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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22. 2021

나쁜 인간 수집가


 “너는 그렇게 당하고도 매번 나쁜 인간만 만나냐? 그것도 재주다 재주.”

속상해서 한 말이겠지만 듣는 내가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친구가 한 말은 사실이어서 더 마음에 걸렸다. 사주에 인복이 없다더니 그래서인가. 나한테 꿀이라도 발린 것 마냥 주변에 나쁜 인간들이 파리 떼처럼 꼬인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누가 더 손해 보고 덜 손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간관계는 뭔가 문제가 있었다.     

 

 손해를 보는 사람은 늘 손해만 본다. 대가를 바라고 만나는 게 아니라고 외쳐봐도 매번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관계는 뭔가 서운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것이 연인이든 친구든 동료든 상대가 내가 베푼 배려와 관심과 챙김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섭섭함을 넘어 상처가 되기도 한다. 착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억울하단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머물고 있다면, 착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매번 자신은 주기만 하고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괴롭고 힘들었다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모이게 했던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더 잘해주고 상처받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그 관계의 시소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과 다름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람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주고받음의 황금비율은 있기 마련이다. 조건 없는 베풂이 미덕인 양 주야장천(晝夜長川) 주기만 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 

‘내가 더 잘하면 저 사람도 곧 내 마음을 알아줄 거야.’ 

‘사람 간의 관계를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미 상대는 당신을 친구나 연인이나 동료가 아닌 호구로 보고 있을 수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속담처럼 상대는 내가 ‘누울 자리’임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 처음엔 별것 아닌 부탁으로 시험을 했을 테고, 주는 것에 아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호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명 화가 날 테지만 쉽게 손절하기 어려운 게 문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아직 받지 못한 것이 있고, ‘언젠가는’ 달라질 거란 부질없는 자기 믿음에 빠지기 때문이다. 본전 생각에 그동안 투자한 수많은 물질적, 정신적 배려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경우 단 한 번도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TV에 등장하는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는 우리가 나쁜 사람을 끊어내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보여준다. 영국 시골 오두막집에 사는 웨딩 칼럼니스트 아이리스는 착한 심성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회사 동료인 남자 친구 재스퍼를 오랜 시간 좋아했는데 망할 재스퍼는 양다리 전문가였다. 아이리스는 뻔히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재스퍼를 만나는 것은 물론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이다를 찾게 만드는 고구마 같은 ‘답답녀’다. 그러던 어느 날 재스퍼가 회사 동료들 앞에서 다른 여자와의 결혼 발표를 하게 된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아이리스는 충격과 슬픔에 빠져, 모든 것을 잊기 위해 홈 익스체인지를 통해 지구 반대편 LA의 아만다의 집으로 떠난다.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남자를 잊기 위해 떠나 왔건만 재스퍼는 그곳까지 찾아와 자신의 원고를 부탁한다. 이쯤 되면 정신 차릴 만도 하겠다 싶지만, 아이리스는 거절하지 못한다. 또다시 ‘누울 자리’로 전락하나 싶었는데 아이리스는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사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옆집에 사는 전설적인 시나리오작가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리스와 같은 시련을 겪고 있는 마일즈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어 보라고!” 

 그동안 희생만을 해왔던 자신을 자각하며 더는 휘둘리지 않기로 한 아이리스가 재스퍼를 쫓아내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언제까지 남의 들러리로 살 것인가? 

나를 힘들게 하고 이용만 하려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습관처럼 나쁜 사람에게 더 끌리고 그런 사람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상대에게 하나를 주자 뻔뻔하게 열을 요구하고 있다면 단호히 거절할 용기가 필요하다. 인정에 얽매이어 끌려가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거나 감정의 폭발로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만남은 헤어짐을 동반하고 오랜 인연도 사소한 일에도 깨지는 게 관계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사람이 아니면 어쩌지’란 걱정으로 관계를 회피하거나 망설일 필요는 없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했다. 겪어봐야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적어도 내 인생에 함께할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행여 잘못된 선택으로 잠시 아프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없이 거쳐 가는 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누구도 우리의 인생을 대신해 줄 수 없기에 가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다. 내 관계 유형을 살피고 서로의 감정 시소가 평형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번 똑같은 상황으로 아파하는 바보 같은 짓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누울 자리’가 아님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은 당신이 모진 것이 아니라 아무 데나 다리를 들이미는 상대의 오만함이며 뻔뻔함이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쁜 사람만 일부러 수집하는 게 아니라면(분명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은근슬쩍 다리를 들이미는 사람에겐 단호하게 말하자.

“야 다리 치워!”

 당신이 나쁜 사람에게 내어줘 옆자리가 ‘솔드아웃’되어선 안 된다. 좋은 사람을 앉히고 싶다면 내어 줄 자리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넓고 좋은 사람은 넘쳐난다. 그들에게 내어줄 자리도 분명 부족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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