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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n 03. 2024

도파민 갈아타기

초심자 마인드로 며칠간은 곧잘 달리다가 오늘은 결국 본성이 드러났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오늘이 바로 그냥 집 밖으로 너무 나가기가 싫은 그런 날이었다. 아니, 심지어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키기도 싫었다. 요즘 재발한 안구건조증 때문에 휴대폰을 최대한 안 봐야 하는데, 어느새 또 나는 누운 채로 나의 오장칠부인 휴대폰을 수시로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구독한 유튜브 채널에서 업데이트된 영상 중 그동안 바빠서 못 본 것들을 빨대로 빨듯 쭉쭉 빨아대며 밀린 도파민을 갈구했다.


그러다 시간은 또 무한대로 흘렀다. 아차 싶어 정신을 차리니 또 눈알이 찌릿 하니 아프고 글씨가 흐릿하게 보였다. 이러다 노안이 가속화될 것 같은 느낌이다. 젠장. 습관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힘들다. 휴대폰을 멀리 할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오랜 기간 동안 루틴하게 즐겨보던 채널들을 한 번에 끊는 것은 역시나 나에겐 어려웠다. 마치 다이어트 공표 후에 과자를 몰래 먹듯이, 나는 썸네일이 나를 유혹하는 밀린 영상을 급하게 넘겨보며 유튜버들의 배를 불려준 다음에야, 이제 더할 수 없이 내 찌릿한 눈에서 눈물이 고이는 것을 깨닫고 내 눈알의 아우성에 귀를 열어줬다.



맞다. 내가 달리기로 결심한 두 번째 이유는, 휴대폰으로부터의 눈알 보호였다. 제발 좀 화면으로부터 눈을 쉬고, 달리기를 하며 자연을 보며 몸을 놀리기로 결심했건만 오늘은 왠지 벌써부터 망했다. 이미 내 몸은 침대와 붙어서 그냥 연관 영상 하나 더 보라고 이불이 속삭였다. 사실 연재글만 아니었으면, 절대 밖으로 안나갔을텐데, 나는 선생님에게 칭찬 도장받고 싶은 아이처럼, 연재글을 쓰기 위해서 꾸역꾸역 저녁이 돼서 밖으로 나갔다. 이놈의 연재를 왜 하겠다고 설쳤는지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한명의 구독자라도 읽어줄 수 있겠지 싶어서 몸뚱이를 집밖으로 꺼내다시피 해서 나갔다.


직주근접 아니고, 운주근접!  (운동과 집이 붙어있어서 탈주할 틈을 막아야 한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학교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문 밖을 나간 후 내 마음이 바뀌기도 전에 나는 학교에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저녁 시간의 학교에는 몇 명 남은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고, 나 같이 운동하는 동네 사람들이 트랙을 걷거나 뛰고 있었다.


5분 전만 해도 침대에 딱 붙어서 휴대폰의 영상에 눈알을 고정하던 나는, 장소가 바뀌니 자연스럽게 휴대폰 안의 런데이 앱을 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깝고 접근이 쉬운 운동 환경은 정말 중요하다. 런데이앱을 켜고 이어폰을 끼자마자 나는 영상을 수동적으로 취하는 관객에서, 내 하루의 주인공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오늘도 잘생긴 목소리의 청년 성우가 나를 북돋아주며 운동 시간 내내 나를 친절하게 조련했다. 처음에는 걸으라고 속삭이며 나를 안심시켜 놓고는, 조금 있다가는 달리라고 나를 이끌고, 이내 숨이 찰만 하면 또다시 걸으라고 하며 나의 페이서가 되어 주었다. 이 사이클을 세 번 반복하니 나도 모르게 인터벌 달리기로 벌써 40분을 소모했다. 심지어 다 마치면 내가 달린 총 거리와 속력까지 분석한 데이터가 바로 휴대폰에 나온다. 초보인 내가 고작 집 앞 운동장 살짝 달린 게 뭐라고, 이렇게 시간별로 상세히 분석해 주다니, 내가 굉장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달리면서 생각했다. 달리기가 루틴인 사람들은 그게 일종의 도파민 생성 장치니깐, 달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리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코로나 시절에 나는 대면 약속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시간에 휴대폰 속에서 타인의 세상을 탐닉하는 것으로 빠르게 교체됬으며, 코로나가 종식되어 세상은 바뀌었는데도 내 패턴은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도파민 갈아타기


사람을 대면하며 대화를 이어가며 내 뇌를 쓰지 않고도, 방구석에서 휴대폰 하나로 도파민이 쉽게 방출이 되다 보니, 자꾸 휴대폰이 내 휴일을 잠식하는 사이클이 어느새 루틴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살던 내가, 이제는 직접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로 결심했으니, 이 시점에서 나도 달리기 행위에 도파민이 방출되는 사람들처럼 내 몸이 변화하는, '도파민 갈아타기'가 조금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느 날 휴대폰이 사라졌을 때 멘붕이 오고 바로 무력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를 보며 뇌를 잠자게 하는 루틴보다는, 달리면서 드는 온갖 생각들에 집중하며 내 뇌를 스스로 청소하고 정리하는 루틴으로 갈아타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게 점점 더 재미있어지면서 영상 따위는 지겨워서 보기 귀찮아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해외여행을 하게 된다면, 아침 나도 모르게 일찍 깼을 때 휴대폰 영상으로 누워서 시간을 보내다가 조식을 먹기보다는, 냅다 나가서 숙소 근처를 한 바퀴 쓱 달리고 기분이 한껏 업되서는 조식을 우아하게 먹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고, 돈도 안 들고, 기구도 필요 없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행위, ‘달리기’로 내 도파민들이 야금야금 갈아타져서, 내 눈알이 휴대폰에서 해방될 날을 기대하고 싶다. 달리기를 하게 된 두 번째 이유, 눈알 보호를 위해 달리기를 하게 됐다는 다소 특이한 이유가 이 글의 마지막 즈음에는 결국 맞는 방향성이었기를 희망한다.



내 도파민들아 잘 넘어와주렴.

잘 부탁해!

오늘 한번 같이 넘어보실래요?

익숙해지면 제주 러닝하기 좋은 길 찾아가며 대자연 속에서 달리고 싶다는 야망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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