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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Oct 24. 2021

2학년: 우리가 선배라고요?

학교에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봄은 첫 번째보다 훨씬 더 친근한 느낌을 준다. 농구장 한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택배 박스들 사이에서 내 짐을 찾아 옮기고, 같은 학년 친구들이 하나둘씩 학교에 도착할 때마다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입생들을 곁눈질로 구경하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작년 이맘때 보았던 '초연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능숙하게 택배 박스를 옮기는 2학년', '가장 들뜬 상태로 신입생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2학년'의 역할을 우리가 그대로 도맡게 되었구나.



관객석에 앉아 맞이하는 입학식


일 년을 살고 나면 드디어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온다. 비록 선배라는 말을 들을 일은 없지만, 말 대신 행동으로 엄연히 선배 취급을 받게 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신입생들이 새로운 학교와 선배들을 걱정하는 것처럼, 사실은 선배들도 후배들이 어떤 아이들일지 걱정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다.


입학식을 앞두고 우리는 서로 이런 대화를 나누곤 다. 새로 들어오는 애들 어떨까? 무서운 애들은 없겠지? 우리를 너무 편하게 여겨서 막 대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무수히 많은 걱정을 제치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 ‘입학식 때 소리 열심히 질러야지.’


작년에는 무대에 서서 노래가 입으로 나오는지 코로 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했다면, 올해는 2층의 관중석에 앉아 여유를 부리며 호응을 할 차례다. 가장 앞 줄에 앉은 아이들은 목을 쭉 빼고 올해 신입생 애들이 어디 있 구경하는 특혜를 누린다. 입학 선언문 낭독과 공연을 준비하는 신입생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저래 보였겠구나' 하는 생각과 '우리에게도 후배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부풀어 오른다. 이곳에서 후배는 단순히 한 학년 아래의 아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나 저러나 앞으로 2년을 함께 살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묘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오면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아이들은 모두 같은 을 한다.

"야, 저 앞에서 노래 직접 부를 땐 몰랐는데, 위에서 구경하니까 이게 진짜 재미있는 거였구나." 

신입생들이 어정쩡하게 서서 노래를 부르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전방을 향해 힘차게 하트를 날리면, 2층에서는 누가 누가 더 열띤 리액션을 보이는지 대결이라도 하는 것마냥 천하제일 호응대회가 열린다. 환호와 소란이 가득한 한가운데에서 '작년의 내 자리'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기분이 괜스레 묘해지기도 한다.


2학년이 되어 맞는 입학식 이후의 일과는 1학년 때와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르다. 2학년이 주로 해야 하는 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존댓말 쓰는 후배 앞에서 손사래 치기, 일 년간 살며 체득한 가장 효율적인 배치로 전용 캐비넷 세팅하기, 친구들 방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수다 떨다가 쫓겨나기 등등.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 인수인계 작업이다.


청소 시간이 다가오면, 그간 배운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신입생들에게 청소를 알려 주면 된다. 모름지기 이곳에서 일 년을 보냈다면 샤워실을 청소할 때 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덕목과, 팔을 높이 뻗어 전등에 쌓인 먼지를 능숙하게 털어내는 덕목과, 빗자루를 휘둘러 용맹하게 해충을 잡는 덕목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갓 입학했을 당시 대걸레를 든 채 마구 먼지를 떨어트리고, 유리창을 걸레로 닦으려 들던 지난날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사전에 사감 선생님이 2, 3학년 아이들을 각자 특화된 부문에 특수요원처럼 배정하기도 한다.

일 년간 갈고닦은 스킬로 온 힘을 다해 청소 시범을 보이고 있노라면, 신입생들이 '정말 몸을 안 사리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한다. 처음 청소를 하는 신입생 아이들의 동작은 우리의 눈에 시원찮기 짝이 없지만, 작년 이맘때의 우리도 그랬으리라는 인내로 기다려 주면 된다.


왁자지껄 요란한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의 첫 밤이 되면, 익숙한 듯 새롭게 펼쳐질 일 년에 대한 기대감이 생긴다.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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