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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by 지니





남동생은 5남매 중 막내에 유일한 아들이다. 그 당시 노할머니는 남동생에게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아버지 대신이라고 말씀하셨다. 노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라서 그런지 남동생은 단단하게 커가는 게 느껴졌다. 남동생이 중학생이었을 때 자전거를 사기 위해 신문배달을 했던 게 기억난다. 어린 마음에 어려운 집안 사정을 알았던 건지 아버지께 사달라 하지 않고 직접 일을 해 자전거를 샀던 것이다. 새벽마다 일어나 신문 돌렸을걸 생각하니 지금도 상상이 잘 안 된다.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때 남동생을 데리고 산행을 많이 다니셨다. 사진을 보면 제법 어릴 때부터였다. 그때 아버지랑 함께 다녔던 시간들이 남동생한테도 소중히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남동생은 아르바이트도 참 많이 했다. 치킨집 배달을 했는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배달을 제법 오래 했던 기억이 난다. 또 만두집에서도 일을 했는데 반죽해 미는 것부터 만들기까지 정말 잘 만들었다. 얼굴이 잘생긴 남동생이(당시 배우 정준호를 닮았다고 했음) 만두집 가판 앞에서 만두를 만들고 있으면 여학생들이 “꺄악, 정준호다!” 며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고 한다. 오픈되어 있어 만두 만드는 장면을 볼 수가 있었던 거였다. 그렇게 재밌는 시절을 보내고 군대를 다녀온 남동생은 해운대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을 하게 되었다. 빵 굽기, 파스타, 피자, 샐러드, 스테이크 등 직접 만들어 나오는 메뉴들의 음식들도 먹어 봤다. 거기서도 꽤 몇 년을 일했다. 그 뒤로 제부가 하는 사업을 도와 일을 배우게 되면서 셰프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셰프로 일할 때도 주방 마무리조로 일을 마치고 나면 새벽 늦게나 올 수 있었다. 그때의 남동생을 기억하면 참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착한 아이였다. 쉬는 날 가끔씩 만들어줬던 파스타와 스테이크의 맛을 잊지 못한다. 이젠 언제쯤 남동생이 해 주는 요리를 먹어볼 수 있을까...?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레코드 회사에 취직해 음악을 엄청나게 들어왔고 레코드판과 CD들을 사 모아 온 덕분일까 남동생은 음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내가 모은 CD들을 하나씩 듣기 시작하면서 음악에 빠져들었다. 지금도 음악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고 들었던 그 음악들이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캠핑장에서 음악을 함께 듣게 되었을 때 그때, 누나 때문에 음악 진짜 많이 듣고 알았다며 고마워했다. 지금 내가 소장하고 있는 100장 정도의 LP판에도 관심을 보였다.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남동생은 인물이 반반하여 여자들에게 인기가 꽤나 좋았다. 그 당시 연예를 잘했던 게 아무래도 인물이 받쳐줘서 이기도 했을 것이다. 서울을 다녀온 남동생은 어느 날부턴가 서울을 자주 올라갔다. 서울에 살던 친구가 여자친구를 소개해 준 모양이었다. 그 뒤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갔다. 2년인가의 연애를 끝내고 서울여자와 결혼의 결실을 맺었다. 그간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쉬는 날 아들이랑 캠핑을 하고 라이딩도 함께 다니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멋져 보였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그 성실함과 책임감이 가정에서도 그 본분을 다하고 있으니 누나로선 참 기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입이 짧았던 남동생은 엄마가 해 주신 게장 된장찌개와 양념장이 올려진 꼬막을 특히나 좋아했다. 나도 게장찌개와 꼬막 좋아하는데 남동생에게 밀려 마음껏 먹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을 텐데 내 눈엔 그런 게 보였고 늘 양보하며 지냈던 지난날들이 스친다. 입이 짧았던 남동생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나는 알았나 보다. 그래서 유독 게장 찌개와 꼬막을 보면 늘 그때 생각이 난다.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한다.


지금은 각자의 가정들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부모님 두 분이 안 계시니 1년 중 함께 모이는 날이 한정되어 있다. 부모님이 계셨을 땐 명절 두 번, 어버이날, 생신날 두 번, 인도네시아 동생네가 왔을 때 두 번 해서 최소 7번은 모여졌는데 지금은 산소 갈 때랑 인도네시아 동생네가 왔을 때 해서 세 번 정도 보고 있다. 언젠가 함께 모여 언니집에서 만두랑 김밥을 만들어 먹자고 했는데 누군가 총대를 메고 추진하지 않으면 기약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총대는 아무래도 내가 메야할 듯. 더불어 남동생의 파스타도 함께 기대해 본다.


남동생이 만든 해산물 물회와 어느 캠핑장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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