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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Feb 01. 2024

플레이 그라운드 파이터

놀이터 편

    총성 없는 전쟁의 시작이다. 비둘기 떼가 점령했던 아파트 광장과 놀이터에 어디서 나타난 줄 모를 아줌마들이 하나둘 합세한다. 사나운 바람 속 연두의 고갯짓이 시작될 때, 헬렌카민스키와 영어학원 가방이라는 새로운 하교룩을 완성한 엄마들은 너도나도 웃음의 가면을 쓰고 교문 앞에서 마주한다. 그들이 맨 가방을 보다 보면 누가 학원에 다니는지 착각을 일으킨다. 교문을 쏜살같이 통과한 이들은 가방을 토스하고 무작정 뛰어간다. 녀석들의 도착점은 바로 놀이터. 학교 수업 해제와 함께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누가 먼저 도착하나 내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자니, 혹시 누가 놀이터에 돈이라도 숨겨놨나 생각이 든다.


© unsplash


    드디어 적막이 흘렀던 그곳에 소란스러운 생기가 돈다. 작은 운동회가 펼쳐지는 듯한 모습에 비둘기 떼가 덩달아 신이 났다. 어디서 떨어질 줄 모를, 떡고물을 받아먹기 먹기 위해 간사하고 재빠른 발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반대로 엄마들이 모여있는 벤치는 어색한 기운만 감돌 뿐이다. 이내 누군가 "ㅇㅇ이는 오늘 스케쥴 어떻게 돼요?" "몇 시까지 놀 수 있어요?"와 같은 간단한 물꼬를 트면 학습 매니저들의 스케쥴 보고가 시작되다 또다시 적막이 감돈다. 그러다 용기 있는 엄마가 한 발의 총알을 발사한다. "ㅇㅇ이는 어쩜 그렇게 공부를 잘해요?" "어떤 학원 보내세요?" "혹시 지금 영어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요?" "수학을 옮겨야 하는데 어디가 괜찮아요?" "연산은 어디까지 진행했어요?" 등의 정보를 주고받다 보면 거리두기를 하려 했던 엄마들도 하나둘 귀가 쫑긋하며 몸을 돌려세우기 마련이다. 지금의 실력을 곧이곧대로 말하는 엄마가 어디 있으랴, 우리 아이는 집에서 놀기만 한다, 숙제는 간신히 시키고 있다 등 하소연을 토로하는 엄마도 있다만, 여유롭게 웃으며 말을 아끼는 엄마도 있다. 이 엄마,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아니면 어젯밤은 샤우팅 없이 지났기에 이리 여유로운 것인가.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동심의 놀이터는 일터가 전쟁이라는 남편의 말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엄마들은 아이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 얌전하지만 뼈 있는 말로 숫자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 unsplash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며 '인기'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난 줄넘기를 2단 뛰기까지 할 수 있다, 난 구름사다리를 두 칸씩 이동할 수 있다, 그네로 하늘까지 닿을 수 있다, 하다 하다 땅을 이렇게 깊이 팔 수 있다"까지 가다 보면 그들의 해맑은 경쟁이 참 치열하기 그지없다. 또한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다 보면 주동자와 주동자를 따르는 무리, 그리고 그 사이 일인자를 동조해 주는 이인자의 모습, 방관자 등 여러 모습이 보인다. 그들에겐 또래의 인정이 최고였다. 가령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도 "너 늦게 냈잖아!"라는 모습에 "맞아"라는 또래의 외침이 더해진다면 정정당당한 가위, 바위, 보마저 다시 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억울함이 다소 포착된 그들의 세계에서 각개전술을 펼치며 놀다 보면 누구 하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벤치에서 입으로 전쟁 중이던 엄마는 귀로는 단번에 내 아이임을 확인하며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다. 우는 아이 주변으로 모여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만, 너도나도 억울하단다. 대체 이 전쟁은 가해자가 없다. 모두 나는 아니라는, 때론 쟤는 아니라는 변호사가 되어 말을 덧붙이다 보면 억울한 누군가의 눈은 폭포수가 되고 엄마들의 미간은 찌푸려질 수밖에 없다. 하나둘 아이 손목을 낚아채며 보부상처럼 짐을 챙겨 "다음에 또 봬요"라는 아쉬운 립서비스를 던지며 떠난다.



    

    이내 놀이터는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는 놀이공원을 방불케 한다. 아쉬운 BGM 속에 집에가기 싫다는 아이, 피곤한 부모, 더 늘어난 짐을 이고 지는 부모, 마지못해 쥐여주는 달콤한 간식까지. 이때를 놓칠세라 길목에 자리 잡고 있던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오늘도 카드를 꽂고 계산을 마친다.

    모두를 떠나보낸 놀이터는 재 단장에 들어간다. 이전의 눈물 바람은 어디로 사라지고 또 다른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바람은 다시 상쾌한 공기를 가득 채운다. 햇살은 그네를 윤기 나게 비춘다. 비둘기는 각종 부스러기를 치운다. 자, 이만하면 됐다. 2차전 Ready,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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