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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Feb 22. 2024

일요일 낮의 수상한 대회

백화점과 쇼핑몰 편

    단합대회가 열렸나. 어디 근처에서 '누가 누가 더 초췌한가' 대회가 열린 게 분명하다. 아니고서야 이렇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한곳에 모이기도 어렵겠다. 무릎 나온 회색 츄리닝에 크록스와 슬리퍼, 펑퍼짐한 검은 롱 패딩 그리곤 의욕 잃은 모습으로 털털털 보조 맞추기. 같은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고야 어찌 이리 똑같을까. 주말의 백화점과 쇼핑몰은 에너자이저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들이 한 큐에 모든 것을 소진하고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지하 푸드코트, 10층의 식당가 그리고 다시 내려가서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하고(우리의 나간 정신을 위한 동아줄) 아동복 코너로 올라간다. 아이 옷을 사러 왔지만, 아내의 발 빠름을 뒤쫓기엔 그들의 노력과 진심이 부족하고, 아이들 꽁무니를 쫓기엔 체력이 부족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밤, 불금을 즐기겠다며 소주를 들이붓는 게 아니었다. 홀로 살지 않는 남자는 혼자 사는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하며 피로 누적을 알코올로 해소하려 했지만, 해독은커녕 숙취에 골이 땡길 뿐이다. 이런 날은 집에 혼자 남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파에서 자는 게 최곤데. 본가에서처럼 눈치 보지 않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거저먹고 싶다. 오늘따라 엄마 밥이 부럽고, 엄마 집이 그립다. 

 



    다다다다. "뛰지 말라고 했지!" 하아, 안 되겠다. 주말 아침부터 넘치는 에너지를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자니 어디라도 나가야지,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우리 집 인터폰이 얌전치 못하지. 서둘러 준비하라고 남편을 불러보지만, 이놈의 남자는 꿈쩍이 없다. 아이에게 옷 입어라, 양말 신어라, 내복 안 말리게 손으로 잡고 있어야지, 잔소리가 나오고 눈치 한 번 줘야 화장실로 들어가는 남자. 그제야 똥을 누고 핸드폰을 보다가 여유롭게 샤워하고 나온다. 준비하다 이미 지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만, 비 오는 주말 딱히 갈 곳도 없고 집은 답답하니 쇼핑몰이라도 가는 게 낫겠다. 

    나가면 돈 2~30만 원은 금방 쓰고 나오는 곳인 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주말은 모처럼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고, 아이들 두툼한 레깅스나 내복도 좀 사야 하고, 또 뭐가 필요했더라. 옷장 정리 할 때면 항상 뭐가 없네, 잘 생각만 나는구먼 꼭 나와 사려고 하면 빠트리기 일쑤다. 아동복 코너에서 옷 좀 차근히 보려 하니 이상한 옷을 사달라는 애들의 성화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남의 집 남자인지, 접근금지 푯말이라도 쓰여 있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핸드폰만 하고 있는 놈을 보자면 나 홀로 나왔어야 했다. 뛰는 아이들 제지하랴, 필요한 것들 스캔하랴 눈이 공중분해 되서 해체되는 기분이다. 이럴 때 집에서 애들 보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짐들 없이 여유롭게 구경하고 싶고, 커피 한 잔을 끝까지 마셔보고 싶다. 주말이 더 피곤한 느낌,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제발 월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모두 제자리로 다 나가버려!



    

    일요일 오전 11시를 전후한 쇼핑몰의 부모들. 표정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하루일과를 멀찍이서 상상해 봤다. 일주일의 피곤한 일상이 주말의 나른함을 뚫고 고스란히 느껴지는 현장. 이곳에 스탠딩마이크 하나 놓고 상금으로 '자유시간'을 건다면, 그 어떤 대회도 못 따라올 참여율을 볼 것이니. 순번표는 금세 동나고, 차분히 이어가던 말은 하소연으로 끝맺어 결국 마이크를 뺏어야 할 지경일 것이다. 그들에겐 남녀 간의 배틀이 아닌 부모로서의 고단한 하루를 격하게 공감해 줄 든든한 동지들이 필요하다. 지난 나의 부모가 주말이면 유독 더 피곤해 보였던 이유, 아이를 낳고 세월을 먹고 나서야 그들의 고단함이 절절히 이해되는 요즘이다. 

    부모의 역할을 놓고 끝없는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하이힐을 신고 유명 시계 브랜드를 차고 뛰쳐나가는 여자. 번들거리는 구두에 긴 가방끈을 휘날리며 앞서가는 남자. 그들을 보자니 초라함과 함께 숨이 턱턱 막히기 일쑤다. 그들의 재력을 따라갈 순 없기에 오늘도 머리에 흰 띠를 둘러매고 나의 쓰임을 위해 두 발로 속도를 높여 보지만, 끝내 닿을 수 없는 결승점이 야속하기만 하다. 피로회복제를 들이 붓고 야심 찬 각오를 다지며 어깨 위 곰들을 물리친다. 지칠지언정 포기할 수 없는 가혹한 부모 됨의 레이스. 오늘도 외로운 화이팅을 외칠 뿐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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