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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봄 Mar 25. 2024

별에서 온 그대, 달에서 온 나

"B1234 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 방금 궤도를 벗어나 도착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달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우리는 같은 경험을 두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두어 달 전 퇴근 길, 운전하던 신랑이 갑자기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의 돌발행동에 놀라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 쓸데없이 생각해 버렸네!"

"뭘?"

"회사일"

"그게 왜?"

"초과수당도 안 주는데…."

"헉……!!“


순간 웃음이 터졌다. 어이없어서. 나로 말하자면 일을 꿈자리까지 가져오는 타입이다. 고민이 실타래처럼 똬리를 틀고 머릿속을 가득 메워 곧잘 잠을 설친다. ‘회사일은 회사에서만 생각하자’ 주의인 신랑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니 이런 신랑의 행동은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연애할 땐 그의 직설적 화법, 군더더기 없는 솔직함이 매력 포인트였다. 언행이 일치했고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당당한 그가 좋았다. 심지어 결혼하고서도 앞뒤가 똑같은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허나 가족이 되고 결혼연식이 늘어날수록 거리를 잃은 솔직함은 화살이 되어 날아왔고 자주 아팠다. 무심한 말 한 마디에 상처받았고 질수 없다며 되돌려주기 신공을 익혀 열심히 갚아주었다.


결혼 16년차인 우리는 단점에 꽂혀 서로를 바꾸려던 노력을 내려놓았다. 대신 서로 다른 행성에서 자라 고유한 별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관찰하는 중이다. 최근 관찰하며 발견한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찰 하나, 신랑은 시키지 않아도 2~3주에 한 번은 꼭 대청소를 한다. 왜 해야 하느냐면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란다.

 

관찰 둘, 주말이면 새벽 6시에 일어나 2시간씩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를 치는 이유를 물으니 사람은 자고로 몸을 쓰도록 진화되었으므로 안 칠 이유가 없단다.


관찰 셋, 패션에 관심은 없는데 염색은 꼬박꼬박하고 뱃살도 신경 쓴다.(신랑은 무척 마른 체형이라 신경 쓸 뱃살도 없는데 왜 신경 쓰는지 이해불가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나이 들어 보이기 싫어서란다.


관찰 넷, 가족주의 신봉자(민주주의, 사회주의처럼 가족이 최고인 사람)인 그는 두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데 시도 때도 없이 꽉 껴안아 아이들이 질겁해 도망간다. 그의 일방적 애정표현에 괴로움을 호소해도 혼자서 싱글벙글이다.


유심히 관찰하다 ‘앗! 예상보다 꽤 성실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네!’란 내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알고 보니 신랑은 행동이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는 종종 그의 괜찮지 않은 말을 비꼬는데 내 행동이 그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걸 깨닫는 날엔 괜스레 미안해진다. 티내지 않고 괜찮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 번듯한 말만 하는 사람보다 백배는 멋진데 왜 여태 몰랐을까. 이왕이면 말까지 멋있으면 좋으련만. 둘 다 바라는 건 욕심인건가. 그럼에도  다정한 말은 포기가 힘든데 어쩐다. 흠…. 난감하다.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B1234 행성의 언어를 연구해야겠다. 단정하지 않고 찬찬히 관찰하며 말에 담긴 속뜻을 밝혀내리라. 언젠가 소통이란 우주정거장에 닿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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