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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Mar 27. 2024

그럼에도 가족.

    억세다. 그 끝이 어디까지 닿아있길래 흙을 파내고 파내도 당최 뽑히지 않는지.

한마디로 어디에 씨가 뿌려졌었는지도 모를 냉이가 지독하게 뿌리내리고 단단히 박혀 있는 모습이랄까. 원가족의 단단하고 투박하고 질겅거리는 모습이 서로 지나치게 닮았다. 냉이와 우리가.




    겨울이 지나 봄이 올지, 봄은 이미 지났는데 봄 타령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새침하게 치맛바람 한번 날려주고 사라지는 봄날을 느낄 수나 있을까. 때론 단란할 것이다. 때론 모질 것이다. 때론 처박힌 마음이 짓이겨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납작 엎드려 숨고르기 하고 생채기 난 모습이 아무길 기다리겠지. 시들어버린 누런 잎이 늘어갈지언정 뽑히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뿌리의 존재, 그것의 생명은 모질만큼 질기므로.



    아마 가족들은 모를 것이다. 의도적 거리두기 중인 내 마음을. 관찰자 시선으로 한 명, 한 명 지켜보며 글을 써왔던 내 이기심을. 그들이 모나게 굴수록 어떻게 글로써 풀어볼지 생각했다. 답답함이 몰려올수록 깊은 생각이 조여왔고 그럴때 마다 글을 썼다. 뭐가 들었을지 모를 상자를 열어볼 때의 마음으로, 구중한 그것을, 끈적한 그것을 굳이 뒤돌아봤고 직면했다.

    누구 하나 쉬운 삶이 없었다. 58년 부부의 삶은 그 자체가 고단했고, 청년들의 삶 역시 습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푸른곰팡이가 퍼지기 시작한 귤은 어느새 같은 상자에 있는 다른 귤까지 퍼졌고,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고르고 또 골랐다. 이대로 두면 썩은내가 진동할 테니, 개중에 멀쩡한 것들을 살려야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다. 박스 자체를 몽땅 쏟아부을 감정 쓰레기통도 없었고, 그게 독립한 가정으로 들어오는 것도 원치 않았다. 고르길 한참, 나 역시 짓물러진 귤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가족의 습함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내 아이들에게도 퍼져갈 듯만 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애써 내 껍질을 벗겨가며 온전한 속살을 꺼내야 했다. 물러진 살갗으로 내 가정을 살펴야 했다. 너희만큼은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지켜줘야 한다면서.



    원가족의 분리가 가당키나 한 지는 모르겠다. 때로는 아주 멀리 도망가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바다 저 멀리 건너가면, 시차가 바뀌면, 멀어진 거리만큼 안전할까.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기도 했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곳은 평온했을까. 뿌리 내릴 흙을 찾지 못한 실향민의 슬픔이 덮쳐오지는 않았을까. 멀어진 거리만큼 희미해진 상처를 부여잡고 애타게 원가족을 그리워하진 않았을까. 모순된 감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진 않았을까.


© unsplash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족 곁에 남는다. 변한 건 없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때론 이전보다 더한 분노의 눈길이 서로를 향하기도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역시나 변한 건 없다. 이 정도면 기대를 품지 말고 시간을 흘려보내야 할까. 구원자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질겅거리는 뿌리를 더 깊숙이 내려야 할까. 어쩌면 이것이 현실에 맞는 피날레의 모습이지 않을까. 갑작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과하고 상처를 보듬는 가벼운 플라스틱 해피엔딩이 아닌, 여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변하지 않는 속성을 간직한 채) 가족의 울타리는 견고했다는 씁쓸한 엔딩 말이다. 어떤 변주들이 휘몰아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가족. 바뀌지 않는 단 한 문장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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