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알베르게
그라뇬 알베르게에 대한 기억으로 친구들을 졸랐다. 아구스틴과 산티와 아센과의 추억만으로도 그라뇬은 충분한 곳이었다. 다만, 또 가 보고 싶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어야 했을까? 그때의 맛있던 음식은 친구들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음식 맛이 별로여서 그게 뭐라고 조금 서운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오늘은 하은이가 나의 컨디션에 맞추어 함께 걸었다. 내가 쉬고 싶은 곳에서 함께 쉬었고, 내가 노래를 부르면 같이 부르며 걸었다. 지나치던 프랑스 아저씨가 기타를 연주해 보고 싶어 하셔서 기꺼이 기타를 내어 드리기도 했다. 기타를 만져 보고 싶어 하는 이에겐 아낌없이 주저 없이 건네었다.
산토도밍고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면서 걸었다. 심영애 선생님께서 놀라워하시며 함께 노래를 부르며 동행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산토도밍고에서 머무시겠다고 하셔서 헤어졌다.
그라뇬 하면 모르씨야. 우리는 스페인의 순대 모르씨야를 먹기 위해 바(Bar)로 향했다. 6년 전 그곳. 아. 맛있었던 모르씨야. 그 맛 그대로. 여전히 맛있었다. 앞서 걸어 간 친구들은 못 먹었을 거 같아서 우리는 정육점에 들러 3유로에 모르씨야 한 덩어리를 샀다.
하은이가 로베르토에게 나의 무릎에 대해 말해 주어서 로베르토의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왜 직접 말하지 않았냐면서 나를 불렀다. 미안해서 말 못했었지만, 받고 싶었다. 전문가의 치료에 감사했고 시원했다. 살 것 같다.
저녁식사 후 그라뇬 알베르게에서는 원하는 이들과 모여 기도회를 했다. 로빈이라는 자원 봉사자가 나를 찾으셨다. 내가 노래를 하는 사람인 줄은 어떻게 아셨던 것일까. 기도회를 할 건데, 노래를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성당 안의 울림은 순례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넉넉했다. 기도회를 마치고, 서로 안아 주며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카힐은 내 노래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와 로빈은 기도회 후에도 잠시 동안 성당의 울림에 취해 서로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사람들은 그 여운을 즐겼다.
알베르게는 순례자에게 감동을 준다.
토산토스까지는 짧은 거리였다. 게다가, 알베르게에 너무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오스피탈레라를 만날 때까지 한참 서서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만난 알베르게 주인장은 딱딱하고 불친절한 어투의 사람이었다. 도저히 머물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아서 몇 번이고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반복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실비아는 오스피탈레라 때문에 이곳에 있기 싫었다. 그러나 로베르토의 의견을 따라 머물기로 했다.
시모네라는 친구와 인사를 하고 함께 바(Bar)로 이동했다. 토마토를 싫어하는 시모네의 토마토를 대신 다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모네와 금세 친해졌다. 순수한 사람 같았다.
공연은 하지 못했지만, 하은과 마당 벤치에 앉아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며 오후를 보냈다.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꿀맛이었다. 어제 사 두었던 모르씨야를 먹을 방법을 여쭈려고 주인장께 부탁을 드렸더니, 맛있게 구워 빵 위에 얹어 주셔서 순례자 모두가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샐러드, 파스타, 후식까지 하나같이 너무나 맛있었다. 그랴뇬과 비교가 되었다. 딱딱했던 주인장의 처음 인상을 모두 잊게 해 주었다. 기도회도 잘 마쳤고, 좋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시모네가 시원하게 자고 싶다며, 창가의 자리를 자신과 바꿔 줄 수 있겠냐고 했다. 그 제안은 내게 행운이었다. 나는 따뜻한 자리가 더 좋았다. 감사했다.
새로운 만남의 장소 앏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