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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Feb 29. 2024

1920년대 뉴욕에서 박완서 만나기

도서관 편

    길을 걷다 건물을 빤히 쳐다본다. 한 곳에 시선이 꽂히자, 상상 속 일루미네이션이 돌아간다. 마치 빨려들어가는 기분과 함께 대낮의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모습이다. 갑자기 박완서 작가가 보이기도 하고, 김영진 작가가 아이 손을 잡아끌기도 한다. 한쪽 구석에선 조앤 롤링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열정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곳은 상상의 세계로 입장하는 9와 3/4 승강장이다. 주위를 살펴보고 슬며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새로운 속도로 분주히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가 들린다. 시곗바늘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길을 가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은 책 속에 길이 있는 듯 정신없이 눈을 굴리고 있다. 뭐에 깊이 빠져 고개도 들지 못하는 저 모습은 자석에 딱 붙은 클립 같기도 하고 흡사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도 하다. 그 사람 머릿속, 시간의 속도가 눈에 들어온다. 나와 다른 시공간에 있는 그는 현실의 문을 닫고 1920년대, 광란의 미국에서 술독과 재즈에 빠진 듯 휘황찬란한 별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싶은 나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들을 손으로 한번 훑어볼 뿐이다. 작은 먼지의 춤과 함께 캐스터네츠와 비브라폰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큰 북과 트럼펫, 심벌즈의 소리가 들려온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집어 든 책의 무거운 첫 장을 넘기기만 하면 그곳의 아름다운 플루트의 소리가 신비한 연못처럼 흘러나오며 여행이 시작된다. 한참을 헤매며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의 작은 시골 마을 인듯하다. 숲 여기저기서 동물들이 햇빛과 함께 뛰어오르고, 산 새들의 소란스러운 지저귐에 귀가 따가울 정도다. 주인공들의 등장을 상상하며 조금 따분한 오솔길을 지나면 어느새 그들이 팔 한쪽을 잡아끌며 모험의 카펫에 나를 올려놓고 구름 속 아찔한 경주를 시작하고 있다.


© unsplash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책 읽어줘"


상상 속 모험이 가파른 하강을 하려는 찰나, 현실의 세계로 불현듯 돌아와 버렸다. 작은 손으로 팔뚝을 툭툭 치는 그 터치가 못내 아쉽기만 한 것을 아이의 여행 티켓값이라고 생각해 본다. 현실과 너무 다르지 않은, 그래서 우리집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은 김영진 작가 책을 또 들고 오는 아이다. 읽어준 책을 무한정 반복한다는 것에 녹음 해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그림 하나를 발견하곤 어느새 작가가 와서 새로 그려놓은 것은 아닐까, 작은 상상을 덧붙여 본다.




    이 곳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시설이다. 하지만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 마치 보이지 않는 건물 같기도 하다. 중고등학생이라는 억압의 교복을 입었거나, 책육아에 발을 들이밀었거나, 아님 원채 책을 좋아해야만 보이는 시크릿 건물. 자기 안에 엄청난 보물을 숨기고 있지만, 아니 대 놓고 말하고 있지만, 그 지적 재산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문을 밀고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세상에 입장하듯 두 눈이 확장되는 경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고 때론 고마울 뿐이다.(신간 도서의 예약에 있어서)

    한편으론 놀라고 만다. 저리도 무덤덤한 시멘트 건물 속, 책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나만 모르고 지나칠뻔한 아찔한 생각에 도서관 건물을 화려하게 장식해 누구도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을 한다. 지나가는 아기 엄마를 붙잡고 도서관 예찬론을 펼치고 싶다. 이제 막 오물오물 한 단어씩 말하기 시작하는 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예쁜 통에 모아 놓은 알록달록 작은 사탕 같은 단어를 들려주고 싶다. 네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무심한 건물 속 다정한 햇살을 네가 모르고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느 지나가는 여인의 작은 안내서처럼, 이 땅의 아이들이 단어들의 올록볼록한 리듬을 느끼며 인생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뒤늦게 알게 된 이 사실을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더 따스하게 마주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너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폭신할까. 서로를 향한 무관심과 질투 대신 함께 모여 버들강아지만큼의 친절이 간질거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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