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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Oct 26. 2020

남편의 말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처음으로 강의를 간 곳은 청주의 모 대학교였다. 그 대학에서 행정학개론과 재무행정론을 강의했다. 처음으로 맡은 강의였고, 집에서 거리가 멀기도 해서 이래저래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학생들의 부드러운 말투였다. 겉모습은 큰 덩치에 아주 거칠 것 같은 남학생이 말을 하는데, 그 말투가 너무나 부드러운 것이었다. 대구의 투박한 사투리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너무나 놀라웠다. 남성이 저렇게 부드럽게 말을 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모 대학교에서 행정학개론 강의를 했다. 학기말에 강의평가를 보니, 특이한 강의평가가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로서는 약간 충격이었다. 강의 중에 조직행태의 한 이슈로서 동기부여와 관련한 부분이 있었고, 강의의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나는 남편과 나의 관계에 대해 약간의 과장을 보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런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때문인지, 한 학생이 나를 “피해의식에 깊이 사로잡힌 분”이라고 신랄하게 비판을 한 것이었다. 나는 참 어이가 없다 싶으면서도, 내게 그런 모습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거친 말과 평등하지 못한 대화로 인해 늘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이 한 학생의 눈에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참 속상했다. 내 삶이 이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남편이 뭐라고. 남편의 거친 말과 무시에 내가 그렇게 무력감을 느끼고. 그래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것으로 학생에게 비치고.

가정에서 남편의 말이 너무 거칠다고 생각된다. 언어폭력 수준이다. 우리 집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언제가 모 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남편한테, ‘결혼 20년 동안 당신이 나한테 언어폭력을 행사했잖아’라고 분노를 폭발했다.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결혼 20년이 넘어가니까 남편도 좀 바뀌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계시던 모 여교수님께서, “20년은 멀었다. 결혼 3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라고 분노를 표출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남편들의 언어폭력은 참 일상적인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남편의 말은 내 마음에 늘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남편이 퇴근해서, 다정하게 퇴근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서 바로 무언가 지적을 했다. 오디오 전원을 왜 켜 뒀는가, 화장실 불은 왜 켜 뒀는가, 집은 왜 이렇게 어지러운가 등의 지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지적을 할 때의 남편의 말투, 억양, 표정은 오로지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을 하면서 그런 무례한 말투와 표정을 하는 일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남편은 나에게는 존중의 표현을 쓰는 일에 지독히도 인색했다. 정희진은 ‘아주 친밀한 폭력’이라는 책에서, “폭력 남편에게 가정은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이다.”라고 하고 있는데(정희진, 2016, 234), 남편을 폭력 남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언어폭력은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가정이 밖에서 쓰는 매너 있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치외법권 지대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또는 아내인 나와 남편인 자신의 관계는 법 관계가 아니라 특별권력관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희진은 아내에 대한 폭력과 관련해서, “몸에 가해진 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다른 종류의 고통과 다르게 대상이 없는 고통이다. 몸이 고통의 기억 속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탈출하더라도 공포는 지속된다. 두려움에는 시간의 제약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아내는 수동적,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의 가능성과 활동을 통제하는 정치적 효과이다.”(정희진, 2016, 225)라고 제시하고 있다. 언어폭력도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여성은 남편의 일상적인 언어폭력에 직면하게 되면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잃는다. 우리 여성들은 자신감을 갖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남편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도전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를 읽으면서 남편의 거친 말투가 왜 그렇게 나에게 상처로 작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남편은 나에게 사람대접을 하지 않은 것이다. 상호작용적 의례를 거부함으로써, 내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할 때 그 노력을 좌절시킨 것이다. 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성원 자격을 부정한 것이다.

남편은 종종 다음 생에도 자기랑 살 것이냐고 묻곤 한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를 다시 선택해야 한다면 그때는 나에게 사람대접을 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적어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올 때, 보통의 평범한 사이에서 하듯이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예의를 차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사람으로서 사람 수행을 할 때, 그런 나의 노력을 알아보고 나의 사람 수행을 거들어 줄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희진에 따르면, 남편이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에 아내는 대체로 대화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데 그렇게 하는 경우에 여성은 더욱 상처 받는다고 한다. “정신의학자 에릭 번(Eric Berne)은 그의 교류 분석 이론에서 의사소통 방식을 부모/어른/아이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같은 수준(아이 대 아이, 어른 대 어른)에서 대화가 이루어져야 갈등이 없다고 한다.”(정희진, 2016, 196).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다른 수준의 자아 상태에서 어긋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신혼 때 내가 나이트에 놀러 가자고 했을 때, 남편도 나와 같이 아동 자아가 되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다. 그리고 남편이 비판적 부모 자아로 나올 때에는 나 역시도 비판적 부모 자아로 행동했어야 했다. 남편이 언어폭력에 가까운 거친 말을 쓸 때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게 아니라, 나도 같은 정도의 거친 말로 받아쳤어야 했다.

‘여자는 인질이다’는 "파트너가 자신을 모욕적인 호칭으로 칭할 때마다 이를 적어두라"라고 한다. 그리고 "모임에서 서로 어떤 폭언을 들었는지 비교해 보라"라고 한다. 이런 활동을 해 보면 "폭력적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여자들이 언어폭력으로 얼마나 본인의 자존감이 하락했나 확인할 수 있는 건 물론, 본인에게 쏟아지는 폭언이 사실 자기라는 인간과는 별 관계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그들이 듣는 욕은 남자가 여자를, 모든 여자를 부르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레이엄 외, 2019, 392).

폭언 및 폭행 내용을 녹취, 일기 등으로 기록하는 경우, 가해자의 폭언이나 폭행 일자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폭언 및 폭행 당시 상황과 피해자 본인의 심경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고 한다. 녹취를 해 두거나 일기 등으로 적는 것이 유리한 이유는 신고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증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성조선, 2019년 1월 10일).

 “자신을 구타하는 사람과 인간적인 대화가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는 정희진 (2016, 90)의 말이 인상적이다. 남편과 대화를 하는 게 늘 힘겹게 느껴졌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남편은 평생 동안 아내인 나를 거친 말로 때려왔구나.

남편의 말투가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지역의 문화, 조직 문화,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스트레스 수준 등 다양한 요인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남성들이 갖고 있는 ‘성 역할 정체성’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은 남성 성 역할 정체성을 방어하는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제한된 정서성’을 나타내며, 제한된 정서성은 깊은 감정의 경험을 금하며, 적어도 정서성에 대한 다음의 네 가지 왜곡된 성역할 논리에서 발생한다고 한다(하웨이 외, 2002).     


“첫째, 정서, 감정, 나약함 등은 여성적인 징표라고 본다. 둘째, 감성적인 남성은 나약하고 미숙하다고 본다. 셋째, 감성적 의사소통은 한 사람의 내면의 고통을 노출시켜 권력과 통제의 상실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믿음이다. 넷째, 다른 사람들이 항상 취약한 감정의 표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웨이 외, 2002, 137).


하웨이 외(2002)는 "제한적 정서성의 극단적 결과는 심리적 폭력과 구타"(p.138) 임을 밝히면서, 남성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제공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남성 자신이 여성에게는 위험요인이 됨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며, 남성들이 그들의 폭력에 대한 책임을 느끼도록 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남성들의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남성의 권력과 통제, 지배 등을 강조하지 않는 새롭고 긍정적인 남성성의 원형을 만들어야 한다"(p.152)고 역설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말투다.” 석사과정에서 박동서 교수님께 행정이론 세미나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하신 말씀이다. 말투를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남편에게 민주주의적인 말투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그레이엄, 롤링스, & 릭스비 (2019). 여자는 인질이다(유혜담 역. 원저 Loving to Survive by Dee L. R. Graham, Edna I. Rawlings & Roberta K. Rigsby, 1994). 열다북스.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정희진 (2016). 아주 친밀한 폭력. 교양인.

여성조선, 2019년 1월 10일. 가정폭력, 대처 요령은?

하웨이, 미셸 & 오닐, 제임스 M. (2002). 남성의 폭력성에 관하여(김태련·김정휘 역. 원저 What Causes Men’s Violence Against Women? by Michele Harway & James M. O’Neli. 1999).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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