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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12.

- 읽으며 들으면 좋은 플레이리스트 :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QtGRpcuhEk&t=193s )




“좀 들지 기래.” 검은색 복면을 쓴 이가 해단에게 죽을 내밀었다. 

해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리곤 그는 다시 불 앞에 앉아 장작들을 흩었다. 사방에 드리워있는 메마른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환청이려나. 해단은 생각했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어간 지 조금 되었는데, 아직까지 이 땅에 생명들이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복면을 쓴 이는 나뭇가지를 들고 장작들을 뒤적이며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살폈다. 그의 나뭇짓에 따라 장작에서 떨어져 나온 불씨가 하늘로 올라가며 타들어가다가 이내 사라지길 반복했다. 

해단은 잠시 그 장면들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쥔 그릇을 바라봤다. 옥수수 죽이다. 아직 따듯했다. 다시 데워 준 듯했다. 얼마 만에 보는 식량인지. 배고프게 된 지가 너무 오래되어 허기를 느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배를 곯은 지 오래였다. 옆에 명호는 벌써 다섯 그릇 째라고 들었다. 불현듯 덜컥 겁이 난 해단은 명호에게 그만 먹으라고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랫동네에 사는 친구 강이의 사촌 동생 얘기가 생각났다. 


북한 전체에 불어닥친 대기근에, 마을에선 수십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김일성 일가의 완강한 추종자인 강이의 큰아버지는 당에서 발표한 곧 기근이 해결될 것이라는 말만 철썩 같이 믿은 채로, 당에서 금지하는 모든 것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을들 곳곳에 점차 쌓여가는 아사자의 대부분은 당에 충성하는 이들이었고, 당의 명령을 듣지 않고 밀반입을 시작하는 이들이 겨우 목숨을 구제하며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 돕곤 했다. 강이의 사촌 동생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집을 나와 반나절을 걸어 강이네 집에 갔다. 하필 그때 강이네 집에 있던 유일한 식량은 메주였고, 식량을 구하러 나선 터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이네 가족이 돌아왔을 땐, 아이는 죽어있더랬다. 아이는 뱃가죽을 뜯어내도 시원찮을 허기에 쫓겨 허겁지겁 메주를 먹었다가, 마른 메주가 속에서 팽창하는 바람에 배가 터져 죽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울고 불며 아이를 끌어안았지만, 마을은 조용했다. 곳곳에 그러한 참사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뜯어먹을 나무껍질도 없어 굶다 못해 곪을 듯한 배고픔에 못 이겨 도둑질을 한 사람들의 목숨이 손톱 만한 총알들에 가차 없이 스러져 갔다. 사람을 지켜야 할 법이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울분에 찬 강이의 큰아버지는 당 청사 앞에 찾아가 돌을 던졌고, 그로 인해 창문이 깨졌다고 들었다. 그 뒤로 다시는 강이를 볼 수 없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강이의 큰아버지가 반역자로 몰리면서 강이네 가족 전체가 반란 분자로 취급되며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다고 했다. 그랬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강이를 볼 수 없었다. 


다행히 명호는 다섯 번째 그릇을 먹다가 더 이상은 못 먹겠다며 수저를 내려 두었다. 해단은 나직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 중에 금세 온도가 식은 숨결은 새하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온통 구름으로 가려졌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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