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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Jun 10. 2024

내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짧고 굵게 살기 싫어.


내가 달리게 된 마지막 이유는 오래 살고 싶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짧고 굵게 살기를 원하지만, 나는 그냥 오래 살고 싶다. 오래 산다고 다 벽에 똥칠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미래가 어떤 세상으로 변해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난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가 항상 궁금해하는 사람이며, 노후나 은퇴자의 삶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상하게 나는 장래 희망을 시각화할 때 최전성기가 아니고 아득하게 먼 노년의 나를 그려왔다. 일단 회색머리의 맑은 눈빛과 눈매와 입가에 미소 주름이 있어야 한다. 그때에도 머리가 길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 외모로 달리기를 한다면, 오 마이갓 정말 멋있을 것 같다. 길 가던 연하남이 내 다리를 곁눈질해 볼지도 모른다. 


내 노후의 어느 날 아침 나는 화이트톤의 침대에서 일어나서, 나를 보며 꼬리 흔드는 내 강아지를 가장 먼저 만져줄 것이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커피 한잔 내려먹으며 창문에 드리운 하늘한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실컷 쳐다볼 것이다. 남편은 집에서 바로 갈 수 있는 온수 수영장을 편하게 아침마다 이용하고, 식사가 제공되는 커뮤니티를 뻔질나게 이용하며 심심할 때만 설거지를 할 것이다.  삶에 감사하는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내 노년의 평범한 아침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자, 이제 정신 차리고 N에서 S로 돌아와 보자. 그러려면 난 완전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위치의 집을 사야 하고 충분한 연금도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더 안 적어도 이미 나는 현실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린 그 꿈같은 미래를 위해서 내가 계속 무언가를 평생 하면 정말 그 멋진 미래가 오나? 당연히 알 수 없다. 까딱 하다가는 어린왕자의 이상한 어른들처럼 인생 대부분을 이상하게 살 수도 있다.


Don't dream it. be it 


그래서 나는 오랜 고민과 생각 끝에 새로운 방법으로 이 패턴을 통째로 바꿨다. 내 발상은 여러 책 스승 덕분이다. 그건, 그냥 바로 지금부터, 내가 꿈꾸는 미래의 삶으로 사는 것이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달릴 때 나는 현재의 내가 미래의 할머니라고 상상하며 뛴다. '이렇게 자세가 곧고 힘 있는 매일같이 뛰는 할머니라니, 정말 이 동네 워너비겠다. 이 나이에도 체력 창창한 난 정말 멋져.‘


내 침대에서 노년의 할머니의 내가 일어나 예쁜 커튼을 슬쩍 열고 하늘을 본다. 현재 시야의 온갖 잡것은 다 패싱하고 저 구석의 예쁜 하늘빛에만 집중한다. ‘와! 오늘은 날이 좋구먼! 이 전망은 정말 최고야.’ 


내 지갑에는 내 충분한 연금이 맨날 나오며, 나는 여유롭게 아이들에게 용돈을 날린다. ‘딸아. 오늘 용돈날이네. 너 사고 싶은 것 다 사라. 세장 넣었다.'  실제로 오늘 삼만 원 용돈이 딸에게 이체되었지만, 난 이미 풍요로운 노년의 할머니니깐 언행은 그 격에 맞게 우아하게 한다. 아참, 남편은 몸을 담글 수 있는 간이 욕조를 당근에서 구매했으니 그게 최고급 온수 수영장이다. 


내게 안겨줄래 


다만, 이 모든 행복한 상상을 감히 파괴하는 싹은 수시로 잘라야 한다. 바로 병환이다. 그건 긍정으로 안 되는 영역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미래는커녕 현재도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달리게 되었다. 만수무강아. 달리는 할머니 될 때까지 네가 올 자리 우직하게 깔아놓을 테니, 그냥 나에게 와서 와락 안기기만 하면 된단다. 




하루 24시간 중 딱 33분 달렸으면서, 희망은 우주 끝까지 하고 있는 찬란 아줌마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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