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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4.



“이제 그럼 우린 갈게.” 현서가 말했다.

주원은 선착장에 정착하기 위해 묶어 두었던 배의 밧줄을 풀어내고 있던 중이었다. 단단히 묶인 끝매듭을  풀어내는 주원의 솜씨가 야무졌다. 어릴 적부터 어부이셨던 할아버지를 따라 자주 바다에 나가곤 했더란다. 그리고 나선 가볍게 손을 털고 배 위의 갑판에 있는 현서 옆으로 건너가 선 주원이 세하에게 고개 숙이며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건넸다.

세하도 고개 숙여 답했다. “네, 두 분 모두 조심히 들어가세요.”

출발 신호를 알리듯 울려 퍼지는 기적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고!” 세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특유의 화통한 목소리로 현서가 말했다. “새로 오는 신입한테 잘해주고!” 뱃고동 소리에 맞먹는 크기의 목소리였다. 현서가 크게 말을 할 때면, 세상의 다른 소리들을 듣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고 세하는 생각했다. 때로 세상은 너무도 소란스러웠다.

현서의 말을 들으며 세하는 웃어 보이려 했지만, 찌푸리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에 그쳤다. 이내 심각한 얼굴이 되어, 신입이라.. 혼자가 익숙한 자신이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속으로 한숨 쉬면서도 세하는 그들이 탄 배가 안전하게 가는지 살피며, 계속 같은 자리를 지켰다. 손 흔들며 점차 멀어지는 현서의 뒤로 어느새 밤이 내려앉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개편된 제도로 인해, 현서 선배에게 든든한 동료가 생겨서 다행이라 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세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었다. 물결 위에 비추인 따스한 빛을 닮은 웃음이었다.  수평선 가까이로 배가 멀어짐에 따라 노을도 점차 사그라들어갔다. 세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늘이 완연한 밤으로 물들고 수평선 너머로 배가 무사히 넘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세하는 몸을 돌려 관리실로 걸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대는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시간에 속해 있지만, 등대 원인 세하에게 있어서는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는 때에 해당했다. 세하는 해가 한층 기운 시각인 오후 3시가 지나서 눈을 뜨고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취미로 창고에서 작게 목공을 하다가 해가 늦게 넘어가는 여름에는 저녁 6시, 일찍 밤이 찾아오는 겨울에는 오후 5시부터 새벽을 넘어서까지 약 12시간가량 근무를 했다.

추가 업무로는 보름에 한 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부표가 설치된 해안을 점검하고 이상 유무를 확인 후 문제가 있을 시 갈아 주는 것이었다. 원래는 세하와 현서가 서로 번갈아가며 하는 업무였지만, 평소 배를 타고 바다에 곧잘 나가는 터라 그 일은 세하, 자신이 도맡겠다고 했다. 그렇게 등대 불빛이 필수적인 밤에 일을 하고 아침 해가 뜨고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누웠다.


하늘이 흐리고 어둡거나 바다에 거친 풍랑이 이는 궂은날에는 추가 근무를 해야 했고, 여름이면 부쩍 더 변화무쌍 해지는 날씨로 인해 불침번을 서야 하는 때를 예측할 순 없었지만, 군대에서 초기 복무하던 시절 교관임에도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헤쳐내야 했던 무수한 모욕과 위협, 그로 인해 깎아지듯 단련된 불 예측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력. 이것 외에도 자려고 누웠지만 대부분을 눈 뜨고 지나 보내는 세하에게는 어려움이 되진 않았다. 가볍지 않은 스케줄이었지만, 세하는 오히려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업무 중에도 사이사이 책을 읽거나 식물을 돌볼 수 있는 틈틈의 작은 여유가 있었고 그것 외에 무언가를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딱히 없었다. 외려 세하는 그 틈들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쪽이었다. 여유가 있는 것보다 아무 생각 않고 바쁘게 흘려보낼 수 있는 하루가 더 나았다.

고요를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적에서 오는 무료함은 때로, 어쩌면 자주 버거웠다. 스케줄이 없는 시간의 틈은 여백이 아닌 공백처럼 느껴졌고, 그 속의 현재는 비어 있음과 동시에 과거와 미래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무거웠고, 그 사잇시간에 존재해 있는 것조차 숨이 막히는 듯했다. 틈은 무수한 생각을 자아냈고 생각은 언제나 자책과 불안으로 내려앉았다. 생각의 깊이는 끝이 없어 한없이 가라앉게 되었다. 세하에게 있어 더 이상 이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그 무엇도 의미가 되지 못했고, 그러나 동시에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서를 떠올리게 했고 하여 사는 것은 거듭해서 밀려오는 괴로움을 헤엄쳐내야 하는 일이었다.  

왜 그렇게 섬에만 있으려고 하느냐고 묻는 현서에게 세하는 그냥이라는 말 밖에 해주지 못했지만,  그냥이란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현서도 알고, 세하 자신도 알았다. 세하에게 있어서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건 말처럼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끊임없이 뒤섞여 한꺼번에 덮쳐왔다.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 있는 건 세하로 하여금 어김없이 이서의 부재를 깨닫게 했고, 그건 이어서 이서의 죽음과 그 원인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한 자각은 모든 것에 대한 분노로 나아갔다. 그 분노는 세하 자신을 향해서도 예외는 없었다. 분노의 서두를 헤아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그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화가 나서 화가 나는 건지 자신에게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화가 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둘 중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삶, 그 자체에 대한 분노일지도.


그래서 등대원이 되어 혼자 일하고 지낼 수 있는 섬으로 왔다. 물론 혼자 있거나 하는 일에 이것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날 불 꺼진 집에 널브러진 채로 누워 있는 자신을 찾아 들이닥친 현서 선배가 냅다 던져준 신청서에는 난데없이 등대원 관련 공문서가 있었고, 어떤 일도 마다한 채로 그저 누워 있던 세하에게 유일하게 흥미를 지니게 한 일이었다. 이 일이 끌렸고 그게 무엇 때문인지 세하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군대를 나온 이후 처음이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세하는 섬사람도 아니었고 바다 가까이에서 산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서가 죽고 나서, 군대를 나와 살 집을 구할 때, 세하가 생각한 건 단 하나였다. 바다가 보이는 곳.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무조건 바닷가에 갔다. 바다 위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쉬지 않고 봤다. 이서가 말했던 그 물음. 그 말에 대한 대답이 있는 거라면, 그 대답을 찾게 된다면 어디선가 이서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그 때로부터 등대원으로 일 한 지 벌써, 약 7년이 지났다. 더 이상 그런 희망 같은 건 꿈꾸지 않지만, 등대원으로 일하며 적어도 한 달 중 보름은 그 어디에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홀로 살 수 있어 세하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따금 등대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밖에 나와볼 때가 있는데,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소리만이 주변을 메우고 더 이상의 경적 소리도 그렇다 해서 숨 막힐 듯한 끝없는 침묵도 없는, 적당한 소음을 지닌 이곳이 좋았다. 사방이 섬과 바다, 하늘뿐인 무인도서의 한산함이, 새벽을 닮은 차분하고 한적한 적요가 좋았다. 바다는 깊었다. 그 깊음은 때로 너른 품 같았고 때론 거대한 두려움과도 같았다. 친근하고도 엄숙한.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다. 자연은 그 자체로 세하에게 어머니였고 아버지였다.


등대 관리실 앞에 앉아 작업을 하던 세하는 밀려오는 하품을 내보내며 두 팔을 위로 길게 뻗어 기지개를 켰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아침 8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평소 같으면 졸릴 때가 아닌데 이상하다 싶다가, 동료 현서 선배와 주원이 왔다간 게 바로 전날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정말 오랜 오래간만에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었다.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너무 웃어서 자신의 입꼬리가 아플 정도였다는 것 또한 기억이 났다. 그리고 세하는 다시 하품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오늘자 업무는 마쳤고 숙소로 돌아가서 자야 했지만 이렇게 잠이 쏟아져 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에, 이대로 여기서 조금 자다가 가고 싶었다. 세하는 눈앞에 있는 계기판의 작동 모드를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꿔 두고 의자를 뒤로 제친 다음 기대어 잠을 청했다. 세하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피곤했는지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댄 채로 정신없이 잠들어 있던 세하는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황급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온통 그저 어둠뿐이었다. 세하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며 호흡이 급격하게 빨라지는 듯했다. 그때 눈 위에 무언가가 대어져 있음을 느끼다 이내 세하는 자신이 수면용 안대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바로 안대를 벗어내자, 갑작스레 밝아진 시야에 눈이 따가워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다. 잔뜩 구겨진 표정을 펴내며 겨우 눈을 뜨자, 바로 앞에는 어떤 검은 물체가 서 있었다. 사람? 귀신? 세하는 일단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며 방어 태세를 취하려 했으나

그 찰나에 눈앞의 형체가 반으로 접히며 “안녕하십니까!” 하고 힘차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고 여전히 경계 태세를 물리지 않은 채 여전히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세하를 보고선, 인사를 한 아이는 깜박했다는 듯이 자신의 목에 건 명찰을 앞으로 들어 보이며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리해단입니다.” 하고는 해맑게 웃었다.

어제는 토요일이었고, 새로운 사람이 오기로 한 날은 월요일이었다. 내가 꼬박 이틀을 내리 잔 걸까. 세하는 벙찐 채로 해단을 바라보고 있다가 황급히 핸드폰을 켜서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핸드폰과 해단을 번갈아 쳐다보는 세하를 보며, 해단은 세하가 왜 그러는지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가 깨달았다는 듯 눈에 생기가 돌며 환히 웃으며 말했다.

“아! 저는 내일 오는 걸로 되어 있긴 했는데요, 미리 준비도 하고 섬도 둘러보고 겸사겸사 해서 미리 도착했습니다!”


해단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후 세하는 서둘러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지하에 위치한 관리실을 나와 지상으로 나오기까지, 세하는 그저 빠른 속도로 걷기만 했다. 머릿속은 진공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멍했다. 그때 정면으로 불어온 바닷바람이 세하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헝클어뜨리고 지나갔다. 좁혀진 미간과 함께 시야를 가린 머리카락을 대충 옆으로 치우는 시늉을 하던 세하는 눈앞에 들어온 탁 트인 바다를 보고서야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방금 새로운 사람 앞에서 자신의 행동이 무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섬에서 등대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일이라고 세하는 생각했다. 단,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서 일할 때까지만 해당되는 것일 터였다. 모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공포를 동반했다. 그래도 개인적인 두려움이 사람 간의 예의를 앞질러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세하는 생각했지만, 그렇다 하여 되돌아가서 다시 인사하기엔 더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만들 듯싶었다.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세하는 잠시 바다를 좀 보자 하며 섬 끝자락에 놓인 의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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