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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첫째와 둘째

by 지니





5남매 중 둘째인 나는 위로 언니 밑으로 동생이 세 명이다.

중간에 끼여서 그런지 살면서 억울할 때가 많았다. 첫째는 첫째라 봐주고 막내는 막내라 봐주고 셋째는 이쁘다고 봐주고...

뭐, 만구 내 생각이지만.


그도 그런 것이 중간에 끼여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해서 그런지 눈치가 빨랐다. 다른 쪽으로는 둔한데 일머리는 빨랐던 것 같다.

일머리라 한다면 능수 능란하게 일을 잘 처내는 그런 게 아니라 눈에 일거리가 보이면 그 일을 모른채하지 못하는 그런 게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타고난 거도 있겠지만 형제 중 중간인지라 그게 컸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첫째인 언니는 공부를 좀 했었고 나는 사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엔 공부를 하기엔 집중력이 많이 부족했다. 대신 예•체능 쪽으로 관심이 많았다. 체육도 곧잘 했으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합창단을 꾸준히 했었고 연극부 동아리 활동도 했다.


뭣 때문인지 몰라도 언니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성적은 됐던 걸로 아는데.

그 이후로 생활전선에 바로 뛰어들었다.

그때 당시 언니가 사회인일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애초부터 공부를 안 해서 대학 갈 생각은 아예 없었고 졸업을 하면 취업을 바로 해야지 했다.

언니는 분명 성적에 맞게 들어갈 대학이 있었을 텐데 아마도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언니도 나도 바로 사회인이 되었다. 언니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모자란 동생들의 학비를 대주고 또 그 뒤를 이어 내가 번 돈으로 동생들 학비를 대어주는 그런 식이 되었었다. 그런 덕분에 동생들은 별 어려움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언니와 나는 사회인으로 지내면서 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공부에 관심 자체가 없었기에 공부를 안 했지만 언니는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형편 때문에 가지 못한 그런 서러움이랄까 그런 것도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취업을 바로 하게 된 나는 부산 광복동으로 출근을 했는데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보면 늘 경성대를 지나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내 또래 애들이 학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일하러 가는데 저들은 낭만의 캠퍼스 생활을 누리러 가는구나 하면서.

매일 아침 그 광경을 목격하면서 내 안에서도 언젠가는... 하는 열망을 품고 살았다.


이런저런 일의 경험을 어린 나이 때부터 하게 되었다. 덕분에 서비스 업종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았다. 판매, 응대, 단순경리, 정리, 진열, 디스플레이 등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워지는 게 많았다.


새벽 5시 30분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직장에 있을 때 시간이 좋아서 이 시간을 활용해 공부를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송통신대학에 입학을 했다. 일 마치면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매일 두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며 장장 몇 년의 기간에 걸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게 되었다.

언니도 배움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결혼을 해서 방송통신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자매들 중 제일 늦게 결혼을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부모님과 같이 살았는데 어느 날 대학 졸업장을 보여드리니 누구보다도 아버지가 기뻐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도 배움의 열망으로 미대를 진학했었는데 장남이라는 이유로 집안 사업을 맡아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부름에 중퇴를 한 거였다. 그래서 그랬나? 졸업장을 보시고 본인이 졸업한 것 마냥 좋아해 주셨다.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러운 부도로 인해 집안 사정이 기울기 시작했고 식구는 많고 딱히 수입원이 없었던 우리 집.

그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는 되는대로 부업을 하셨고 엄마는 엄마대로 이런저런 일을 하러 다니셨고 아버지는 작은 서예학원을 운영하셨다.

그 뒤를 이어 언니와 나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 나온 것이다.


지금 두 분은 천국나라에 계시지만 5남매를 다 결혼시키고 떠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노할머니를 모셨고 우리 5남매까지...

두 분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들은 잘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덕분에 우리 5형제는 우애 있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주변에 나누며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갈게요.

그리고 공부는 좀 못해도 인간이 먼저 되라는 아부지의 말씀 잘 새기며 살겠습니다.

두 분, 영원히 사랑합니다. “


- 둘째 딸 드림 -






<대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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