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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장례식

처음 죽음을 경험한 날

by 지니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며칠 전 쓰러지신 할아버지는 끝내 회복을 못하셨다.


한 집에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까이 계신 분이 돌아가신 걸 본 건 처음이었다. 고 2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처음 경험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곁을 지켰다. 마지막 살 힘이 남으셨을 때 할아버지께 음식을 떠 먹여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나는 할아버지 곁을 지켰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자발적이었다. 5남매 중 아무도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했는데 왜 나는 유독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어느 날 새벽 아버지가 우리 방 문을 열고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고 하시는 거다. 모두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정신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장의사가 집으로 와서 염을 했다. 솜으로 구멍이라는 구멍을 다 막았다. 그 장면을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애들은 보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셔서 그 뒤의 절차는 보지 못했다. 잠시지만 염하는 걸 보고 충격 먹었다.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할아버지의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할아버지 친척들, 형제들, 사촌들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 사촌들, 그들의 식구들, 아재들, 할머니의 형제들, 그들의 식구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의 친구들, 지인들이 3일간에 걸쳐 할아버지의 장례를 애도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 손님들을 우리가 다 치러냈다.


전구로 환하게 밝혀진 마당 공간과 큰방, 작은방, 아버지의 서재 할 것 없이 추모객들로 꽉 찼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 떠나시는 길에 함께 해 주었다.


마지막 날 아침, 교회분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목사님의 인도로 예배가 진행되었다. 할아버지의 운구는 교회 남자분 몇 분과 청년 몇 사람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3일간의 장례가 끝난 어느 날 할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니 정말로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고모 되신 노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신 걸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사람이 죽는 거에는 순서가 없구나 ‘ 하며...


인자하신 할아버지셨고 그런 할아버지를 유난히 잘 따랐던 나였다. 할아버지가 부업거리를 받아오고 갖다주고 할 때면 늘 할아버지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땐 매일 새벽마다 여중 뒷산을 오르셨는데 그때도 자주 따라 길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인자하고 어지셨던 할아버지, 훤칠하고 배우 뺨치게 잘 생기셨던 우리 할아버지를 이 밤 이 글을 통해 떠올려본다.


“할아버지, 평안히 잘 계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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