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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8. 2020

도대체 집이란 공간

박사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세미나실에 앉아 있을 때, 교수님들은 나를 보고 매우 놀라워하셨다. “갓난아기가 있는데, 어떻게 여기 수업에 올 수 있지?”, “학비는 누가 대 주지?”, “수업에 올 때 누가 갓난아기를 돌봐주지?”라며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젊은 교수님들은 놀라워하지 않으셨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명예교수로서 강의를 맡으신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께서 놀라워하셨다. 당신의 며느리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 하시면서.


그랬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어린아이가 있는 여성이 집 아닌 곳에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집을 떠났을 때, 비로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집을 떠나는 일을 남편이 환영했던 적은 없었다.


가사와 강의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8세, 6세, 4세 세 아이를 돌보면서 너무 힘들어서, 매일 징징대던 2004년 10월 어느 날, 나 혼자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영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이들을 두고 와서 공항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는데,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내 삶을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았다. 집이라는 그 작은 공간에서의 내 일상은 왜 그리도 바쁜지, 왜 그리 정신이 없는지. 깜깜한 밤하늘을 한없이 날면서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한없이 기뻤다. 두려움과 우유부단함을 극복하고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두려움의 대상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두려움은 내가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나의 결의와 결정을 지지해주는 응원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과 나의 일을 모두 다 잘해 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아이를 이만큼 길렀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가장 싼 비행기표를 구하다 보니 싱가포르를 경유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9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는데,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때 그 공항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불평하지 말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런던 도착 후 친구를 만났다. 영국에서 일주일 정도를 지냈는데, 친구 부부의 사정으로 하루를 나 혼자 지내야 했고, 나는 카디프 대학교 도서관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도서관을 둘러보다가 “Governance and Public Policy in the UK”라는 책을 발견했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책을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 학생들이 논문 작성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중에서 인상에 남는 학생은 여학생으로 눈꼬리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컴퓨터를 쓰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기도 마찬가지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만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는 것 같아서 억울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 먼 영국에 가서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꼭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박사학위를 받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박사학위논문을 써야 하는데, 세 아이를 돌보면서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게 힘들었다. 2006년 당시 이사를 가야 해서, 이사 갈 집을 결정을 했다. 그런데, 이사를 갈 수 있는 시점과 이사를 나가야 하는 시점이 차이가 났다. 2주 정도. 주인댁에 2주 정도만 편의를 봐 달라고 즉 2주 정도를 더 살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짐을 창고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 가 있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경산의 한 원룸에 가 있기로 했다. 남편 친구분의 원룸인데, 세 들어 있던 사람이 나가고 마침 비어 있으니 잠시 들어와 있으라는 것이었다. 약 보름 정도를 그 원룸에서 살았다. 남편과 단 둘이서. 결혼하고 거의 처음으로 나는 아이들과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내 공부에 시간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 꼭 보려고 갖고 있었던 원서를 한 권 찬찬히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박사학위논문 작성을 사실상 시작할 수 있었다. 종종 나는 어서 나가라고 재촉해 준 집주인 분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곤 한다. 어떻게 보면 슬플 수도 있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그 2주간의 시간이 있어서 나는 박사학위논문 작성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논문을 어느 정도 작성하고 심사를 받기로 했다. 2008년 심사를 받는 기간 동안에 서울로 가서 학교 근처 후배 집에서 5개월 정도 머물렀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니, 눈 딱 감고 서울로 가서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선배 교수님의 충고를 따른 것이었다. 마침 남편은 직장에서 가는 연수로 중국에 5개월간 가 있어야 했고, 어머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집을 떠나 논문작성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덕분에 나는 그 해 말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모 대학교 연구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 중국 난닝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그때 학회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고, 스마트하다는 청중의 칭찬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나로서는 혼자서 호텔방을 하나 차지하고 지낸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나갔다 오면 방이 정돈되어 있었다. 얼마나 행복하든지.


집이라는 공간은 여성에게는 어떤 곳이기에 집을 벗어나야만 비로소 인식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가 가능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심지어는 집을 나가서 행복해지기까지 하는 것일까? 그리고 여성이 그 집을 벗어나는 일은 왜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집의 상징성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폐쇄되고 보호된 공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집은 사람에게 인생 초기의 양육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Fraim, 2003).


그런데, 집이라는 것을 하나의 블랙박스라고 보고 그 내부를 해부한다면, 남편, 아내, 아이들로 구성된다고 하겠고, 남편, 아내, 아이들에게 집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김현경(2015, 203)에 따르면, “가부장제 하에서 기혼 여성과 미성년 자녀는 사생활의 자유를 갖지 못한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고, 가부장의 눈치를 보면서 일종의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가정은 폐쇄된 세계다. 가정을 ‘이해와 배려의 영역’으로 포장하면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을 감추고, 노동력 재생산을 가정의 기능으로 설명하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평가되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정’이라며 가정 속의 개인은 삭제한 결과다.”(송란희, 2017, p.276).          


정희진은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의 서문에서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짚어주고 있다. 남편의 자의적인 권력이 행사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라는 것이다.     


“‘장소(sphere)’는 중요하다. 사회는 남성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장소인 집 안에서의 폭력에 대해서는 관용한다. 하지만 공권력이 영향력을 미치는 길거리에서의 살인은 문제적이다. 남성 권력의 무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서 죽었는가’가 여성의 인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된다... 집에서 전쟁을 치르는 여성에게 감옥은 방공호일 수 있다.”(한국 여성의 전화, 2017, 11-12).     


가부장제 하에서 집이 아내에게 갖는 의미는 남편의 통제와 폭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자는 인질이다’에 따르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대개의 경우에 분리되는데, 특이하게도 여성은 남성이라는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그래서 가부장제에 맞서며 여성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공간 마련하기’가 중요하다(그레이엄, 2019).

너무나 소중한 집, 너무나 힘겨운 집! 지켜야 하는 집, 벗어나야 하는 집.     


<참고문헌>

송란희 (2017). 당신의 용감한 이야기. In 한국 여성의 전화 (엮음).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도서출판 오월의 봄.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한국 여성의 전화 엮음 (2017).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도서출판 오월의 봄.

Fraim, John (2003). Symbolism of Place: The Hidden Context of Communication. 2003.

http://www.symbolism.org/writing/books/sp/3/page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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