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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10.

- 읽으며 들으면 좋을 음악 : 눈물이 아닌 날들 (김윤아)





탕.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동시에 귓가에 부닥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해단의 등에 업혀 있던 송연이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어머이!” 갑작스레 빈 등허리에 놀란 해단은 곧바로 뒤를 돌아 땅을 살폈다. 전등 하나 놓여 있지 않은 새카만 들판에선 서로의 얼굴은 커녕 형체를 알아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송연이 보이지 않자, 해단은 무릎을 꿇고 손으로 주위를 짚어가며 차마 들킬까 큰 소리를 내진 못하고 속삭이듯 “어머이, 어디계심까.. 어머이.” 송연을 찾았다. 

그때 오른쪽에서 신음소리가 들려 달려갔더니 송연이 축 늘어진 채 누워 있었다. 기절한 듯했다. 해단이 송연을 다급히 흔들며 “어머이..! 어머이..!” 부르자 

겨우 깨어난 송연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힘없이 해단을 밀치며 “계속 가라이, 해단아. 내 두고. 어여…”하고 말했다. 

“무슨 말임네까! 같이 가야지예! 퍼뜩 인나 어여 업히이소!” 해단은 송연의 옆에 등을 내보이며 업고자 시늉했다.

“내래.. 더 못간다야.. 너거 아우.. 명호랑 어여 가야..”

“어머이! 글미 못씀다. 아서라요. 엄니가 안 가믄 지가 엄니 들쳐 매고라도 가겠슴다.” 그리곤 해단은 송연을 들어 올리려 손을 뻗었다. 송연의 등을 감싸 안았을 때, 해단은 자신의 손에 뜨뜻한 액체가 만져지는 걸 느꼈다. 


“여그.. 여그 어머이 등에서”

“단아.. 단.. 쿨럭.” 그 순간 송연이 입으로 피를 토했다. 

“피가 납네다..” 해단은 덜덜 떨며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지 않은 매마른 벌판의 자욱한 흙먼지에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숨을 들이쉬는 족족 목이 막혔다. 귓가에 웅웅 소리가 들리며 자꾸만 모든 것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다 거짓말 같았다. 

“저 새끼, 잡으라우! 내래 잡아서 다 죽쳐버리갓서!” 총성과 비명 소리, 개 짖는 소리.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죽이는 자와 죽는 자. 

살자고,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모두 다 살고 싶을 뿐인데. 다 어쩌자고 죽임을 당하고 죽이며 죽고 있는가.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매캐한 연기는 더 이상 공기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주위의 소리들이 점차 늦춰지며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철썩

“가라이!” 송연은 가까스로 팔을 들어 해단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 

그제야 해단의 정신이 차려진 듯, 다시 주변의 고함과 비명 소리가 빠르고 선연히 들려왔다. 이제는 아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머이… 어머이… 어머..” 명호의 목소리였다. 

그때서야 해단은 곁에 주저 앉아 숨 멎을 듯 끅끅거리며 울고 있는 명호를 볼 수 있었다.

“가서 살라우.” 송연은 방금 자신이 때렸던 해단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무신 일이 인나도, 쿨럭.” 그 손길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새를 매만지듯, 여린 생명이 행여 다칠까 염려된 나머지 너무도 조심스러운 듯 차마 만지지 못하고, “길테도, 꼭… 뒤돌지 말거” 뺨을 쓰다듬는 순간보다 허공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 보였다.  “살라우, 꼭.. 커헉.” 그렇게 말하다 송연은 힘에 부치는지 발작적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머이..! 말하지 마이소!” 자신의 뺨을 매만지는 송연의 손을 저의 양손으로 붙들며 해단이 말했다.  송연의 피에 겁먹은 해단의 옆에서 명호가 와앙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니 뚝 그치라우. 길티 울맨 까밝히지는데 답 없디야.” 팔꿈치로 명호의 옆구리를 툭 치며 해단이 다그쳤다.

“저짝이다! 따라오라우! 내래 잡아다가 얼죽음을(*반죽음) 치래 버리겠디, 기래.” 

주위를 훑어보는데 저편에서 비춰오는 수십 줄기의 불빛이 해단의 눈 주위로 왔다 갔다 하며 번쩍거렸다. 갑작스레 비진 불빛에 눈이 부신지 해단이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고 거듭 깜박였다. 귓가에 개 짖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듯하였다. 


“리해단! 리명호!” 불현듯 나타난 누군가의 불호령에 해단과 명호의 눈이 번뜩 떠졌다. 리하성이었다. 

“아버이..!” 하성을 부르는 해단의 목소리에 반가움과 “어디 계셨심까!” 애정 섞인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왔으니 다 살았다고, 해단은 생각했다. 평소 무뚝뚝하기로는 동네에서 손에 꼽힐뿐더러 가족에게조차 살갑지 못한 하성이었지만, 인민 공사단에서 잔치가 있는 날이면 그는 휴지나 비닐 봉다리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하나 둘 챙겨 돌아오곤 했으며,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업고 나는 명호 손을 붙들고 달려가면, 필시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탈북할 수 있으리렷다. 

“아버이, 어머이 좀 업어 주시렵네까. 어머이가 많이 아픔네다.” 해단이 하성에게 말했다. 해단은 가까이 선 하성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하성의 얼굴은 그의 머리 위에 깊게 눌러쓴 모자에 가려 확인할 수 없었다. 명호는 하성을 보자 울음을 잠깐 그쳤다가 이내 안심이 되었는지, 아까보다 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날래 꺼지라우!” 하성이 말했다. 

매서운 야단에 해단과 명호는 엉거주춤하며 일단 몸을 일으키면서도, 해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금방 들은 게 무엇인가 싶어서. 하성은 평상시는 물론 화낼 때조차 과묵했다. 잘못된 말이 내뱉어질 것 같으면 되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자리를 뜨는 편이었다. 마당을 한참 돌고 돌다가 또다시 덤덤한 표정으로 가족 곁에 돌아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아내 송연과 싸운 날에는 유독 많이 걸어 다니고서는 손에는 송연이 가장 좋아하는 약과 네 개가 든 검은 봉다리를 식탁 위에 툭 올려놓고는, 여느 밤과 같이 자신의 이부자리를 비롯해 아내의 이부자리까지 펴둔 뒤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곤 다음 날 일어나 아이들이 자는 걸 확인한 후, 아침 밥상을 차리고 있는 송연 옆에 다가가 “과자 잘 먹었습네까?”하고 넌지시 묻고는, 냉장고에 그의 몫으로 남은 약과 하나를 집어 들고 가 “이것도 드소. 내래 단 거 못 먹습네다.”라며 송연의 옆에 무심히 두고 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해단은 자는 척을 하고 있다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직접 보지 않아도 미안하여 쑥스러운 얼굴로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훤히 보이는 듯하여 혼자 키득거리곤 했다. 


그렇기에 금방 하성이 내뱉은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연이 두고 너거덜끼리 날래날래 아니 날르간!?” 하성은 고함치며 여전히 송연의 손을 붙잡고 있는 명호의 손을 잡아채 내쳤다. 그간 보지 못한 하성의 모습에 놀란 기색이 역력한 명호는 흐느끼던 울음을 황급히 되삼켜 참은 나머지 “히끅.”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이, 와 이러십네까!” 해단이 명호를 보호하듯 감싸 안으며 하성에게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하성은 아무런 대답 않고 입술을 말아 물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물고 있는 건지, 맞닿아 물린 입술 주위로 핏기가 점차 옅어지며 창백해지고 있었다.   

“히끅.”

짧은 침묵이 흘렀다. 숨 죽인 채로 딸꾹질하는 명호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차올랐다  넘치기를 반복했다. 해단의 눈자위 역시 붉게 충혈되어 갔으나, 해단은 끝내 울지 않았다. 억센 비가 내릴 전조인 굵은 빗방울이 땅 위로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빗방울이 해단의 뺨 위로 눈물 자국처럼  뚝 뚝 새겨지며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퍽. 해단이 신음하며 주저앉듯 왼발을 부여잡았다. 어느새 가까이에 온 인민군이 쏜 총알이 해단의 발을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순식간이었다. 하성의 고개가 뒤로 돌아감과 동시에 총소리가 나며 저편에서 해단을 쏜 인민군이 쓰러진 것은. 하성이 손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뒤이어 즉시, “날래 아우 데리고 여서 꺼지라우!” 해단을 향해 소리쳤다. 

“일없습니다! 우리끼리는 아무 데도 아니 가겠슴다.” 해단은 송연의 옷자락을 꽉 저며 쥐며 하성에게 쏘아붙였다.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가시나이, 니 내 말이 말 같디 않간?”

“기러티요. 내래 당신 같은 아버이 둔 적 없슴네다!”

“니 애미나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단 말이야!”

“아님네다. 살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기러니 아버이, 어머이 좀 업어 주라요.”

“기럼 다 죽는 기래! 당장 안 움직이면 여기서 쏴 죽여 버리갓서” 하성은 해단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길티요! 차라리 다 죽소! 내래 어머이 없이 여서 한 발자국도 아니 움직이갔으니.” 해단도 지지 않았다. 송연을 붙들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겨눠진 총구를 붙들어 맸다. 

“이 가시나이..!!!” 하성의 손이 부들거렸다. 하성은 돌연 총을 뒤로 빼더니 곧바로 송연의 심장에 총을 쐈다. “봤나? 연이는 죽었디야.” 

“이…!!!” 해단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붉어졌다. 옆에 있던 명호는 기절했다. 

해단이 하성의 멱살을 부여잡으려고 손을 뻗은 그때, 누군가 해단의 손을 잡아채더니 한쪽 손으론 기절한 명호를 어깨에 들쳐 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머이..!” 해단은 벗어나려 몸부림쳐보지만 자신의 손아귀에 쥐인 우악스러운 힘에 어찌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시피 가게 되었다. “놔라! 놔!” 해단은 자신을 쥔 사람의 손등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해단의 입에서 피맛이 났다. 손등이 찢어질 정도로 물려 아플 법도 했을 텐데, 손의 주인은 비명 한 번 없이 그저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자신의 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서야 해단은 자신을 끌고 온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위아래 검은색 복장으로 온몸을 감쌌으며 얼굴마저 모자와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게 급한 게 아니었다. ‘어머이..!’ 이 사람이 누구인지 분간하고 있을 게 아니라, 송연에게 돌아가야 했다. 

분명 해단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하성의 총에 송연의 심장이 쏘이는 것을. 하지만 해단은 만약을 내칠 수가 없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옆으로 비껴 쐈다면 최대한 빨리 탈출해서 곧바로 수술받으면 되렸다. 죽은 사람은 차갑다고 했는데 어머이는 아직 따뜻했디야. 심장을 쏘였더래도,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도 있는 기래. 우리 어머이가 얼매나 많은 동무들을 도왔는디. 길티. 기르티. 명호. 명호야. 

해단은 명호를 찾아 재빠르게 고개를 두리번거렸으나, 퍽. 목 뒤에서 느껴진 일격과 함께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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