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dust Jul 23. 2023

그럼에도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비혼주의였던 나, 이젠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서로 맞춰가며 사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고, 남편은 본인에게 아내를 맞추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늘 이혼사유였던 것이 남편에겐 이혼사유가 없었다.



신혼으로 돌아가게 된 이유는 어떤 것 덕분이었는지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꾸준히 표현한 마음이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이혼을 다짐하던 순간에도 꾸준히 아침에 샌드위치를 쌌으며, 저녁엔 밥을 지어 먹였고, 술 먹고 들어온 날엔 새벽에도 꿀물을 타서 환이랑 같이 먹고 자라고 내어주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지만, 그만큼 잘 살아내보고 싶었다.

어쩌면 희생을 강요받는 삶을 견뎌올 수 있었던 건,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꺾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비혼주의였던 내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에는,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췌장암 선고 이후 시한부 13개월을 마치고 돌아가시고 나니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을 느낀 것에는 분명하지만, 내게 남편은 첫사랑이었다.



희생을 강요받는 순간에도 사랑해서 억울했고 더 비참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태 만나왔던 다른 사람들이 '너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며 떠나갈 때에도 딱히 슬퍼본 적이 없었던 지라, 그 모든 마음이 한꺼번에 이렇게 당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에 워커홀릭이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있어도 그 누구도 나의 커리어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었기에, 늘 나에겐 1순위가 될 수 없다며 떠나갔었고,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비혼주의가 되었다. 그 누구도 나 자신보다 사랑할 자신이 없었던 게 더 크겠다.



그러던 내가 한번 사랑에 빠지니 상대가 돌싱이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았고, 한번 끼워진 콩깍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고 그게 내 남편이었다.



결혼하고부터 시작된 이 지옥 같던 삶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아니 그 지옥 같던 길을 걷는 순간에도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도 여전히 남편의 자는 얼굴은 아이들 자는 얼굴만큼이나 예쁘게 느껴지곤 했다.




나의 이 경험이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지옥 같았던, 굳이 겪을 필요가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던 남편과의 불화, 시댁과의 고부갈등, 그리고 종교갈등 문제는 유독 착한 아내병과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 사람들이 종종 겪게 되는 관문 같았다.

이 관문을 어떻게든 넘기면 살아지는 거고, 못 넘으면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그 관문 말이다.



나의 경우엔, 참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참다 보니 이혼이 하고 싶어 졌기에 여기 쓰인 글들은 참아서 생긴 화병이 원인이 되어 이혼서류를 작성하게 된 일련의 과정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많이 변했다지만 한국사회에선 여전히 여자들에게 결혼을 하고 나면 참아야 가정이 지켜진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결혼 전엔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처럼 굴었던 남자도 남편이 되고 난 후엔,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는 한 여자를 자기 집안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막판 스퍼트를 내며 몰아붙이고, 바람만 피우지 않고 도박과 술문제만 없으면 자기 같은 남편이 없다고 착각하고 사는 남자들이, 비단 내 남편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다.



탓만 하고 끝나는 인생이라기엔 내 인생이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가올 날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남편을, 시댁을, 그리고 나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이전 15화 그리고, 살아본 적 없는 신혼을 살게 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