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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숙모의 삶 2

내리사랑

by 지니


어제 조카 둘이 서울로 올라갔다. 차로 거의 1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먼 길을 오고 가고 해 준 조카들에게 감사하다.


조카들은 지난 토요일 저녁 8시쯤에 부산에 도착했다. 시간이 어중간해 기다리고 있다가 인근 고기 맛집에 가서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번 추석엔 큰 조카 혼자가 아니라 작은조카도 함께 왔다.


삼촌이 구워주는 고기를 구워지는 족족 맛나게 먹어주었다. 7시간을 운전하고 와 배가 고프고 지치기도 했을 거다. 함께 맛난 음식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보내는 시간이 참 값지게 느껴졌다. 둘째 조카가 함께여서 더 좋았다.


조카 둘이는 3년 전 어머니를(큰 형님) 하늘나라로 보냈다. 아버지는 몇 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고. 그래서 부모님이 안 계신다. 우리가 할머니(어머님)와 함께 살고 있으니 명절 때마다 오고 있다. 조카들은 아직 장가를 안 갔다. 건실한 청년들인데 모두 자기 짝을 아직 못 만났다. 어딘가에 그 짝들이 잘 있을 거라 본다.


이 아이들과의 꾸준한 만남을 통해 나도 어느샌가 정이 깊이 들었다. 큰 형님 살아생전에 나를 사랑해 주시는 깊이가 남다르셨는데 그 깊이와 사랑이 조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조카들은 3일 자고 갔다. 그간 못 잔 아침잠을 자느라 점심이 되기 전에 일어나 아점을 먹었다. 그래서 총 5번의 음식을 차려줬다. 해 주는 음식마다 맛있다 하고 잘 먹으니 해주는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았다. 잘 먹어주니 먹을게 떨어지면 또 만들게 되고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작은 조카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놀랐다. 먹을 게 너무 많다고. 자기 집 냉장고랑 차이가 많이 난다고. 큰 조카는 아점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구워놓은 부추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맛나다며 흡입했다. 맛있어서 자꾸 손이 간다고. 이번 부추전은 보통 때보다 얇게 부쳐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두에게 인기가 좋았다.


큰 조카는 바둑을 잘 두기 때문에 바둑 도장 깨기에 취미가 있고 작은 조카는 운동을 좋아해 내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 벌써 자전거 코스를 다녀오고 집 앞 축구장 트랙도 가보았다고 했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빠르게 움직이고 집중력 있게 하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서울 사람이라 그런지 조카들은 말도 조곤조곤 예쁘게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 전라도 등 나긋나긋한 말씨를 좋아한다. 우리는 경상도라 말이, 억양이 좀 센 편이다. 경상도 중에도 부산이 표준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부산 특유의 억양을 구사하는데 우리는 그냥 표현인데도 꼭 싸우는 것 같고 화난 사람같이 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서울말씨 표준어를 참 좋아한다. 조카들이 말하는 거 들어보면 조곤조곤하고 조용히 말을 잘해서 좋다.


명절이라 부추전, 두부 전, 애호박 전, 어묵 전, 동그랑땡, 잡채 등을 했다. 국은 탕국이면 더 좋았겠지만 북엇국을 끓이고 사 둔 반찬들과 동치미, 김치 등으로 차려내었다. 둘째 날은 둘째 형님의 찬스, 잡채와 LA갈비가 한몫해 주었다. 그때그때 고기가 있어 고기로 시작해 고기로 끝나서 어쩌면 수월하기도 했다. 숙모의 조촐한 일상 집밥이 조카들에게 또 다른 엄마의 밥상으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따뜻한 밥 한 끼 해 줄 수 있음이 그저 행복한 숙모의 삶이다.


조카들이 집에 온다고 하면 한편으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이리 명절 때마다 와 주니 고맙다. 물론 할머니 뵈러 오는 게 크겠지만 삼촌, 숙모 보러도 오는 것이니. 어머님이 돌아가셔도 조카들과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삼촌, 숙모와 영원히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가져본다. ‘조카들아, 사랑한다 ‘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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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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