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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an 25. 2024

이 남자가 수상하다.

화장실 편

    이 남자, 이상하다. 아니 수상하다. 도대체 하루 동안 화장실을 얼마나 자주 가는 것인가. 이 정도면 화장실에 혼자 먹을 꿀이라도 숨겨놓은 '푸우'가 분명하다. (이제 보니 생김새가 가장 많이 닮은 것 같다)

"아빠, 또 화장실 가?"

"또 똥 싸?"

"하루에 몇 번이나 가는 거야?"

"아 제발, 화장실 가는 거로는 뭐라 하지 말자!"

이 남자의 장을 이해해 보려 십 년을 노력했다. 먹음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수직 하강이 가능한 내 장과는 다른 그의 내부이기에 함부로 뭐라 할 순 없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내가 아는 배설의 의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 unsplash

    자고로 사람이 먹는 것으로 눈치 주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짓이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는 옛 조상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먹는 것은 뭐라 하진 않지만(되도록) '싸는 것'에 대해선 한마디 해야겠다. 이 남자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 고양이 걸음을 하고선 문 앞에 귀를 대본다. 싸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으레 '퐁, 풍덩~, 뿌아아악' 뭐 이와 다르지 않은 음향효과가 들려야 하는데 웃음이 난다. 화장실에서 웃음이...난다고? 잡았다, 요놈! 내 안의 탐정이 소리친다. '너 이 자식! 지금 화캉스 갔구먼!'

이쯤에서 화캉스의 정의를 살펴보자. 간단히 초록 창에 검색만 해봐도 요즘 시대의 화캉스는 필수인 듯 관련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화캉스

화장실+바캉스의 줄임말. 호캉스(호텔+바캉스)와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으로 요약하면, 화장실에 간 남편이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씩 ‘화장실에서 바캉스를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출처: [문화산책] 화캉스를 아시나요? (koreadaily.com)

    

    화캉스가 길면 한 시간씩 이어진다고? 기사를 접하다 보니 한 시간씩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작디작은 공간이 궁금해졌다. 왜, 그는, 그리고 우리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인가.

    30평대 국민평수에 살고 있어도 아이가 둘 이상 있는 집에서 내 공간 마련하기는 꿈에도 달성할 수 없는 주식 떡상의 기운과도 같다. 게다가 아이들 성별마저 다르다 보면 결국 각자의 공간을 내어달라는 아우성 속에, 있는 짐 없는 짐을 옮겨가며 매일 집 안 가구로 테트리스를 하게 된다. 2~3개월마다 가구를 옮기다 보면 내가 이사에 적성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직업관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노후를 상상해 본다. 흰 머리 지긋한 노부부가 가구를 옮기는 모습을 생각하니, 가구 하나 옮기고 뼈 하나 갈아 없어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어여 머리를 흩트려 생각을 헤치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빠의 공간, 엄마의 공간은 애당초 고려되지 않으며 있는 공간에서 심리적인 파티션을 쳐버리고 만다. '그래, 아일랜드 식탁을 기준으로 부엌은 내 구역. 남편은, 음, 남편은 어디로 해줘야 하지?' 생각이 슬로프에 미끄러지다 보면 내 눈이 머무는 곳은 당연히 쇼파 그리고 화장실.

© unsplash


    그렇다. 우리 집 가장이 맘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잠든 사이, 푹신한 쇼파가 전부였다.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옷감 여기저기에 붙여왔지만, 현관문을 여니 아이들과 실랑이에 지친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부부가 술잔을 부딪히며 업무에 대한 고민을 같이 의논하곤 했지만, 방학이라는 핵폭탄이 떨어진 상황이다 보니 회사의 '회'자만 꺼내도 아내의 '화'가 상승 곡선을 펼칠 것만 같다. 모두가 잠든 밤, 검은 봉지에 소중히 담아온 막걸리에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혼자만의 여유 시간을 펼치지만 이내 잠들었던 아이의 "아빠" 찾는 소리가 난다. 잔에 담긴 막걸리는 뜨뜻미지근하게 변질되어 버리고 그의 스트레스는 다시 옷깃에 얹혀 출근길을 재촉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배설이라는 타당한 권리를 갖고 잠시 노이즈 캔슬링이 가능한 곳, 화장실이 되겠다.


노이즈 캔슬링

외부 잡음을 상쇄, 혹은 차단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음향기기를 통한 음악 감상 또는 모니터링시에 유입되는 생활 소음을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기술은 본래 여객기 탑승자들과 승무원의 제트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출처: 노이즈 캔슬링 - 나무위키 (namu.wiki)
© unsplash


    요즘 가정적인 아빠들은 집 안에서 마음 놓고 티비도 켜질 못한다. 거실에 티비를 켜는 순간 아이들이 리모컨의 주도권을 잽싸게 가져간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아내의 흘김이 추월차선의 속도로 꽂히고 만다. 핸드폰과 티비가 눈에 보이면 아이들은 달디 단 초콜릿과 젤리를 먹는 것처럼 달콤함에 점령당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부부가 노력하고 있기에, 쇼파 역시 그의 안락한 공간이 될 수 없다. 비록 폭신한 쿠션 대신 딱딱한 흰색 시트에 앉지만, 비데의 온열 효과를 누리다 보면 전기장판 부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바지를 내리고 일타쌍피, 최적의 효율을 위해 그곳을 방문하고 있다.


그래, 내 네 노력의 가상함을 친히 허하노니,
치질이라는 복병을 만나기 전에 시간을 단축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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