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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타이밍

by 지니





오늘은 <그냥 꺼내보는 이야기 2> 연재날이다. 이 코너의 연재는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일상의 사건들을 이야기로 꺼내보면 끝이다.


7시부터 8시 15분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토마토를 잘라 믹서기에 넣어 물 50ml를 더하여 갈아준다. 아보카도유 한 스푼을 넣어주고. 동시에 국을 끓인다. 올려 둔 멸치맛 육수에 무를 채 썰어 넣고 깍둑 모양의 손두부를 넣어준다. 재료들이 익는 사이 밥을 데운다. 그 사이 냉장고 반찬들을 꺼내 하나 둘 그릇에 담아준다. 가스레인지 한쪽 팬이 달구어지고 있다. 우선 계란 두 개를 굽는다. 반숙으로 잘 익혀진 계란을 접시에 담는다. 다음 주인공은 갈치다. 이틀 전 쿠팡으로 주문해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 갈치님을 굽는다. 손질이 되어 있어 팬에 올려 굽기만 하면 된다. 기름 튀지 말라고 덮는 거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만 하는데도 시간도 시간이지만 몸이 엄청 바쁘다. 작은 주방 공간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오늘 나의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믹스커피와 어제 사 온 핫바를 잘라먹었다. 아침이 되어 갈아 둔 토마토 주스 반잔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블루베리를 얹은 꾸덕한 그릭 요거트를 먹는다. 난 아침 물로만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다른 식구들은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다 먹은 그릇들을 개수대로 가져와 세제를 발라 한번 문지르고 옆 식세기 이모님께 맡겼다. 3인용 식세기라 그릇들을 테트리스 쌓듯 잘 쌓아야 한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주방일이 끝난다. 아... 쉬는 타임을 가진다. 이때가 되면 커피 한 잔이 당긴다. 새벽에 믹스로 먹었으니 이제 블랙으로 한 잔 마셔볼까?


정리가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여기서 한번 끊었다. 글을 적기 위함도 있고 집안일은 중간중간 쉬어주는 게 좋다. 어차피 계속한다고 끝나는 게 아닌 것이 집안일이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가진다. 전업주부로 오래 지낸 분들은 밖에 일 어떤 걸 해도 잘할 거라고. 정말이지 집안일은 멀티 그 자체다. 집에 있으면 설거지, 빨래,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많은 스토리와 많은 기술과 많은 노하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트나 편의점을 비롯한 서비스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바로 주부들이다.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단단함이 몸이 배여 든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러니 우리 주부님들, 참 위대하고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하트 뿅뿅!!!


바람 솔 불어오는 창가에 앉아 이 글을 적는 이 타이밍이 참으로 행복하다.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짧은 행복, 이 맛을 보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보다 더 큰 행복을 바랄 필요가 있을까?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캘리그래피와 필사하기다. 물론 필사하기는 오래전부터 해 온 작업이지만 두 어달 간 배워오고 있는 캘리그래피를 통해 글씨 쓰기에 재 발견을 하고 있다. 글씨 쓰기가 너무 재밌다. 글쓰기도 좋지만 글씨 쓰기도 참 좋아서 요즘 글씨 쓰기와 사랑에 빠졌다. 이쁘게 적는데만 신경을 썼었다면 지금은 반듯하게 써 내려지는 글씨체에 집중한다.


쓰면 쓸수록 글씨체가 곧아지고 좋아지니 이 또한 참으로 나에겐 재밌는 작업이라 하겠다. 외출 시 책 한 권과 필사 노트를 늘 가지고 나간다. 틈만 나면 책을 보고 마음에 드는 문구를 써 내려간다. 지금 현재로는 이 작업이 참 재미있다. 이럴 때도 난 참 행복을 느낀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느껴지는 쾌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젠 잠들기 전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필사를 했다. 책에서 저자가 클래식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데 한동안 클래식에 빠져 지냈을 그때가 소환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쇼팽을 들었다. 와... 나에게 이보다 멋진 삶이 있을까...? 그 순간에는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좋아하는 것을 집중력 있게 해 나가면 행복감을 느낀다. 느낌을 넘어 충만감이 생긴다. 글씨 쓸 때가 그렇고 음악 들을 때가 그렇다. 사실 다른 건 모르겠다. 물론 글쓰기도 오래전부터 해 오던 내게는 소중한 친구. 좋아하는 것을 하고 배우며 살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더없는 행복이다. 죽음이 두려운 건 이것들을 못할까 봐이다. 내 사랑하는 것들을 못한다는 게 참 슬플 것 같다.



주절주절 <그냥 꺼내보는 이야기 2>의 오늘 이야기를 이로서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기쁜 날, 행복한 날 되시면 좋겠어요. 때론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일어날 힘이 있는 하루,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하루요!




투위터 새벽부터님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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