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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pr 12. 2024

양재와 용산에 붙는 특별한 세금

지역 편

    가면 이상하리만치 기분 좋은 공간이 있다. 나에겐 용산 가족공원과 양재시민의숲이 그렇다.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가기까지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한 번도 나쁜 흔적이 남지 않았다. 주말의 서울 도심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생각한다면 어찌 좋은 기억만 있겠느냐 싶지만, 무방비 상태로 한 달의 마법이 터져 당혹감을 던져줬어도 그곳은 여전히 어떤 공기와 햇살, 바람으로 남았다.




    가족 공원과 시민의 숲. 무엇이 그토록 고요한 사각거림을 건네주는 것일까. 그곳의 푸르름일까, 행복이 스민 표정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그 특별함이 '지역'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양재와 용산은 거주의 목적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적어도 나에겐). 지역명이 풍기는 느낌이 있는데, 나에게 양재란 엄마 동창생 중 부유한 누군가가 생각났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편과 착실히 공부해서 SKY에 입학한 아들이 있는 윤기 나는 가정. 어려서부터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 속 호의호식, 세상의 따뜻함만 경험한 느낌이라면 용산은 잘나가는 젊은 1인기업 대표가 딩크족으로 지내며 고양이를 키우는 느낌이랄까. 밤이 짙어지면 편안한 차림으로 반려동물 출입 가능한 집 앞 선술집에서 가볍게 목 넘김을 하는 곳. 잔잔한 재즈 선율에 잔을 채우는 느낌, 그곳이 내겐 용산이다.


© unsplash


    작년 가을, 우연히 차를 돌려 시민의 숲으로 향했다. 별 기대 없이 마주한 곳에서 재력의 여유를 느꼈다. 숲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유창한 영어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호기심을 미루지 못하고 그들 쪽으로 다가가니, 주말을 맞아 외국인 선생님과 숲 체험에 온 네다섯 살의 아이들이 보였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연 속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옆에 서있는 딸에게 시선이 갔다. 만약 여유가 있었다면, 양재에 살았다면,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면. 각종 만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 아이의 미래와 그들의 미래를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의 재력에 대해 아니 생각해 볼 수 없다. 비빌 언덕이라 표현되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누구에게나 허용된 단꿈은 아니기에.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아이들이지만 부모의 성실한 뒷모습만으로 그들의 배와 머리를, 미래를 보장해 줄 수는 없다. 경제의 여유에서, 마음의 여유에서 그들의 단란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은 내 세속적인 시선의 착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렸을 적엔 그저 공부 잘하는 친구가 우연히 성격도 좋고, 외모 또한 예쁜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을 운이 좋게도 한 곳에 몰린 신의 선물로 여겼건만, 어른이 된 내 시선엔 세상의 찌듦이 삐뚤게 자리 잡고 말았다. 돈이 있기에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를 얻을 수 있고, 시간적 여유가 되기에 주변 사람들과 단란한 양질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소중한 시간은 누군가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 되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매끈한 밝음 뒤에는 거친 세월의 흔적이 자리 잡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 unsplash

    그런 이유로 이 지역 집값에는 여유에 대한 부가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바람,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햇살,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 당장 눈앞에 보이는 높은 담벼락뿐만 아니라 지나쳐 가는 바람에서도 금력의 여유를 느껴버리고 말았다. 재력이 있으면 선택의 범주가 훨씬 다양하다는 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무엇을 구매하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가뿐 마음으로 낚아챌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납덩이만큼 무거운 손이지만, 재력의 손가락은 유려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닮았다. 사뿐사뿐한 듯, 망설임 없는 그 행위가.

    현실에 허덕이는 순간에도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오천 원의 행복을 사고 만다. 지갑 속 고이 접어 넣고, 푸른 상상을 펼치며 날아갈 수 있는 최대치의 꿈을 꿔본다. 때론 기대하는 바람이 너무 무거워 복권이 짓눌린 게 아닐지 생각한다. 이뤄낼 수 없는 헛된 희망의 무게 때문에 당첨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여유 속에서 일주일의 행복을 손에 꼭 쥐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셔 본다. 돈 냄새만으로 배부를 수 있을 것처럼 깊게, 갈비뼈가 올라갈 수 있는 최대치로 들이마시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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