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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정 Jul 18. 2022

부엔 까미노 오늘 하루

감사

폰세바돈.

   이 길을 다시 걷는다면, 만날 수 있게 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안토니오. 그는 6년 전에 함께 걸었던 영훈의 친구이다. 그는 라바날에 살고 있다. 폰세바돈에 가기 전에 라바날을 지나면서 잠시 안토니오의 식당에 들러 인사를 나누었다. 6년 전 친구들과 식사할 때 챙겨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길로 들어섰다.

   실비아와 걸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예를 들면, 왜 아시안 여성은 서양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지 같은. 실비아는 자신의 큰 엉덩이와 허벅지에 대해 인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다르게 생긴 것, 다른 것.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했다. 내가, 내 자신이 잘 알고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안 되는 영어지만, 나의 이 길의 선택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이해해 주었고, 인정해 주었다. 불평불만을 하지 말자고 그렇게 살자고 말하고 있을 때, 보고 느끼고 확신하라는 듯이 시각장애인과 나그네 한 커플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베르시아노스에서 만났던 이들과는 또 다른 분들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그들서로에 대한 뢰를 눈앞에서 본 이들은, 누구나 감동 았을 것이다.



하은이와 폰페라다까지.

   폰페라다는 큰 도시여서 들어갈 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이 이번 산티아고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하은이는  나와 걷는 마지막 날이라고 계속해서 내 기타를 메고 다녔다. 모두들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찍고 또 찍었다.

   로베르토와 나, 하은이는 거의 막바지 시간을 같이 걸었다. 내일은 모두 헤어지고, 나는 산티아고로 들어간다. 이렇게 결정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인사를 나누었다. 가방을 뒤지고 뒤져서 선물을 나누어주었고, 그동안 얼마나 고마웠는지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었는지 말해 주었다.

   애틋한 포옹을 나누었다. 먼저 헤어진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못했는데, 그나마 여기 있는 친구들에게 무엇이라도 줄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마음이 뭐라 표현하기 참 어려운 상태였다. 로베르토 실비아 하은 심선생님 아…누구하나 지금 이대로 아쉽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소.

   출발하는 아침이 되어서야 내일 새벽에 버스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베르토와 실비아에게 말하려고 했으나 이미 우리가 먼저 출발해 버린 상태였다. 오후에 도착하는 알베르게에서 만나면 말하기로 했다. 심선생님께서 바(Bar)에서 커피와 빵을 사 주셨다. 오늘 까까밸로스에서 헤어지기로 하고 일단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나그네의 작품인 팔찌도 사주셨다. 그리고 까까밸로스의 시장에서는 내가 치킨을 사서 함께 나누었다. 식사를 할 때쯤 호세와 성묵 씨를 만나서 함께 먹었다. 여행객이니, 시장이니, 우리는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자유로웠다. 식사 후, 심선생님과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선생님은 오늘 많이 쉬고 싶다고 하셨다.

   걷는 동안 로베르토를 만나지 못해서 얼른 알베르게로 가려고 하은과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었다. 힘겹게 힘겹게 도착했을 때, 알베르게에는 실비아 밖에 없었다. 로베르토는 더 걷고 싶다고 이미 떠났다고 했다. 아. 안돼. 안된다고. 더 보고 싶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연락을 받지 못했고 그저 계속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알베르게에서 우리를 만나려고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우리가 너무 늦어서 다음 마을로 간 것이었다. 너무 아쉬웠다. 기운이 빠졌다. 그는 내가 어떻게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 알아보고는 실비아에게 상세하게 말해주고 갔다고 했다. 자상한 친구 같으니라고.

  실비아에게 내일 아침 떠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맥주 한 잔을 하러 광장으로 나갔다. 친구들은 내일 낮에 먹을 간식과 식사를 준비하려고 슈퍼에 갔다. 나와 헤어져 계속 걷게 될 친구들의 간식으로 초콜릿을 준비했다. 하은, 실비아, 호세, 성묵, 사토미 그리고 미국인 친구에게 주었다. 사토미와 카즈오라는 친구가 방으로 찾아와서 인사해 주었다. 귀여운 카즈오는 꼭 껴안아 주었다. 사토미는 규슈에 살고 있는 간호사이다. 그녀 또한 자유로운 영혼으로 무엇을 하며 살 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따스한 섬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가 여행을 왔던 것이라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마도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것 같다.



새벽 버스로 산티아고.

   새벽 네시에 일어났다. 하은이는 어제,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나를 배웅하겠다면서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아. 하은이. 우리는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 걸까. 아 어떻게.

   하은이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왔다. 이른 시간이라 춥고 또 어두운데도 하은이는 나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모두 일어나지 않은 어둑한 새벽. 우리는 터벅터벅 버스 정류장을 찾아갔다. 나는 어제 버스 타는 곳을 미리 봐 두었었다. 버스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하은이는 놓친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이윽고 버스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안아주지도 못했다. 다시 만날 것이다 다시 만날 거야 하면서 아쉬운 마음은 손을 흔들어 대신했다. 홀로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광장은 고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관광객들이 많은 광장은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나그네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앉아서 공사 중인 대성당을 바라다보았다. 대성당은 여전히 내게 의미를 주지 못했다. 다만, 그 광장이 주는 평안함이 있었고, 그 광장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의 터덜터덜 걸음이, 끌어안고 우는 울음이, 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보는 이들이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걸음을 알기에 이곳에 털퍼덕 주저앉아 돌아보는 시간을 어느 정도 알기에 그래서 그들을 통해 감동이 전해오는 것 같았다.

   언제쯤 올 지 모를 준이가 나타나기를 그저 기다렸다. 내가 노래를 부르자,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이들이 내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사진을 같이 찍기도 했다.

   저기 영준이가 나타났다. 일어나서 노래를 해 주고 싶었는데 눈물이 먼저 나왔다. 꼬옥 안아 주었다. 기특하고 아름다운 녀석.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홀로 걸어낸 녀석의 걸음을 축복했다. 각자의 속도를 인정하고 걷기로 하고 헤어졌을 때 보다, 우리는 각각 자신과 함께 걸은 친구들과 헤어짐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했다. 영준이의 걸음 또한 얼마나 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으로 이 자리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이 왠지 더 서러운 듯도 했다. 모두가 함께 있지 않음이 이상했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을 건강히 잘 마친 것에 무엇보다 감사했다.

   기념촬영을 하고 우리는 가방을 맡겨 놓고 시내 곳곳을 누볐다. 우리와 같이 걷던 이들은 며칠 뒤에나 이곳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래서 몇 번씩이나 골목을 누벼도 아는 사람이 두 어명 없었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같은 곳에 있을 수 없음이, 누군가는 뒤에 도착한다는 것이, 누군가는 먼저 떠나야 한다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정말 인생과 같지 않은가.

  다섯 시. 우리는 광장으로 향했다. 어제 라켈과 루시아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을 해 놓았다. 만나고 싶다고. 6년 만이다. 처음 여행 때 만났던 산티아고에 살고 있는 루시아와 라켈을 만났다. 다시 만난 우리는 여전히 즐거웠다. 예쁘고 시원시원한 딸 라껠과 자유로운 어머니 루시아는 우리를 기쁘게 맞아 주었고, 산티아고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대접한다면서 맛있는 해물요리도 사 주셨다. 라켈은 영준과 대화를 자유롭게 할 정도로 영어를 아주 잘했다. 조금씩 발음을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거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정말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두 사람을 위해서 광장에서 내 노래도 불러 드렸다. 작은 선물도 전했다. 두 사람이 산티아고를 떠나는 우리를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셨다.

   산티아고에 또 오라고, 잘 가라고 인사해주는 친구가 있는 것은 큰 복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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