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사랑한 것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왜?”
“공부를 너무 많이 하잖아. 재미없어! 학교 같은 거 없어졌으면 좋겠어.”
“있잖아……, 엄마도 학교 가기 싫어.”
눈을 동그랗고 뜨고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본다. 곧 방학이 끝난다. 학생인 아이도 교사인 엄마도 학교 가는 게 싫다. 아이는 공부가 지겹고, 엄마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생활과 관계의 부대낌에 지쳤다. 학교가 즐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다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고인다. 대학시절만은 유일하게 학교 가는 게 즐거웠다. 학구열이 대단했냐고? 강의가 즐거웠냐고? 설마, 그럴 리가!
“혹시, 여기가 청O인가요?”
첫 대학, 첫 동아리!
열정도 기대도 없이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이었다. 애초에 바라던 과가 아니었기에 입학하자마자 사귄 친구들과 동아리방을 탐색했다. 어느 동아리든 선배들의 환영은 대단했다. 방송, 악기, 외국어, 음악, 운동 등 그 많던 동아리 중 왜 하필 거기였을까? 시 동아리들 한가운데에 자리한 책동아리, 오래된 종이 냄새 대신 담배 냄새가 밴 곳에 꾸준히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청O’을 찾은 건 곰돌이 푸를 닮은 선배 때문이었다. 선배의 친절하고 푸근한 인상에 홀려 첫 모임에 나갔고(그 시절 나는 자주 반했다), 첫 뒤풀이 술자리부터 진지한 고민이 오가는 대화에 빠져 주량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다 취해 버렸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배배 꼬인 스텝에 도로가 엿가락처럼 굽어져 겨우 집을 찾아 갔었지. 다음 날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이번 생애 두 번째 술은 없다며 호언장담했건만 메스꺼움과 어지럼이 잦아들자 또다시 술은 다정한 친구처럼 나를 유혹했다.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저녁은 독서토론을 했다. 토론은 뒤풀이 술자리로 장소를 옮겨 열띤 논쟁으로 이어졌다. 작가와 책 이야기로 물꼬를 튼 대화는 현실 속 ‘각자의 삶’에 이르렀다. 대학이 종착점인양 달콤한 말로 꼬드긴 어른과 현실에 분노했고, 무대만 바뀌었을 뿐 또 다시 경쟁의 한복판에서 언제까지 아등바등 버텨야 할지 두려웠다. 지식의 탑은 한낱 말장난이라며 냉소했고, 어떡해야 진짜 행복에 닿을 수 있는지 질문하며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 내 안에 그토록 많은 말들이 넘쳐나는 줄 몰랐다. 16.9도(진로 소주의 도수)의 마법을 알아버린 후, 점점 술과 사랑에 빠졌다. 술이 한 잔 두 잔, 알콜이 몸속에 스며들면 긴장이 풀려 내면에 가둔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랬다. 나는 술만 마시면 수다쟁이로 돌변했다. 수줍고 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명랑청춘으로 환골탈태했다. 가끔은 ‘이게 무슨 이중인격인건가? 술자리의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왔지만 모르는 척 낯선 모습을 즐기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진심을 털어놓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그 시절 내가 쏟은 것이 주정이었는지 용기였는지 헷갈린다. 뱉고서도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이 산처럼 쌓였지만 상관없었다. 술자리 후의 부끄러움에 얼굴 빨개지는 날들도 많았지만 오래도록 나를 짓누르던 답답함은 눈 녹 듯 사라졌다. 내가 나에게 솔직한 후엔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매번 2차, 3차를 외치는 나를 달래 집에 데려다주고, 주머니를 털어 밥과 술을 사준 선배와 동기들이 그립다. 서툴고 미숙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안심할 수 있었던 다정한 사람들, 돌이켜보면 그들만큼 좋은 사람들도 없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할수록 더는 취하지 않는다. 주량도 극도로 줄어 한 캔도 겨우 마신다. 술을 못 먹어서 괴로운 거냐고? 나이가 들며 말들은 말하는 이의 의도와 다르게 오해되어 돌고 돈다는 걸 안 후부터 술이 주던 용기의 효능은 사라졌다. 이제 ‘술’로 얻던 용기는 ‘글’로 옮아갔다.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눈 속 비문(실 같은 검은 점)처럼 한꺼번에 떠올라 마음의 눈이 혼탁해지지 않도록 내 안에 고인 말들을 쓰기로 흘려보낸다. 쏟아내지 못해 배배 꼬인 마음을 주정처럼 쏟아내면 신기하게 간절히 찾던 무언가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