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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May 15. 2024

제자에게 고백받아본 썰

[스승의 날 특집] 제자의 추억

브런치 시작하고 처음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써본다. 평소 노잼 글만 쓰는 나도 가끔은 이렇게 관종 짓을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침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딸아이 어린이집 선생님께 감사 편지를 쓰다가, 잘 안 써져서 결국 작파했다. 대신 브런치에 뻘글이나 써본다. 이런 제목으로 쓰면 조회 수나 라이킷 수가 좀 나오려나?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예전에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물론 교수님이나 선생님 같은 존경받는 업은 아니었다. 흔한 학원강사로, 지방러 고학생으로서 학비를 벌고자 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동네 보습학원에서 중학교 사회를 가르치는 일로 시작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일을 키워서 강남 논술학원에서 고3 논술을 가르쳤다. 이때의 경험담을 브런치에 쓰기도 했었다.


위의 글에도 썼지만, 학원강사를 하면서 인생에서 처음 겪는 경험을 몇 번 했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두 에피소드의 썰을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에피. “선생님 좋아해요.”

    

2005년 대학 졸업반 때의 일이다. 신이문역 근처 보습학원에서 처음 강사 일을 시작했다. 동료 선생님들이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좋은 분들이었다. 그래서 내게 이런저런 팁을 많이 알려줬다. 그중 “애들이 나이를 물어봐도 알려주지 마라”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냐고 물으니 “아직 20대인 걸 알면 만만하게 생각해서”란다. 아이들한테는 최대한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나.

     

그렇게 수업을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수업부터 “선생님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만 해도 내 수업 콘셉트는 엄근진이었기 때문에, 나는 인상을 팍 쓰면서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 그거 궁금해할 시간에 아까 가르쳐준 거나 외워. 다음 시간에 시험 본다?” 이런 식으로 꼰대력 오지게 대응하면 대부분 더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당시 수업할 때의 내 표정.


그런데 유독 줄기차게 물어보는 학생이 있었다. 큰 눈에 뽀얀 피부를 가진, 포니테일 머리가 깜찍한 중2 여학생이었다. 아직도 이름이 기억난다. 이 녀석은 정말 심심하면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내가 계속 쿠사리를 주는데도 굴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귀찮아서 마흔 살이라고 했더니, 안 믿었다. 결국 스물여섯 살이라고 실토했다.

     

질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대학생이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전공이 뭐냐, 여자친구 있냐, 취직은 언제 할 거냐(…)까지.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훅훅 들어오곤 했다. 공부를 안 하는 녀석이었으면 크게 뭐라 했을 텐데, 공부는 또 열심히 했다. 특히 내 수업은 노잼으로 유명해서(…) 아이들이 대부분 졸거나 잘 안 들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는 귀한 존재였다. 그러니 쓸데없는 거 묻는다고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중간고사 전날에는 전화번호까지 물어봤다. 당황해서 왜 그걸 묻느냐고 했더니, “오늘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쌤한테 물어봐야 할 거 아니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쉬는 시간에 다른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시험 때는 보통 알려준다고 했다. 그래서 알려줬다. 수업 끝나고 플스방에서 한창 위닝을 하는데, 문자가 왔다. 그 녀석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 꽤 늦은 시간까지 문자를 주고받았다. 시험 관련 질문도 있었지만, 사실 아닌 게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수업하고 있었다. 그 녀석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친구와 잡담을 하며 분위기를 흐렸다. 몇 번 주의를 주었으나, 실실 웃으며 뭉개는 거 아닌가. 그쯤 되자 나도 빡쳐서 큰 소리로 뭐라고 했다. 그랬더니 녀석의 표정이 급 어두워진다. 혹시 저러다 우는 건 아니겠지 싶어서 눈치를 살피는데,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선생님, 저 선생님 좋아해요.”

    

… 순간 나는 돌하르방 마냥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고,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허공에 책을 집어던지고 난리가 났으며, 얼굴이 벌게진 그 녀석은 책상에 그대로 엎드렸다. 이 난리통에 교무실에 있던 원장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며 출동하기까지 했다. 대체 그 뒷수습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뒤로 학원 분위기가 좀 묘해졌다. 알고 보니 이 녀석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원래도 비우호적이었던 남자놈들이 내게 더 까칠하게 구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녀석을 좋아한 남학생 중에는 원장 선생님 아들도 있었다. 원래 착실하던 애였는데 갑자기 반항기가 심해진다고 원장 선생님이 걱정을 쏟아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 선생님은 자식에게 아주 엄격했다. 어느 날 일찍 출근했다가, 빈 교실에서 아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을 목격했다. 왠지 나도 거기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학원 일은 1년도 안 되어 접어야 했다. 아무래도 벌이가 적어서, 고3 논술로 주종목을 바꿨기 때문이다. 마지막 출근 날, 내게 고백했던 그 녀석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는 개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직 축하한다며, 나중에 학원 놀러 오라고 했다. 내 전화번호도 알고 있으니 종종 연락한다며. 하지만 실제로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이 대목에서 은근 실망했다면, 나는 쓰레기인 걸까(…). 그래도 돌이켜보면 고맙다. 평생 여자에게 고백받아본 게 이 녀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30대 반이 되었을, 나처럼 늙어 가는 처지일 그 녀석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가끔 궁금하다.

     

두 번째 에피. “선생님 태워드릴까요?”

     

그로부터 1년여 뒤의 일이다. 나는 보따리장수 마냥 이곳저곳을 떠돌며 고3 논술을 가르쳤다. 대치동, 목동, 명일동, 상계동 등등… 그래도 강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역시 대한민국 사교육의 심장, 대치동이었다. 고3 논술의 하이라이트는 수능 직후다. 그때부터 본격 커리큘럼이 시작하는데,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양을 가르쳐야 하므로 밤늦게까지 강의가 있었다. 특히 12월~1월에는 새벽 1시까지 수업이 이어지고는 했다.

     

당시 나는 대치동의 ‘큰공부’ 학원에서 잠깐 강의하고 있었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입시철 한밤중의 대치동 학원가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픽업하러 나온 학부모 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데 동네가 동네이다 보니 처음 보는 외제차, 고급차도 많았다. 퇴근하던 내게도 그건 신기한 광경이었다.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대치역까지 뛰어가면서도, 줄줄이 서 있는 차들에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전국에서 대치동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저렇게 줄지어 서있는 차들의 태반은 고급 외제차다.

     

그 무렵 나는 신림동에서 자취하고 있었다. 논술 집중 기간에는 수업이 12시에서 1시 사이에 끝났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했다. 12시 30분쯤 끊기는 막차를 놓치면 꼼짝없이 택시를 타야 했는데, 나로서는 상당한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대치동에서 신림동까지, 할증크리까지 붙으면 택시비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논술강사 수입은 노동시간에 비해서는 아주 후했다. 하지만 대학원 등록금에 서울의 비싼 생활비를 생각하면, 늘 아껴야만 하는 돈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는 집까지 꼬박 3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었다.

     

그날도 수업이 새벽 1시에 끝났다. 막차는 일찌감치 끊긴 뒤였다. 체념한 나는 택시를 잡을 요량으로 터덜터덜 1층으로 내려갔다. 막 학원 입구를 나서는데, 어떤 여학생이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댁까지 태워드릴까요?”

     

헉, 이건 무슨 상황이지? 보니까 길가에 난생처음 보는 고급차가 서 있고, 이름은 모르겠지만 낯은 익은 여학생이 웃으면서 차를 가리키고 있다. 평소 수업 끝나고 허겁지겁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는 나를 자주 봤던 모양이다. 강남 학생들에게 주로 갖는 편견이 잘 사는 집 애들이라 싸가지 없다는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오히려 그 애들이 (똑똑한 건 기본이고) 예의 바르고 생각이 깊은 경우가 많다. 내게 카풀을 제안했던 그 친구도 그런 부류였던 것 같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며칠 전 글을 잘 써와서 크게 칭찬을 해줬던 기억이 났다.

     

“으응, 선생님 집이 멀어서… 마음만 고맙게 받을께. 늦었으니 조심히 가.” 하면서 나는 웃었다. 그랬더니 녀석도 네 하고 웃으면서 차에 탄다. 아마 이 녀석은 나도 어디 강남 근처에 사는 줄 알았을 것이다. 저어어어쪽 신림동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강남 아이들의 또 다른 특징이, 강남 밖의 세에는 세상 무심하다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도 말만이라도 참 고마웠다. 내게는 별세상이었던 강남 생활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만 아직까지 궁금한 것이 있다. 대체 그 차종은 뭐였을까? 슬림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동시에 드는 것이, 분명 국산차는 아니었는데. 차에 무관심한 내가 보기에도 모양새가 아주 간지났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평생 저런 차를 몰아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 브런치스토리에도 학생을 가르치는 작가님들이 많다. 그분들이 쓰시는 글을 보면 교육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느껴진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나는 잠시 돈벌이로 하다가 말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일은 아주 숭고함을 안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그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윈지, @슈퍼피포, @MeeyaChoi, @서주, @김룰루, @유랑선생 작가님, 스승의 날 축하드립니다. 학부모의 한 명으로서 작가님들 같은 교육자가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교육 환경이 여러모로 쉽지 않지만, 지치지 않고 지금처럼 학생들 훌륭하게 키워내셨으면 합니다. 축하곡도 하나 첨부합니다. 아마 오랜만에 들어보시는 곡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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