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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결혼

5남매는 이렇게 만나고 결혼했답니다

by 지니






집 옆이 바로 교회였는데 교회를 집처럼 드나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내 기억에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집 옆 교회를 나간 것 같다. 우리 5남매는 모두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중고등부일 때 언니가 교회에서 여부회장을 맡고 내가 여부회장을 맡은 적도 있다. 그 당시 회장을 맡은 사람이 지금의 형부다. 언니와 형부는 교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 두 살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더 웃긴 건 형부가 나랑 초등학교 같은 반 동창이다. 그러니까 형부랑 나는 친구다. 푸하하하하.


언니가 결혼하고 난 후 형부에게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도저히 형부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지금도 사실 그게 어렵긴 하지만. 형부도 지금껏 처제라고 했던 기억은 안 난다. 이름을 부르면 불렀지. 만날 때도 “어, 누구야, 안녕” 이러지 “안녕, 처제” 나 “안녕하세요, 형부” 이런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오랜 시일이 걸려 그냥 자연스럽게 부르게 됐지만 정말 처음에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나를 제치고 밑에 여동생이 먼저 결혼을 했다. 옛 속담에 셋째는 얼굴도 안 보고 결혼시킨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셋째가 이쁘긴 이쁘다. 인정! 셋째 동생은 집 옆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날은 눈이 펑펑 쏟아져 화이트 결혼식이 되었다. 발이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다.


넷째 여동생도 나를 제치고 먼저 시집을 갔다. 동생은 그 당시 제부를 교회에서 만났다. 교회에서 하는 선교훈련 프로그램을 같이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 이후에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이어오면서 결혼까지 이어졌고 결혼 예비학교에서 함께 간사로 오랫동안 섬겼다. 지금은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다.


언니와 두 여동생은 다들 30대 초반, 2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문제는 내가 결혼을 늦게 했다. 40에 했으니. 나도 짝지를 교회에서 만났다. 교회에서 40부터 모이는 공동체가 있었는데 거기서 짝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40이 되어 올라간 나는 거기서 세내기라 불렸다. 그런데 30 후반부터 다니게 된 청년부랑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왜냐면 40부터 50까지 있는 모임이었다. 나는 여길 얼른 탈출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오래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을 정하고 있었더니 그 공동체에서 지금의 짝지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그 공동체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이 주례한 1호 커플이 되었다. 우리가 스타트를 끊고 나니 줄줄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해부터 그다음 해까지 거의 열 커플은 했지 싶다.


그렇게 그렇게 우린 만나 얼마 전 OO주년 결혼기념일을 지냈다. 그날은 해운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마침 광안리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우린 해운대 바닷가의 끝자락에 위치한 미포에서 회와 맛난 점심 식사를 하고 해운대 일대를 둘러본 후 저녁으로 인도음식을 먹었다. 덤으로 불꽃축제까지 잘 즐기다 왔다. 뭔가 거창하게 보낸 건 아니었지만 그냥 둘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남동생은 서울 여자를 사귀었다. 그 이후로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내가 보기에 거의 2년은 그리한 것 같던데 정말 대단해 보였다. 사랑하면 저럴 수 있구나 하고. 남동생은 내가 결혼하고 난 3개월 뒤에 기다렸다는 듯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은 서울에서 했다. 50인승 버스를 대절해 부산에서 서울로 친지들, 지인들, 식구들을 모두 모시고 갔다가 내려왔다.


우리 5남매의 만남과 결혼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지금은 각자의 가정에서 알콩달콩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결혼을 다 시키고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나는 외쳐본다. 우리 5남매여 영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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