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했던 김장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김치를 담그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일 년 동안 우리 식탁을 채워주던 김장김치가 한 통 남은 지금, 내년을 준비하기 위한 시댁 김장을 가야 했다.
친정 김치보다 시댁에서 해오는 김치를 주로 먹는 편이다. 하지만 한 달 빠른 친정 김장에서 양손 무겁게 올라오다 보니 시댁 김장에 가기 전 김치통 재배치는 필수다. 옮기고 또 옮기다 테트리스하듯 김치 냉장고 안을 정렬하고 나서야 새로 담아 올 여섯 개의 김치통이 마련됐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지체 없이 출발해야 했기에 마음이 바빴다. 동동거리며 준비하면서 마음까지 들뜬 것은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기 때문이었다.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온다는 대설에 백 포기 김장을 한다는 걱정보다는 기차가 주는 착각에 여행 케리어를 싸는데 즐겁기까지 했다. 물론, 케리어 안에 들어가는 것들이 영하의 추위 속 김치를 담그기 위한 방한 용품으로 가득했지만 마음만은 가뿐했다.
기차가 주는 환상에 취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광명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시도 두 발이 땅 위에 서 있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닌데 마치 먼 외국에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요일 퇴근시간은 연휴를 방불케 할 만큼 줄지어가는 차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저녁을 챙기지 못한 우리는 빵과 음료를 사기로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충분했던 나는 편의점 옆 카페에서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유리창 너머로 활처럼 휘어지는 웃음을 머금고 빵 쇼핑을 즐기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저렇게 좋을까.
오랜만에 기차였다. 3년 전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어르고 달려며 주변인들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종종거리며 애간장을 졸이며 탔었다. 부산역에 가더라도 다리가 아프면 안아주고 넘어질까 잡아주던 아이들이 어느새 여행을 즐기는 나이가 되었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밤에 낀 선글라스가 아이들의 기분을 대신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괜스레 나도 김장에 대한 걱정보다는 여행을 떠난 기쁨에 취해있었다.
마주 보는 좌석을 예약한 남편 덕분에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자리를 잡았다. 노랑과 주홍빛 중간 어디쯤 빛이 나오는 기차 안의 분위기는 따뜻했다. 대조적인 청록색 의자는 무거우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줬다. 그곳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기뻐했던 우리들.
"좋다. 꼭 외국에 온 것 같아"
테이블에 팔을 올린 채 검은 창 밖으로 반짝이는 도시의 빛들을 감상하니 이국적인 감성으로 다가왔다. 작은 소리도 용납되지 않을 것 같은 적막 속에 눈치 게임하듯 눈빛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하나의 재미. 누군가에게 피해 줄까 전전긍긍하게 했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복숭아 빛이 감도는 뺨이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더니 이제 식사를 모두 마쳤나 보다. 배도 채우고 바깥 구경도 했으니 긴 여행길에 함께 책을 읽는 시간까지 가졌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차로 가는 것보다 두 배는 빠르게 가는데도 젖먹이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면 삼백 킬로 속도가 삼십 킬로인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래서 한동안 기차를 이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 이십 분이라는 시간이 한 시간처럼 짧게 느껴졌다.
부산역 앞에는 대형 트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지하철을 타고 가도 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주는 설렘과 부산역이라는 글자가 주는 여행의 들뜬 마음을 놓칠 수 없었다. 일 년에 네다섯 번은 오는 부산인데도 처음 오는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이 나이 때 아이들과 오는 부산역은 처음이니까. 그래서 셔터에 손을 떼지 못하고 연신 너희를 담았나 보다.
김장이라는 큰 과제는 던져버리고 일탈하는 대학생이 된 듯 놀러 온 부산. 김장도 여행지의 체험활동인 것처럼 즐기다 갔으면. 그러기엔 배추양이 좀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