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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an 18. 2024

그여자의 희로애락

현관 편

"늦었어, 늦었어. 얼른 신발 신어!"

"엄마 잠시만, 나 화장실!"

"불 껐나? 한 번 확인하고 올게."

"엘베이터 온다! 18, 17, 16...."


    출발과 도착. 그 시작점과 종착점에 해당하는 현관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오늘 아침 아우성이 들린다.

1분 1초가 촉박한 출근길, 나갔다가 다시 '삐삐삐삐'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다급함이 외쳐온다. "마스크!! 마스크 좀 갖다줘!" 얼른 그의 불난 마음에 소화기를 뿌려주고 한숨 돌리며 아이들 등원, 등교 준비를 한다. 아침부터 서로 다른 메뉴를 불러대더니 몇 숟가락 뜨지도 않고 배가 부르단다. "그래, 그럼. 그만 먹고 빨리 씻어!" 등 뒤로 소리치며 설거지하는데, 아이들은 세상 여유롭게 '굿, 모-닝'을 즐기고 있다. 지금 이럴 시간이야? 이제 십분 남았다. 엄만 40분에 나간다, 큰 바늘 8에 가면 가야 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산하라는 수학 못지않게 다양한 방법으로 엄포를 놓지만, 마음 급한 건 역시 나 하나. 종종거리며 할 일을 대충 끝내고 휘리릭 패딩 하나 걸쳐 나가려는데 이놈의 현관 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나 이 신발 싫어. 구두 신고 갈래."

"오늘 체육 있잖아. 운동화 신어야지! 그리고 이 추운 날에 구두는 무슨 구두야, 얼른 운동화 신어."

그러자 어김없이 이마가 찌푸려지더니 아침부터 눈물 장전이다.

"... 하아, 신어 신어. 신고 나가. 나가서 불편하고 미끄러워 봐야 알지!"

"바다야, 얼른 엘리베이터 눌러!"

"엄마! 나 손난로!"

"별로 안 추워, 그냥 나가 괜찮아!"

"엄마 엘리베이터 왔어!"

"어!! 사람 있어? 있으면 먼저 내려가시라 해!"


    아침 전쟁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집들이 손님이 오셨나 하는 생각이 들게 서로 뒤엉킨 신발이 보인다. 짝 맞춰 정리하다 보면 한숨이 툭, 이게 뭐라고 아침부터 눈물 쏟고 보냈나 싶다. 집 나가는 길, 미리 손난로 준비해서 따뜻하게 쥐여 보낼걸, 신고 싶다던 구두 이제 보니 털이 제법 가득해서 신고 갔어도 괜찮았겠네. 뒤늦은 후회를 해봤자 가슴 속 메아리일 뿐. 아이들 잔상이 남아 마음이 어지럽다.




    자고로 현관이 깨끗하면 복이 들어온다고 했다. 밝고 깨끗하게 정돈된 현관을 꿈꾸며 신발 정리함도 사고 철마다 정리하건만 현실은 눈 녹은 물이 그득. 여름 슬리퍼는 여태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축구공과 줄넘기, 아침 신문이 뒤엉킨 게 심란한 내 마음 못지않다. 하교하며 아이가 밝고 경쾌하게 문을 열며 "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면 언제 이렇게 커서 혼자 학교를 오가나 싶어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준다. 풀이 죽어 들어오는 날엔 하굣길에 무슨 일이 있었나, 마음 종종거리며 현관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신발과 두터운 점퍼를 벗고 들어오며 시작되는 아이의 목소리 톤으로 오늘 마음 온도를 체크하는 곳, 그곳이 우리 집 출입문이다.




    결혼하기 전 현관은 내 신발 신고 나가면 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선 이 작은 공간에 우리의 희로애락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퇴근길 바삭 촉촉한 붕어빵 냄새를 먼저 반기는 곳이자, 아빠를 마중하는 사랑의 공간이다. 나가기 전 아이들 옷을 매만지며 날씨를 체크하는 우리 집 일기예보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들어오는 동시에 잔소리가 시작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들어가자마자 신발 정리하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손부터 닦고, 세탁 바구니에 양말 갖다 놓아!" 장전된 권총처럼 다다다다 속사포로 내뱉고 나면 '이제 집에 들어왔구나' 실감 나는 장소이다. 신문 두세 장을 간신히 펼쳐놓음 직한 크기에 신문 속 글자보다 더 빽빽한 일상이 펼쳐지는 곳. 오늘도 이곳에서 우리의 희로애락이 펼쳐지고 있다.


그 희로애락 속 현관이 우리 등을 밀며 애타게 말했다. '됐으니 이제 제발 좀 비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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