 실수로 그만 집 마당에 화분을 두고 나갔던 것이었다. 그땐 또 하필 현서가 휴가를 떠난 주간이었다.  화분의 상태를 확인하는 즉시 평소 다니던 마트 옆에 꽃집이 있던 걸 떠올려 무작정 들고 온 것이었다. 

“암만 식물이 중요혀도, 자네 손을 이리 되도록 두면 쓰…”

“네. 사랑하는 사람이 주고 간 거예요.” 

연화는 말없이 세하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곤 

“앞으로 또 이런 경우가 있걸랑, 저기 가게 문 앞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 하세. 이래 봬도, 우리 집은 고런 흔치 않은 배달 서비스를 갖추고 있으니께.” 연화는 무심히 세하의 팔을 가져다가 흐르는 물에 묻은 피를 씻어 내곤,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인자 되었제?” 

“감사합니다.” 세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연화와 자신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엔 전문 의료용으로 보이는 반창고가 야무지게 붙여져 있었다. 

“내 솜씨가 꽤 하제? 왕년에 간호사 했었네. 고치는 일은 더 이상 그만하겠다고 두고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서 또 식물 의료원이 되어 있구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살리는 일이 좋더라구.”

식물 의료원… 세하는 단어를 곰곰이 곱씹다가 “좋은 말이네요.” 혼잣말처럼 낮게 읊조렸다. 

“응? 뭐가?”

“식물 의료원이란 말이요.” 

“그제?” 연화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자네 마음에 드네. 자넨 앞으로 우리 집 배달 서비스 다 공짜 하게!”

“네? 아.. 아니.. 괜..”

“괜찮아, 괜찮아. 내 재량이니까. 오가다 심심하면 들리고!” 말하며 연화는 세하의 어깨를 툭 쳤다. 

분명 장난으로 가볍게 치신 것 같은데 꽤 얼얼했다. 이런 주먹은 군대에서도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연화는 벙찐 채로 있는 세하를 거쳐 화분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건 일단 영양제 처방을 세 개 정도 해줄게. 나무가 병들었다기 보단, 이게 박달나무라고 워낙 크게 크는 나무라, 화분이 작아서, 그래서 그려.”

“그럼.. 더 큰 화분에 심어야 할..”

“아니, 이건 땅에 심어주는 게 좋아. 튼튼하게 오래오래 키우고 싶다면 말야. 심을 곳이 있는가?”

세하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섬에 있는 화단을 떠올렸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연화의 도움으로 나무는 여수에서 간여암까지 무사히 날라 심길 수 있었다. 그 후로 연화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이서의 기일이 될 때면, 연화의 꽃집에 들러 국화를 사 갔다. 



“역시 여기 계셨네요.” 

세하는 회상에서 벗어나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해단이었다. 관리실은 어떻게 하고 여기에 왔는지 의아하게 여기는 세하의 눈빛을 느낀 해단은,

“아, 관리실은 지금 현서 선배랑 수리 기사님이 계세요.”

“그렇군요.” 

“그나저나 노을이 예쁘네요.”

해단의 말에 세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주위에는 파도 소리만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올뿐, 그 외에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부러졌네요.” 해단이 말했다. 

세하가 옆을 보자,

“여기” 해단이 부러진 나뭇가지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대답하는 세하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나무에서 가장 길게 뻗어 있던 가지가 부러져 꺾여 있었다. 지난밤 태풍을 무사히 넘기지 못한 듯싶었다. 반쯤 꺾인 나뭇가지의 거친 단면은 밤 동안 섬이 겪었을 치열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거 박달나무 맞죠? 

“네, 맞아요.” 세하가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며 해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밤에 태풍이 역대급으로 강한 태풍이라 하더니, 정말 심했나 봐요. 박달나무는 하도 단단해서 어지간해서는 잘 안 부러지는데…” 문득 해단은 세하의 시선을 인지했다.  “아… 혹시 제가 뭔가 실수했을까요..? 혼자 또 말이 너무 많았나…”

“아, 아뇨.” 세하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실례했습니다.”

“……”

“……”

다시 적막이었다.


“그냥 좀 신기해서요.” 먼저 적막을 깬 건, 세하였다. “이게 그렇게 막 알려진 나무는 아니라서, 명칭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꽃집 사장님 외에 처음 보거든요. 물론 제가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하… 아, 그렇다고 제가 막 식물 박사인 건 아니구요. 제 이름. 리해단의 단. 이거 한자가 박달나무 단이거든요. 예전에 어머니께서 산에 심어진 박달나무를 보여 주시면서 말씀해 주셨어서, 알고 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태어나셨던 함경남도에 있는 마안도라는 섬에서 이 나무가 유독 많이 자랐다고 하시더라구요. 비록 제가 태어난 직후에 가족이 다 함께 평양으로 옮겼던 터라 그 섬에서의 기억은 희미하지만요.”

“아, 그럼.. 북한에서 태어났어요..?”

“네..! 아, 모르셨구나. 현서 선배는 알고 계시길래, 선배도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그럼 한국에 언제쯤…”

“열여덟 살 때요. 올해로 6년 되어가요.”

“그렇군요…”

“네. 어머니께 섬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저도 꼭 섬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와서 깨달았어요.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는 걸.”

“……”

“가족이 없어요. 저만 왔어요, 남에. 다른 가족들은 죽었어요, 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국경선을 넘다가 죽임을 당했어요.” 해단은 크게 심호흡을 하곤 묶은 숨을 토해내듯 힘겹게 말을 뱉었다. “와서야 알았어요. 가고 싶은 건 남한도 섬도 아닌, 어디든 좋으니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걸.” 

해단은 잠시 말을 멈추곤 땅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해단의 어깨가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길 반복하고 있었다. 세하는 해단의 침묵을 가만히 들었다. 반팔 위로 스쳐 지나는 바닷바람이 찼다. 

“하지만 북한은 그럴 곳이 못 됐죠.” 이어서 다시 해단이 입을 열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군인이셨는데, 작은 아버지께서 군수물자를 빼돌려 암시장에 내다 팔다가 당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집안 어른들은 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셨어요. 북한엔 연좌제라고, 가족 중 한 명이 범죄자가 되면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범죄자 취급을 당하게 되는 제도가 있어요. 저희 집안을 제외하고 나머지 친척들은 다 몰살되셨어요. 저희 부모님은 당에서 고위급 간부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두 분마저도 한쪽씩 다리를 잃으셨죠. 날이 갈수록 당에서의 압박은 더더욱 심해졌고, 게다가 그 해에 북한에 심한 기근이 들어서 사방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났어요. 저희 가족의 식량도 당장 한 달을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죠. 설상가상으로 극심한 추위가 불어닥쳤어요.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죠. 안 되겠다 싶으신 부모님은 집안에 남은 모든 가구를 내다 팔아 자금을 마련하시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중개인에게 돈을 맡기고 탈북 계획했어요.” 해단은 입을 말아 문 채로 파도가 암벽에 부딪쳐 부서져 내리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말아 문 입술이 새하얘지도록. “근데 그날, 탈북하기로 한 날. 아버지는 보이지 않으셨고, 시간이 임박한 저희는 일단 먼저 출발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국경선에 눈앞에 두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면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총성이 들리고 제 주위에서 함께 달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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