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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봄 Mar 18. 2024

선배의 결혼식

그 시절 내가 사랑한 것들

“○○씨 핸드폰인가요?”

“누구시죠?”

“S선배야. 기억해?”


여기가 어디던가!

15년 만에 찾은 보수동 책방골목, 헌 책을 뒤적이며 추억에 잠긴 바로 그 순간 벨이 울리다니, 기막힌 우연이었다! 첫 대학, 동아리….  S선배를 기억한다. 딱히 열렬한 독서가는 아니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책동아리에 가입해 청춘을 불태웠다. 한 학번도 우러러보던 시절, 두 학번이나 높았던 선배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금테안경을 쓰고 독설을 날릴 때는 그의 두루뭉술한 얼굴이 날렵하고 지성미 뽐내는 순정만화의 세컨드 주인공으로 탈바꿈했더랬다.(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선배를 짝사랑했던 건 아니다. 실은 좀 무서운 선배였다.) 그런 선배가 먼저 연락을 했다. 


“잠수 탄 거야?”

“설마요.”

“D에게 부탁해서 겨우 연락처 알아냈어.”


후배들을 수소문해 겨우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필시 경사나 우환이겠구나 짐작했는데 역시 경사였다. 


“나 내일 결혼해!”

“가봐야 하는데, 미안해요, 선배!”

“나도 너무 늦게 연락했는데 뭐.”


미안했다. 사촌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부산에 내려왔지만 이십 대를 함께한 선배가 더 가까운 지인이었다. 삼촌으로 말하면 집안의 대소사마다 어른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신 분이니 사촌동생 결혼식에 가는 게 마땅한데도 어딘가 헛헛했다. 


선배는 결혼식을 잘 마쳤을까? 그 시절 술잔을 기울이던 선배와 후배들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여전히 한결같을까? 궁금하고 그리웠다.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하나도 안 변했네. 똑같아.’라 말할까? 그럼 난 이렇게 말하겠지. ‘벌써 마흔이 훌쩍 넘은 걸요. 나이는 못 속여요. 염색은 필수고요. 노안도 오고요.’ 이 글을 쓰면서도 멋쩍어 웃음이 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낯부끄러운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구나 하고. 


상념에 빠졌다 깜짝 놀랐다. 스무 살의 나는 마흔의 현명해졌을 나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 내가 더 자신이 넘쳤다. 곱절의 세월동안 더 흐리멍덩해진 걸까? 잠시 비하에 빠졌다가 역시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괴로워지는 법이라며 유리한 쪽으로 생각해버린다. 스무 살의 확신은 딱 그만큼의 경험으로 답했던 거라고. 경험 레벨이 쌓였으니 자주 망설이는 건 당연하다며 두둔한다. 그래서 내가 갈팡질팡 유약한 태도를 좋아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는 사람에게 끌린다. 타인을 비방하지 않고 삶으로 배운 경험을 힘주어 말하는 이, 숨 쉬듯 자연스레 체득한 지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한 이들의 목소리는 흘려 들을 수가 없다. 아마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가 보다. 단단한 내공은 기본이고 아이 같은 말랑말랑함도 함께 겸비한 어른 말이다. 이 정도 레벨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할까. 지금 내겐 너무 멀게만 느껴지지만 짝사랑하듯 닮은 이들을 쫓아 그 방향으로 걷다보면 언젠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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