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대학원 휴학하고 아이를 돌볼 때, 그 당시 나는 종종 남편이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특히 남편이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서 “사람이 앉을자리는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니냐”라고 할 때는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 내 남편이지만 너무도 미웠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다. 남편도 물론 일하느라 수고했겠지만, 나 역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파김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파김치가 되어 있어도, 남편은 쉴 공간을 내게 의존하고 있었고 그런 요구를 했던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안 청소도 해 주기를 기대했다. 나 역시 남편에게 의존했던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충족되지 않은 기대와 욕구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면서 불행해했다.
그런데, 그런 좌절감과는 별개의 문제로서, 나는 신혼 때, 나의 자아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그래서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남편은 나에게 짜증을 부리고, 가사노동과 관련해 잔소리를 했는데, 그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한없이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내가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식사를 할 때면, 먹을 반찬이 없다고 잔소리를 했고, 쌀을 씻으면서 쌀 몇 알이 싱크대 거름망으로 들어가면, 음식 찌꺼기 사이에서 쌀을 골라내라고 지시를 했다. 청소를 하고 밀대를 벽에 기대 놓으면 밀대 머리의 방향이 틀렸다고 잔소리를 했다. 욕실 슬리퍼가 너무 더러워져서, 버리고 새로 샀을 때,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욕실 슬리퍼를 깨끗하게 씻어서 쓰면 될 것을 버리고 새로 샀냐고,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잔소리를 해 댔다. 그런 잔소리를 들을 때면, 사랑하는 사람이 저렇게 불편해하고 있구나,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참 슬펐다.
사회학자인 쿨리(C. H. Cooley)는 영상 자아(looking-glass self)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서로를 비추는, 상대방에 대한 하나의 거울’이다(코저, 1988, p.450). 내게는 남편이 하나의 거울이었고, 남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나는 속절없이 절망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들의 주된 양육자로서, 나는 기존의 친구들과 지인들의 네트워크에서 단절된 상태였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 있는 타자는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나의 특정 부분만 반복적으로 비추었다. 남편은 편협한 거울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나의 다양한 특성 중에서 '가사노동 능력'이라는 하나의 특성만을 바라보고 그것을 끊임없이 비추었고, 살림 솜씨가 형편없다고 비아냥거렸다. 남편과 집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지내고, 남편의 차로 외부 세계로 나가는 한, 남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처음에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화를 내겠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달리 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자꾸 줄어든다면, 결국 나는 그 자아에 굴복하고 말 것 같았다. 늘 학교 공부나, 친구들과의 관계로 평가받아 오다가,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가사노동으로 내가 평가받기 시작하자, 나는 몹시도 자괴감이 들었다. 어쩌면 혼란 그 자체였다고 하겠다. 우등생으로 살아왔던 나는 갑자기 심각한 열등생이 된 기분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의 한 대목은 파트너가 해 주는 거울 역할을 멋지게 제시하고 있다. 여자 주인공 앨리스는 남자 주인공 에릭과 사귀고 있는 중, 필립이라는 남성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 앨리스는 필립과 대화를 하는 자신의 상태가 에릭과 대화를 할 때의 자신의 상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애인인 에릭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고, 에릭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필립과 함께 있을 때에는,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관계의 기반은 상대방의 특성이 아니라, 그런 특성이 우리의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 우리에게 적당한 자아상을 반사시켜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해서.”(드 보통, 2018, p.313).
연애 중이었던 앨리스는 에릭이라는 거울과 필립이라는 거울을 비교하고, 에릭과 헤어지고 그녀를 더 그녀답게 비추어주는 필립과 연애를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파트너가 거울이 되어 줄 수 있음을 알게 된 나는 남편과 아주 오래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 내게 남은 선택지는 남편이 비추어주는 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종종 “거울이 깨진 것을 보지 못하고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이 깨진 것이라고 믿는다.”(이무석, 2009; 김태형, 2018, p.208에서 재인용). 자동차 백미러에 보면 ‘보이는 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이라는 경고문구가 있다. 같은 경고가 남편이라는 거울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남편이 비춰주는 내 모습을 일부는 믿지 않는 것, 남편이라는 거울이 왜곡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것 등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겠다.
<참고문헌>
김태형 (2018).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갈매나무.
드 보통, 알랭 (2018). 우리는 사랑일까(공경희 역. The Romantic Movement by Alain de Botton, 1994). 은행나무.
코저, 루이스 A. (1988). 사회사상사(신용하·박명규 역. Masters of Sociological Thought by Lewis Alfred Coser, 1975). 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