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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Mar 15. 2024

그래봤자 3월인데 뭘.

식탁과 광장 편

    무심한 철근 콘크리트가 둘러싸고 있는 작은 우주, 광장. 그곳은 여전히 쫑알거림과 약간의 고성이라는 원심력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놀이터에서 놀다 지친 아이들이 킥보드와 자전거를 끌고 우르르 나와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한 트랙에서 사랑스러운 서툶이 자라고 있다.

    자전거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불안과 설렘. 부모의 등은 새우처럼 굽어 펴질 새가 없지만 우린, 안다. 작은 서툶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몹시도 사무칠 그리움인 것을. 어느 순간, 아이가 당연스레 속도를 내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끝이 찡해질 아련함이다. 흡사 '뾱뾱'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엄마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가는 것처럼




    젓가락질은 또 어떤가. 교정 젓가락을 쓰다 첫 두 젓가락을 쓸 때, 집었다기보단 '반찬을 걸어 올렸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서툰 실력에 가뜩이나 오래 걸리는 식사 시간이 더 늘어지지만, 여기서 다시 교정 젓가락을 주면 아이의 사랑스러운 서툶이 자랄 시간이 없다. 이 역시 냇가에 있는 돌다리같이 자주 접할 수 없는 도전의 시기니, 우리는 인내심과 함께 용기의 눈길을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익숙해진 젓가락질과 함께 어린 시절 쓰던 수저 세트가 없어지면 이 또한 섭섭할 테지. '우리집에 더 이상 유아 식기가 필요하지 않구나.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 내 손길이 하나씩 줄어들고 있구나'  


© unsplash


    나의 서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가 자랄 틈을 허용할 인내심의 서툶. 보호자로서 조금 더 기다려 줄 수 있는 끈기의 서툶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어리숙한 아이와 어수룩한 부모가 만나 아등바등하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경력직 부모 눈에는 3월의 꽃봉오리 같은 아름다움이 보이기 마련이다. 서툶의 에너지가 풍기는 풋풋함은 아오리 사과 같다. 청량하고, 아삭거리고, 싱그러운 초여름의 생기. 부모와 아이의 땀방울이 모여 애정이 어린 시간을 나타낸다. 살을 부대끼고, 화를 내고, 눈을 맞추며 하루하루 맞춰가는 일련의 시간은 2인3각 경기를 마주하는 비장한 설렘으로 느껴진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지금이 제일 좋은 때예요."라는 어르신들의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이전에는 '대체 나의 수고로움을 알고 하시는 말씀일까'하는 푸념이 들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지금 내가 기저귀 찬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묵직한 기저귀로 인해 아래로 쳐진 엉덩이가 귀엽고, 손가락과 발가락의 꼬순내가 그립다. 솜털 가득한 볼살이 강아지풀 같고, 뒤뚱거리며 종종거리는 발짓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그 부모들 역시, 지금 내가 전해주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예요."라는 말에 한숨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잠 못 자며 보초 서는 날들에, 맘 편히 밥 한번 먹지 못하는 슬픔에 대체 언제 봄이 오려나 싶겠지만, 그대들은 막 터지기 시작하는 꽃눈의 한가운데 있다. 그들은 서툶의 시간 속에 고단하겠지만, 우리에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라 심히 부러울 뿐이다.

© unsplash

    

    계주 경기의 바통이 전달되었다. 오물거리던 천둥벌거숭이들은 어린이집에, 어린이집 가장 형님 반은 유치원에, 그리고 7살 큰 형님들은 8살의 새내기로. 귀여움의 흔적만 남은 자리에 새로 들어온 소란스러움이 자리 잡는다. 시원섭섭하게 조용한 시간을 보냈던 2월이 무색하게, 다시 채워진 소리로 귀가 따갑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채워주는 에너지를 인정한다. 3월은 알싸하게 아픈 아랫배처럼, 긴장 속에서 분주한 아지랑이가 넘실거린다. 초보 엄마의 마음이 그렇고, 상급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그렇다. 온몸의 세포가 촌각을 다투며 존재감을 위해 애쓰고 있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들과,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또 한 번 용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3월은 모두의 어깨가 경직된다. 꽃샘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첫 시작이 조금은 매섭기 때문 아닐까. 땅을 움트며 이제 막 세상에 나왔는데, 빨리 자라야 한다는 채찍의 물조리개가 쏟아지니 허우적대다 정신을 못 차린다. 쏟아질 듯한 태양과 물, 숨 막힐듯한 토양 대신,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꼼지락거릴 시간을 허용해 준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귀여운 허세가 자리 잡을 것이다. 식탁과 책상, 교실과 현관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용쓰고 있는 우리에게 머뭇거릴 여유를 주자. 어깨 한번 으쓱하고, 기지개 켠 후 한숨을 훅, 내뱉고 발을 떼보자. 괜찮다, 그래봤자 3월인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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