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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22. 2023

그리고, 살아본 적 없는 신혼을 살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 같이 잘 살아볼 이유 찾기







지긋지긋하던 다툼에서 벗어난 계기가 된 건, 우연히 인스타에서 단 한 마디 문장을 보고 나서였다.



"돈을 쓰는데 진심이 있다"






우연히 본 그 짧은 글 한마디가 잊히질 않고 계속 생각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편에 대한 나의 의문점이 이 한 문장으로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남편에게 갖는 의문점은 "희망고문"이었다.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과 사랑을 해야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게 남편은 늘 물음표였고,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만 지배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이혼을 결심했었다.



남편은 나를 배우자로서 존중도 배려도 하지 않았지만, 늘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내게 주려했다.



본인은 대충 햄버거로 때우더라도 내겐 한우를 사주던 사람이었다.

티셔츠도 구멍이 나고 보풀이 날 때까지 입으면서 건조기 용량이 적어 이불빨래하면 몇 번을 건조해야 된다는 말에 그날 바로 가장 큰 건조기를 결제하는 사람이었다. 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할부로라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라도 나에게 필요해 보이는 것은 바로 만들어주던 사람이었다.



남편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본인이 갖고 싶던 차가 풀체인지 모델로 나오는 해에 풀옵션으로 장만하여 내가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주고 본인은 그 차의 1/3 가격의 작은 차를 몰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그 차가 남편의 마음이었는지 몰랐다. 그저 패밀리카로 집에 두는 것이고 그 차를 살 때에 멀쩡히 굴러다니던 내 차와 남편 차를 팔아서 그 차의 선수금으로 넣었고, 나머지는 할부로 샀기에 내 입장에서는 나의 차 대신 패밀리카가 왔다고 생각했지, 남편의 사랑일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차를 내가 몰고 다닌 지 5년 정도 지났을 때에 남편은 이직을 앞두고 있었다. 이직할 곳은 외부미팅이 많은 곳이었고 남편이 회사에 타고 다니던 차를 끌고 다니기가 면이 서질 않았기에 남편에게 패밀리카를 출퇴근용으로 쓰라고 하자 남편은 며칠 차를 찾아보더니 본인이 이직하기 직전에 그 작은 차를 팔고서  아내에게 차를 고르라며 매장에 데리고 갔고, 아내 마음에 드는 차로 계약하여 출고받고 나서야 가뿐한 마음으로 이직한 직장에 첫 출근을 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새 차를 사서 늘 내게 주고 본인은 중고가 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래놓고도 더 좋은 차를 나에게 사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남편에게 나는 명품만 쓰던 사람이었다. 겉으론 사 줄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말했지만 본인이 사줄 수 없음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남편에게 명품을 사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갖고 있던 것을 팔아서 남편에게 어울릴만한 것을 사 오곤 했다.



우리 부부는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지만 서로 '돈'을 생각하고 대하는 부분에서는 부딪힌 적이 없었다. 남편도 그랬지만 나도 서로에게는 부족함 없이 주려했다.




그랬기에 우연히 본 그 한마디가 남편을 이해하는 게 한몫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이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나와 결혼한 이유는 사랑해서가 아닌, 자기뜻대로 할 수 있는 어린 여자여서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갈등상황에 나의 그 생각은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그도 그럴 듯이 남편의 대화법은 가볍게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는 상황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에, 나는 결혼생활 만으로 6년간 남편이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의 오해였다.



남편은 대화하는 법을 몰랐다. 그리고 너무나 무관심하고 이기적이었고 거기다 나에게만 눈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보다 아내를,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는데도 늘 자신의 사랑을 의심받아왔다.



남편은 가정에 경제적으로만 헌신적이었던 아버지를 존경했고, 경제적인 부분만 제외하고 모든 면이 헌신적이었던 어머니를 존경해 왔기에 나이가 들수록 본인이 아버지를 닮아감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부모님의 대화법이 이상하긴 했어도 다들 그러고 산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다투시긴 해도 자식들 모두 시집, 장가보내고 두 분이 사셔도 이혼은 안 하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런 관계 속에서 변함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계신데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그 긴 시간을 지나 남편과 나는 예전 같으면 바로 전쟁에 돌입할듯한 상황도 조금은 여유롭게 넘어가는 법을 배웠다.


"어, 이번엔 좀 조심하려고 하네"

라고 느끼는 포인트에서 사랑을 느끼고는 한다.

나에게 사랑은 배려였나 보다.







저번 주말, 남편과 시댁 가는 문제로 짤막하게 나눈 대화이다.


"내가 유튜브로 부부상담사 구독하고 있는 게 있거든, 시댁에 매주 찾아가다가 안 가게 된 문제로 사연이 있더라고, 상담사 말로는 막상 안 가게 되면 부모님이 자녀들 만날 시간을 본인들 인생에 쓰시게 된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부모님은 은퇴하셨잖아, 매일 두 분이서 적적 하실 텐데 우리 집이랑은 상황이 다르겠지"


"그런가?.. 친정이라고 가정해 보면 자녀들 안 보고 본인들 인생에 충실히 사실 거 같긴 한데..

오빠도 알다시피 엄마는 사위랑 사이가 안 좋아서 영영 안 본다 해도 나랑 애들 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 오히려 사위 있을 땐 말이나 행동도 조심해야 해서 나랑만 보는 게 더 편하시기도 하거든. 사위 있으면 옷도 갖춰 입어야 하니까.

생각해 보니 시댁은 분위기가 다르긴 해. 시부모님은 며느리 없이 아들만 오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시니까. 친정이랑 시댁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


"응. 장모님은 나 안 본다고 해도 딸이랑만 보는 게 이상하지 않아 하실 건 나도 알지. 근데 부모님은 안 그러셔.. 주말에도 애들 기다리실 텐데"


"애들 하나만 데리고 가건, 둘 다 데리고 가건 오빠 편한 대로 해. 난 어느 쪽이든 다 괜찮아"







오늘 아침에는 시어머니의 종교강요 전화통화 이후로, 처음으로 남편이 첫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간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나가고 안 계시는데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의 기억에 어머님보단 아버님이 손주를 찾는 분이셨고, 여태 아버님께 아이들 보여드리느라 시댁에 가는 줄 알았기에 의아했다.



"아버님 안 계신데 오늘 간다고?"


"어, 안 계신다고 했는데 간다고 전화드리니 바로 오라고 하시던데?"


"어머님보단 아버님이 애들 보고 싶어 하는 거 아니셨어?"


"응, 원래 말을 그렇게 해도 마음은 안 그러셔"



남편은 가볍게 첫 아이와 단 둘이 외출을 나섰다.

나는 잘 다녀오라며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왕복 100킬로나 되는 거리를 둘이 다녀온다니,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평소 같으면 이와 같은 대화가 이렇게 담백하게 넘어가질 못했을 것이다.

분명 서로 나눈 대화 속의 어떤 단어 하나에 꽂혀서 물어뜯고 서로 상처받았다고 소리치고는 끝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어영부영 지나가고 또 거기에 새로운 다툼이 생기고 상처가 덧나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존중과 무시사이라는 한 줄 메시지 글을 발행하고는 점심시간에 전화 온 남편에게 이 짧은 한 줄의 글에 대해 말했다.




"오빠, 당연하게 요구하면 무시, 알아서 챙겨주면 존중이란 말, 어때?"


"어? 뭐라고? 이해 못 했어"


"당연하게 요구하면 무시받는 기분이 들고, 알아서 챙겨주면 존중이라는 기분이 드는 거라고 쓴 건데, 어때?"


"어? 무슨 말인지 진짜 모르겠는데?"


"아니, 나는 우리 사이가 조금 좋아지게 된 게, 새벽에 오빠 출근할 때마다 내가 샌드위치랑 커피 챙겨주고, 자기 전에 영양제들 챙겨주고 이런 소소한 챙김을 받는 게 오빠가 존중받는다고 느껴서 좋아지게 된 거라고 느꼈거든"


"아.... 아니야. 나는 네가 화내지 않아서 좋은 건데.."


"뭐?! 뭐라고????!!!!!"




이런 게 동상이몽이던가

남편은 내가 더 이상 화를 내뿜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남편은 요즘 출근하면 늘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나가면서 전화하거나 다시 들어갈 때 전화를 한다.

그리고 퇴근할 때마다, 혼자 미팅을 하러 가는 길에도 전화가 와서는 이런저런 수다를 한다.



퇴근하고 와서는, 특히 회식하거나 저녁 약속을 하고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이면 그날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중얼거리며 내 손을 잡고 잠에 들곤 한다.



최근에는 아기가 20개월 된 동생을 만났다고 하면서, 수면교육의 중요성을 단디 일러주고 왔다며 남편은 조금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면교육은 내가 한 것이었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싶어 했지만, 본인은 아이가 울던지 뒤척이든지 늘 꿀잠을 잤고, 나는 잠을 자지 못했기에 나의 수면질과 아이의 수면질을 동시에 개선해 보고자 내가 추진했던 거였다.  그래서 우린 그 수면교육을 하는 것 마저도 다투었었다.



주변에 아이가 초등학생인데도 아이와 엄마가 한 방에서 자고, 아빠는 거실이나 다른 방에서 자는 각방신세 이야기를 종종 듣고 오는 남편은 내게 수면교육 하길 잘했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한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 집은 수면교육을 해 놓았기에 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나면 열 시 즈음 남편이 들어와서 남편은 6살, 4살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아주 고요하고 정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고, 보고 싶던 영화를 아이들 눈치 안보고 혼자 보며 잠들 수 있기에, 스스로도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지옥 같던, 그 지옥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서 암담했던, 그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이혼 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고 여겼던 시기를 지나고 나니, 나는 남편과 살아본 적 없던 신혼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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