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뭐죠? 저희가 먹을 김치는 저희가 담근다고요?
낙엽을 줍고, 잡초를 뽑고, 콩을 털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한껏 무르익어 슬슬 인문체험학습을 준비할 시기가 다가온다. 1학기의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산악등반이었다면, 2학기에는 인문체험학습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전교생이 함께했던 산악등반과 달리 인문체험학습은 학년별로 여행의 테마와 코스가 달라진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2학년과 3학년은 각각 도보여행과 농촌봉사활동을 떠난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는 어떤 여행을 떠나게 될까?
1학년들의 인문체험학습은 다름아닌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수식어나 별칭이 아니라 정말 여행 이름이 그렇다. 그래서 1학년 아이들은 처음 인문체험학습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입이 쩍 벌어지며 대체 뭐 하는 여행이기에 이름이 그렇게 거창한가, 싶은 생각을 하곤 한다. 선배들에게 대체 1학년 인문체험학습에서는 뭘 하는 거냐고 질문을 던지면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 거기? 밥 맛있어. 우리 학교 밥도 맛있는데 거긴 진짜 말도 안 돼."
"가면 무슨 연극 같은 거 시킬 거야. 재미있어."
"거기 큰 나무 같은 거 있지 않아? 뭐 하나 잘못하면 선생님들이 거기 빙글빙글 돌게 시켰는데."
"별 구경하면 돼. 거기 별 많아."
증언을 종합하면 종합해 볼수록 오히려 어떤 여행인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대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뭘 하는 여행일까?
인문체험학습 당일이 되면 1학년 학생들은 학교와 결연이 되어 있는 수련 시설로 향하게 된다. 이곳은 많은 학교들이 수련회 장소로 즐겨 찾는 청소년 수련원과 유사한 느낌인 듯 조금 다르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산 중턱에 예상치 못한 평지가 나오면서 그 위로 얼핏 작은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건물이 보인다. 사방이 단풍 물든 나무로 가득해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이 시설은 넓은 앞마당과 족구장 등의 운동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다. 1학년 학생들은 이곳에서 3박 4일 동안 머무르며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된다.
플레이백 시어터
수련 시설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강당으로 모이면 '플레이백 시어터' 시간이 시작된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3박 4일 일정의 가장 앞 순서로, 학생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동시에 새로운 장소에 대한 어색함과 긴장을 풀어 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맨 처음에는 모두가 손을 잡고 큰 원을 그리도록 선 뒤, 가벼운 무용 동작을 따라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다 점차 강사님의 지시에 따라 보다 어려운 동작을 시도하게 된다. 몸을 움직이며 긴장을 해소하고, 협응이 요구되는 동작을 통해 옆 친구들과 보다 가까워짐을 느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셈이다. 물론 하하호호 화목함을 추구하는 목표와 실제 우리네 모습이 언제나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다.
"팔 좀 그만 잡아당겨......."
"친구야, 네가 내 발을 밟고 있는 것 같은데 확인 좀 해 주겠니?"
무용을 통해 몸을 풀고 나면 '시어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로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풀어내는 활동으로 넘어간다. 이때는 아이들들 중 누군가가 자신이 최근에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나 속상했던 이야기를 말하고, 다른 학생들이 즉흥적으로 연기를 통해 그 사연을 다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연의 주인공은 자신의 사연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이켜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연기를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사연 속 감정을 모두가 생생히 느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소통의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많은 학생이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연극 시간이 여러 세션(session)으로 분할되어 있기 때문에 이전에 사연을 말했던 친구가 다음 세션에서 연기를 맡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이전에 무대에 올랐던 친구가 다음 세션에서는 사연의 주인공으로 나설 수도 있다. 무대가 펼쳐질 때는 여러 색깔의 천과 악기, 소도구들이 함께 제공되는데 아이들은 이를 즉석에서 활용하여 연극을 보다 실감나게 만들기도 한다. 혼신의 연기를 펼쳐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만든 아이는, 이후에 이어질 일기 작성 프로그램 시간에 많은 친구들의 일기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발표 때 언급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자아를 성찰하는 글쓰기
낮이고 밤이고 '인문학'을 부르짖는 학교답게, 인문체험학습 프로그램에도 글을 읽고 쓰는 활동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으리란 것을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내곤 한다. 실제로 인문체험학습 프로그램의 핵심 일정 중 하나는 바로 '자아를 성찰하는 글쓰기' 시간이다.
'자아를 성찰하는 글쓰기'란 최근 나 자신에게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왔던 순간을 일기 형식의 글로 적고, 그 순간이 있기 이전의 마음과 이후의 마음을 비교하며 감정 조절법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각자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원하는 학생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글쓰기는 3박 4일 내내 규칙적으로 열리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간혹 그 짧은 시간에 투닥거리며 다툼을 벌였던 친구들이 싸웠던 일과 미안하다는 말로 일기를 꽉 채워 발표하고 서로 어색하게 화해의 눈빛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선생님께 한소리를 들은 친구들은 혼난 일에 관한 감정 변화를 일기로 쓰고 발표해서 선생님이 머쓱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등산
"우리 학교는 진짜 산 좋아하는 것 같아."
이튿날의 일정을 확인한 아이들은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과연 우리의 학교는 글과 더불어 산을 오르는 일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다. 둘째 날 아침에는 수련원이 위치하고 있는 산의 등반 코스를 따라 등산을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등반 코스이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은 아침식사를 든든히 한 후 도시락과 몇몇 장비를 챙겨 숙소를 나서게 된다.
학교에서 열 달 정도를 살고 나면, 이제 아이들은 산악등반 체력단련 기간에 지겹도록 연습했던 대형으로 일사불란하게 모이는 데에는 도가 트게 된다. 대형을 갖추어 준비운동을 마무리하고 나면 비로소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부지런히 산길을 오르다 보면, 배에서 대찬 신호를 보내는 점심 무렵 딱 맞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잠시 땀을 식히면서 정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단풍이 절정인 멋진 산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이후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넓은 풀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나면 등산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친구들과 단체로 다녀오는 단풍 구경이라고 해도 좋겠다.
마음껏 뛰어놀아라!
'놀고 싶은 대로 노는 시간' 역시 나름 중요한 일정 축에 속한다. 그 어떤 전자기기나 오락 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던 감각을 되살려 저마다 바닥에 선을 그어 피구를 하기도 하고, 족구장에서 족구 경기를 하기도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술래잡기를 하기도 한다. 오로지 넓은 바닥 하나와 여러 친구들만 있으면 얼마나 무궁무진한 놀이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다. 가끔은 아이들끼리 놀다가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주로 어색한 시간이 조금 지속되다가 자아 성찰 일기를 쓰는 시간에 누구 하나가 그날의 일을 쓰면 비로소 화해의 장이 마련되곤 한다.
이곳 수련원의 가장 큰 장점은 밥이 아주 맛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 아침이 되면, 아이들 모두가 더 이상 이 맛있는 밥을 맛볼 수 없음에 아쉬워하며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는 한다. 보통 체험학습은 귀가를 하는 주말을 바로 앞두고 끝나게끔 일정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3박 4일 간의 일정을 마치면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 안락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