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망친다는 건 번뇌 같아서
내가 봤던 공연의 조연출은 연출을 도와 연출만큼의 존재가 돋보였다. 조연출과 연출이 연극활동을 무수히 해왔고 베테랑임을 배제할 수 없었지만 조연출도 연출이었다. 처음으로 맡은 조연출의 무게는 바위 같았다. 가벼운 건 엄청 가볍고 무거운 건 또 무거워서 사실 드는 사람도 이게 무거울지, 가벼울지 감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나는 연출과 함께 희곡을 분석하고 바꾸고 배우들의 동선, 캐릭터 분석하며 대본리딩을 봐주고 하는 시간이 좋았다. 음향감독 선배와 연출 선배 같이 모여 배우들의 연기를 봐주고 나도 틈틈 연기를 했다. 연습을 하면서 배우들의 암기력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즐거움이어서 무거운 걸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깔려버렸다. 무대 위 조명 아래. 모두들 나를 쳐다보지만 그 앞에 선 나는 내가 아니었다.
1차 강평 때 지금은 없어진 배역이었지만 최종 연극 대본 수정 전 있었던 배역을 맡아 3줄 대사를 내뱉었다. 암전 된 순간 음악에 맞춰 나와야 하는 동선까지도. 기껏 많아 봐야 5분 남짓 순간의 자리였지만 그때 나는 심장이 쿵쿵 떨려서 이 소리가 관객들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그때 이후로 배우들이 외우는 대사들은 고도의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향 선배는 언제 나를 앞에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민지야, 배우들의 대사를 잘 내뱉기 위해서는 외우고 또 외워서 그 이후 느껴야지. 처음부터 느끼려고 하면 꼬여."
"제가요??"
냉큼 외쳐버렸다. 주연배우들이 대사를 까먹었다고 해도 나는 거기서 받아칠 자격도 없었고 거기에 죄책감을 가지지 못했다. 그저 외우자... 파이팅... 할 뿐이었다. 아마 그 자격을 가져간 건 연출 선배였다. 자신이 생각한, 아니면 이 무대에서 어울릴 톤과 말투를 찾아와 서로의 레퍼런스를 꺼내 들고 가장 최선의 길을 찾아 나섰다. 연출은 저런 거구나. 멋있다. 고생하셨다. 그렇게 칭찬을 멀리서 하면서도 조연출은 한 두 줄 외워 간간히 내뱉기 일쑤였다. 알바로 개인사정으로 잠시 빠진 배역 대신 내가 그 배역에 서면서 대사보단 동선을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사를 놓친 건 그 앞의 대사까지 반복으로 외우고 있는, 다른 배역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동선이 틀리면 배우의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진다던가, 서로가 어긋나서 다치거나 그럴 수 있기에 동선과 발걸음에는 '발'에도 자아가 있고 불을 꺼도 사방에 눈이 달린 사람처럼 걸어갔다.
나 앞에 안전불감증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강평 전 발목이 접질려 파열정도였지만 많이 걷고 정형외과를 미루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두 다리가 저려 마비가 되는 걸 보고 연출에게 연락 후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결과는 바로 '반깁스'엔딩이었고 순식간에 6만 원이 내 눈앞에 빠져나갔다. 나오고 나니 38분 후라고 찍혀있는 버스 시간표를 보며 반깁스를 한 채로 타박타박 - 20분을 걸어 소극장에 도착했다.
어떤 팀도 아니라서 소속감이 박탈된 채로 조명 아래를 바라보는 무대의 음향감독과 무대 위, 조명 아래 항상 어딘가 있는 작은 조연출이지만 때때론 배우들에게, 음향감독에게, 무대감독에게, 마지막까지 연출까지 내뱉지 못한 죄송스러움과 미안함이 자꾸 소화되지 못하고 평소 느끼던 감정과 같이 섞여 나를 표현하고 있었다.
'와, 나는 1을 알려주면 1 하고 0.5를 하다가 찡찡대다 2를 채우는구나.' 하면서 나에게 정이 떨어졌다. 무대 위 공연단에게는 미안해하고 나는 나를 혐오하고 그런 순간에 연극은 재밌었다. 모순된 상황이 비참해서 나는 녹아버렸다.
이런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 해서 연극은 사람이 아닌데 조명 아래를 투영했더라. 같이 연습하고 개그도 치던 주연배역들이 무대를 흡수하여 자신만의 색으로 내뽐고 연기 아닌 실력으로 내뱉으려는 모습이 자랑스러워서 공연을 보면서 흐뭇했다. 또한 연출의 메아리는 고뇌에서 한 번의 해냄으로 관객들에게 그 마음을 전했다. 그 모습마저도 흐뭇했다. 복합적인 감정을 뒤로하고 공연이 끝나버린 것에 대해 나는 눈물을 흘렸다. 대단하고 고마워서. 나는 이번 공연단이 있어서 연극을 잘할 수 있어서였다.
이렇게 아픈 구석도 많았고 오해의 문턱에서 넘다 넘어지고 울고 눈물다짐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어떤 선배가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다시 돌아가도 조연출을 하겠다고 대답할 거라 이런 내가 더 비참해진다. 이런 선배여도 후배들에게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연극을 좋아하는 마음은 1만 하라고 해도 2를 할 거야.
관계의 늪에 빠진 경험을 한다. 연극이 폭력으로 변해 나에게 날아온다. 삶이 힘들 때 조명을 보면서 그때의 힘듦을 씻는 나였는데 조명아래 나는 버둥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각조각 났을 때 유연하게 모아뒀다면 어땠을까 한다.
열아홉 살에 느낀 불쾌하고 느꼈던 불운의 감정은 스물넷에 느낄지라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장한 나라고 내뱉어야 했어야 했다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은 열아홉 때 나를 괴롭힌 사람이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라고! 쫄지 마. 제발. 제발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
속마음에 나는 얄짤없이 퍼붓고 있었다. 나에게.
나는 사랑으로 보듬아줄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인문학을 전공하며 인간과 정, 사랑과 신념과 그 공동체를 아우르는 긍정적인 언어를 배움으로 취득했지만 그 어떤 것도 꺼낼 용기가 없었다. 서로를 안아줄 수 없었고 번뇌만 넘쳐났고 방증만 했었다.
그렇게 악몽을 꿨다. 소극장에 갇혀 현실로 돌아오기 전까지 울기만 했다고.
심장이 멈추는 시간을 홀로 견뎠다. 그렇게 나의 연극은 가구나. 이런 내가 무슨 연극이야!! 내가 낭만을 가질 자격이 있겠냐고!!
그럼에도 과거의 나에게, 나 연극은 정말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만 하는 예술인 줄 알았는데 나도 했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가 하냐, 주위에서 마치 쓸모없는 짐짝 취급을 했습니다.
나이가 동기들보다 먼저 들어온 선배들보다 많아서 나 빼고 다 친해지면 어쩌지 하며 실없는 걱정도 했지만 고참 선배님들께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편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연극은 홀로 낭떠러지의 무대가 아니라 무대 위 사람들의 연대로 이어지는 예술이었습니다.
시나브로 공연 준비를 하면서 느꼈습니다. 이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할 것 같아요.
코끝이 찡한 밤이네요. 이로소 조연출 연극 일지가 일찍 문을 닫습니다. 마지막 조언을 한다면 조연출을 하고 싶다면 연출과 성격, 성향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정없이 퍼붓기 시작한 비는 금세 온 땅을 적셨습니다. 무대는 눈물로 가득 찼지만 벌써 마를 준비를 하고 또 다른 인생의 무대를 만들어갈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